EZ EZViwe

[인사이드컷] 도자기 전쟁, 뒤바뀐 두 나라의 운명

최민지 기자 기자  2013.09.23 14:39:22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지난주 취재 차 대학로에 방문했습니다. 대학로로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하차해야 하는데요. 혜화역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대학로가 문화와 예술이 숨 쉬는 명소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혜화역 내 한 편에 사람들이 모여 있어 무슨 일인지 흘낏 쳐다보니, 한 남성분이 도자기를 빚고 있었던 것이지요.
   경기 이천시가 지하철 4호선 혜화역 내 '이천 도자문화 공간'을 통해 이천도자 제작과정을 직접 선보이는 자리를 마련했다. = 최민지 기자  
경기 이천시가 지하철 4호선 혜화역 내 '이천 도자문화 공간'을 통해 이천도자 제작과정을 직접 선보이는 자리를 마련했다. = 최민지 기자

도심 내 지하철역에서 펼쳐지고 있던 이 광경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 했습니다. 저 또한 흙이 그릇으로 변하는 과정을 한참이나 지켜봤습니다. 이렇게 즉석해서 만들어진 도자기는 지켜보던 시민들에게 선물로 제공됐습니다.

이날 혜화역 내 도자기 제작은 '이천도자기축제'를 알리기 위한 이벤트였는데요. 오는 28일부터 다음달 20일까지 이천시에서 열리는 도자기축제는 올해로 27회째를 맞게 됩니다. 이에 따라 이천시가 혜화역 내에 '이천 도자문화 공간'을 조성하고, 이천도자의 제작과정과 이천도자기를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습니다.

국내 도자기에 대한 관심은 한 방송사에서 방영하는 드라마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조선시대 최초 여성 사기장 '백파선'의 일대기를 그린 이 드라마를 통해 도자기를 빚고 굽는 과정과 조선시대 찬란했던 도자기 문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실존 인물인 백파선인데요. 그녀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도자기 기술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백파선은 조선 사기장 960여명을 이끌고 아리타의 히에고바에 가마를 열었다고 하죠. 아리타 도자는 일본을 대표하는 도자기 단지입니다. 이 곳은 일본 도자기 명성을 세계 전역에 알리게 한 근간을 일궈낸 주요 명소 중 하나라고 합니다.

임진왜란 전 일본에서는 옹기류의 도기만이 주류를 이뤘습니다. 다도용 찻잔이 나오기 시작했으나 조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완성도와 기술 모두 보잘 것 없었죠. 그래서 일본에서는 소위 고위층들만이 조선의 일부 도자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였을까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백파선을 비롯한 이삼평, 심해종전 등 수많은 조선의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 수만 해도 1000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죠. 이로 인해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일컫기도 합니다.

일본에 끌려간 조선 도공 '심당길'의 대표작품인 '히바키리'가 조선에서 가져온 흙, 유약 등으로만 만들어져 '일본 것이라고는 불 밖에 없다'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하니, 당시 일본의 도자기 제작 수준을 짐작해볼 만 합니다.

임진왜란을 계기로 일본은 조선의 도자기 기술을 고스란히 손에 넣게 됩니다. 이로 인해 도자기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고, 세계 곳곳으로 일본 도자기를 수출하게 되죠. 이 때문에 일본은 조선의 도공들을 극진히 대우하고 장인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이와 반대로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궁중에서 연례 때 사용할 청화백자항아리가 없어 전국에 수배할 정도로 도자기 제조에 어려움을 겪게 됐습니다. 전란으로 가마와 도공이 부족한 상황으로 인해 백자와 함께 조선 전기 도자기를 이끌었던 분청사기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지요.

전쟁으로 도자기 역사가 뒤바뀐 두 나라의 운명, 우리 입장에서는 분명 야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