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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택배업계, '뺏긴 파이'는 돌아오지 않는다

전지현 기자 기자  2013.09.17 10: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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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밤 10시경 인터폰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었건만 상대는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었다. 늦은 저녁시간에 걸려온 전화였기에 무심코 지나쳤지만, 약 30분 후 이번에는 초인종이 울렸다. 의아해하며 문을 열었더니 배송기사가 '택배'라는 외마디에 가까운 짧은 읊조림과 함께 조그만 박스 한 개를 건넸다. 그리고 바삐 길을 재촉하며 격무에 지친 뒷모습을 보였다.

명절기간, 택배업계는 전쟁이 시작된다. 고마운 이들에게 선물을 전하는 민족 고유명절 특성상, 이 기간 택배기사들은 고강도 업무에 시달린다. 하지만 문제는 서비스 품질이다. 네이버 검색창에 '택배 배송'이라는 검색어만 입력해도 분노를 표출하는 수많은 글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00택배 누가 더 욕먹나 배틀(온라인에서는 전쟁보다 경쟁으로 해석)하는 회사 같네요. 저도 오늘 어이상실한 일을 당해서 글을 올렸어요. 브랜드 가치가 똥값이라는 걸 스스로 인정하게 만드는 막장 직원들이죠. 대충 해도 된다는 무개념으로 일하는 사람들 때문에 전체가 욕을 먹는 겁니다."

"배송 연락을 못 받았는데, 집 앞에 아무렇게나 물건이 놓여 있었어요. 문자라도 넣어줬다면 빨리 귀가했을 텐데."

"맡겨놨다는 물건을 찾지 못해 전화하니 받지 않더군요. 추석기간 기사 분들이 바쁜 건 이해하지만 어디다 맡겼는지 알 수 없으니 여간 답답한 게 아니었죠. 이튿날 수소문하니 주변에 맡기고 깜빡하고 연락을 안했다고 하더군요."

운송, 숙박, 미용, 교육 등은 서비스업에 속한다. 마케팅이론에 따르면 서비스는 고객욕구를 충족시키고, 고객을 기쁘게 하는 행위다. 따라서 서비스업체의 서비스 행위는 부수적 활동이 아니라 바로 주된 사업이 된다.

그러나 현재 소비자가 체감하는 택배배송 실태는 서비스업이라기보다는 매번 신경 쓰이는 스트레스업에 가깝다. 운이 좋아 친절하고 책임감 있는 담당기사를 만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실제 대기업이 외주를 통해 역할을 분담하는 형태로 이뤄지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본사는 외주사에 책임을 떠넘기고 '나몰라라'하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사실상 작은 규모로 운영되는 외주업체에까지 친절 및 책임 등을 따지기엔 무리가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유통사들은 직접 나서 '고객감동'의 폭을 넓히기 시작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해부터 과장급까지 간부들까지 동원돼 명절기간동안 택배서비스에 적극 나서고 있다. 사원들을 대상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실시했던 이 제도는 애초 사무 및 영업직원들도 택배기사들의 고충을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시작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롯데백화점은 추석전후로 총 16일간 본사 직원들을 포함한 영업점까지 총 1700여명의 직원들을 배송지원 인력으로 투입했다. 간부급 주당 1회, 사원급들은 주당 3~4회 등 택배서비스에 나선다. 고객이 전화를 받을 때까지, 그리고 직접 물품을 건넬 때까지 책임지는 안전 배송을 의무화한다.

본사가 직접 나서 철저한 전문서비스 교육까지 신경 쓰다 보니 이제 소비자는 배송업체보다는 유통사에서 직접 배송하는 서비스를 선호하고 있다. 높은 '고객서비스 만족도' 때문인지 배송물량도 매년 급격히 늘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배송이 많은 곳은 저녁 9시가 넘어서야 끝난다. 배송형광색 조끼에 롯데백화점 로그를 찍어 백화점 소속 직원임을 알아 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택배를 사칭한 각종 범죄를 예방하고 낯선 사람에게 경계심을 갖는 고객들을 위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에게 편리함을 주는 것 상품을 판매하는 행위를 뜻하는 서비스는 현대사회에 와 3차 산업으로 구분되며 새로운 업태를 낳았다. 하지만 고객불만이 급증하며 '고객만족'을 기치로 내세우는 유통업체들이 이제 직접 나서 배송까지 책임지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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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업체들이 물건을 판매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직접 나서 운송까지 책임지는 만큼 택배업계가 현재 가진 '시장 파이'를 제대로 유지하기 위해선 서비스품질 향상에 나서야 할 것이다. 머지않아 질 떨어지는 배송서비스에 질린 소비자들이 물건의 품질뿐 아니라 배송까지 책임지는 업체를 보고 선택하는 날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고마움을 전하고 기쁨을 나누는 민족 대명절 한가위가 왔다. 이러한 명절은 선물을 보내는 사람의 감사의 마음이 배송 전쟁으로 경감되지 않도록 택배업계가 긴장의 고삐를 더욱 바짝 쥐어야 할 시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