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주인 없던 10년은 역사속으로… '역전의 용사' SK하이닉스

[기업해부] SK하이닉스… ①태동과 성장

최민지 기자 기자  2013.09.13 17:45:55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국내 대기업들은 대내외 경제상황과 경영방향에 따라 성장을 거듭하거나, 반대로 몰락의 구렁텅이에 빠지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기업일지라도 변화의 바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2·3류 기업으로 주저앉기 십상이다. 기업은 끊임없이 선택과 집중을 요구받고 있다. 국내산업을 이끌고 있는 주요 대기업들을 조명하는 특별기획 [기업해부] 이번 회에는 SK하이닉스를 다룬다. 그룹의 태동과 성장, 계열사 지분구조 등을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1983년 2월 현대그룹은 경기도 이천에서 자본금 100억원, 임직원 500여명을 투입해 '현대전자산업주식회사(이하 현대전자)'를 출범시켰다. 바로 이 현대전자가 30년이 지난 현재 세계 2위 메모리 반도체 업체로 자리 잡은 SK하이닉스(000660·대표이사 박성욱)의 전신이다.

SK하이닉스는 3년 만인 올해 2분기 영업이익 1조원 클럽에 복귀하며 '부활의 대명사'임을 입증했다. 이처럼 지금은 승승장구하는 SK하이닉스가 사실 부실기업의 산실이요, 주인 없이 헤매는 미아였던 시절이 있었다.

현대그룹에서 채권단, 그리고 SK그룹으로 주인이 바뀌며 30년 동안 질곡의 세월을 살아왔던 SK하이닉스. 주인의 변화와 함께 한때는 반도체 호황으로 이기는 승부를 했었지만, 어느새 정부와 채권단 도움 없이는 한치 앞도 볼 수 없던 바닥을 겪으며 회생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주변의 우려를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이러한 걱정을 불식시키며 불사조처럼 되살아나 정상화에 성공, 기적의 드라마를 써내려갔다. SK하이닉스는 어떻게 비상을 이뤄낼 수 있었을까. 그 중심에는 SK하이닉스의 여러 주인들이 있었다.
 
◆현대그룹에서 태어났지만…

   SK하이닉스 CI ⓒ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CI ⓒ SK하이닉스
당시 건설·중공업 등에 주력했던 현대그룹은 최첨단 산업이 기업 승패를 좌우할 것이라 판단, 현대전자(現 SK하이닉스)를 1983년 설립했다. 90년대 초반 반도체 호황으로 현대전자 매출은 1조원대로 급증하며, 메모리 부문에서 최초로 세계 10위권 내에 포함되기도 했다.

하지만 90년대 초반부터 대규모 설비투자를 감행했고, 1996년 반도체 업황불황에 접어들자 자금난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듬해 외환위기까지 겹쳐 적자를 면치 못했다.

현대그룹 자체적으로도 1999년 1월 IMF 체제라는 국가비상상태와 정부 주도로 진행되는 구조조정 아래 관련 계획을 발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같은 해 10월, 현대그룹은 14개 계열사를 정리, 연말까지 구조조정을 통해 부채비율 200%를 달성할 것임을 밝혔다.

이 중 현대전자가 포함됐다. 당시 정부는 산업전반에 빅딜 카드를 꺼냈고, 현대전자는 1999년 LG반도체를 인수 합병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양사에 독으로 작용한다.

현대전자는 LG반도체 지분 59.98%를 2조5600억원에 인수했다. 부채인수금 3조9000억원과 함께 총 6조5000억원의 자금부담도 떠안았다. LG반도체 인수 전 현대전자 자체 부채 규모는 9조3000억원. 무리한 합병으로 현대전자는 15조8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액수를 떠안았고 설상가상으로 반도체 경기가 하락하며 유동성위기까지 직면한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현대전자는 반도체 부분을 제외한 분사 작업에 돌입하는 등 대대적 구조조정을 실시한다. 2001년 1월 구조조정본부를 신설, 2개월 뒤 하이닉스반도체(이하 하이닉스)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는 현대계열사에서 완전히 분리된 체계를 갖추고 유동성리스크를 극복하는 한편 새로운 주인을 찾기 위한 행보였다.

◆기업 존폐위기… 정부 도움으로 '연명'

현대전자는 정부의 채권 보조로 가까스로 유동성위기를 탈피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정부는 2000년 12월26일 회사채 만기가 집중 도래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산업은행 등이 차환발행을 해주는 계획을 세웠고, 당시 증권업계에서는 최대 수혜자로 현대전자를 꼽기도 했다.

   현재 전세계 D램 반도체시장의 30% 점유율을 차지하는 SK하이닉스. 그러나 SK하이닉스에게는 주인 없이 표류하며 독자생존을 해야 했던 10년의 모진 세월이 있었다. ⓒ SK하이닉스  
현재 전세계 D램 반도체시장의 30% 점유율을 차지하는 SK하이닉스. 그러나 SK하이닉스에게는 주인 없이 표류하며 독자생존을 해야 했던 10년의 모진 세월이 있었다. ⓒ SK하이닉스
결국 산업은행이 2001년 1월에 만기 도래하는 현대전자 회사채 가운데 80%인 3000여억원을 인수하며 회사채 신속인수제도와 8000억원에 달하는 신디케이트론(공동 중장기 대출)을 모집, 현대전자는 유동성위기를 해갈할 금전적 샘물을 마련한다.

당시 로버트 죌리 미 무역대표부 대표 지명자는 현대전자에 대한 한국정부의 구제조치가 세계무역기구(WTO)의 정부보조규정을 위반하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부는 현대전자에 19억3500만달러 규모 수출환어음(D/A)과 신용장(L/C) 여신한도를 2001년말까지 보장해가며 모두 3000억원 수준의 일반 여신도 1년 연장해 준다.

이로 인해 특혜 시비가 술렁이는 가운데 2001년 반도체 가격 폭락과 함께 다시 위기에 빠진 하이닉스를 위해 정부와 채권단은 2차 조정안을 마련했고, 채권단은 2001년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1조6000억원 중 투신 보유분 1조2000억원을 무보증으로 3년 연장한다.

2001년 하반기 기준 하이닉스는 금융부채가 8조원 이상에 달했다. 그러나 시장은 하이닉스가 당시 수출의 약 4%(60억달러)를 담당하고 있어, 부실화할 경우 2500여개에 이르는 협력업체까지 위험에 빠지는 것은 물론 국가신인도 하락 등 악순환이 전개될 것이 우려됐다. 결국 2001년 9월 하이닉스 채권단은 정상화 방안을 결의한다.

이 결과 마침내 하이닉스는 2003년 반도체 호황을 맞아 흑자전환에 성공한다. 2004년 웨이퍼 생산투자 집중과 낸드플래시 사업을 본격화했고, 기술개발과 중국공장 설립 등 사업 확장으로 매분기 흑자를 이루며 호실적을 지속해 2005년 7월 워크아웃을 종료한다.

LG반도체와 합병 이후 6년 반. 메모리 반도체를 제외한 모든 사업을 팔고 인력감축 및 임금동결을 통해 정상화 판정을 받은 것이다. 이는 예정보다 1년 반이나 앞당겨 조기 졸업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SK하이닉스 경기도 이천공장 전경 ⓒ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경기도 이천공장 전경 ⓒ SK하이닉스
◆모두가 외면한 인수전…굴욕의 암흑기로 남을 시절

하이닉스는 SK그룹을 만나기 전까지 매번 매각에 실패하며 주인 없는 10여년을 보내야했다. 인수의향만 보여도 주가가 요동치며 하락세에 접어드는 국면을 보이자 '하이닉스의 저주'라는 말까지 공공연히 떠돌았다.

사실상 인수전 불발은 현대전자 시절부터 시작됐다. 2001년 유동성위기에 빠졌던 현대전자를 매각하려고 정부와 채권단이 나섰지만 여의치 않았다. 정부는 현대전자가 세계적인 반도체업체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며 외국기업에 매각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에 삼성, LG에 여러 차례 하이닉스 인수를 제안했지만 이들 모두 난색을 표하며 매번 거절했다. 삼성 측은 현대전자의 과다한 부채와 시설 중복투자를 내세웠고, LG 역시 현대전자와 LG반도체 간 빅딜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던 터라 거부의사를 밝혔다.
 
반도체시장도 좋지 않았다. 현대전자는 마이크론테크놀로지와 계획한 양해각서(MOU) 체결을 카드로 꺼내들며 매각을 추진했으나 2002년 협상이 종료됐다. 하이닉스가 2003년 반도체호황과 함께 독자생존의 길을 걸으며 흑자로 펀더멘털(기초여건)을 검증했지만, 여전히 주인 찾기는 표류상태였다.

굴욕적인 인수전이었지만 주인 없는 하이닉스는 빠르게 성장했다. 이미 위기를 경험했던 터라 반도체 업황 불황에도 구조조정과 비용절감을 빠르게 진행해 피해를 최소화하고 모바일·그래픽·서버용 메모리 제품을 개발하는 등 고부가가치시장 개척에 주력했다. 그 결과 매출 12조990억원, 영업익 3조2730억원으로 2010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 SK  
최태원 SK그룹 회장 ⓒ SK
이후 2011년 6월 세 번째 하이닉스 매각시도로 마침내 2012년 2월 SK텔레콤은 하이닉스 구주 매수가액을 1조322억원으로 최종 확정하고 이듬해 최태원 SK그룹회장을 하이닉스 대표이사로 선임한다.

최태원 회장을 수장자리에 앉힌 하이닉스는 2012년 3월 SK하이닉스로 사명을 변경하며 행보에 박차를 가한다. 최태원 회장이 직접 나서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추진하고, 2011년 대비 20% 늘어난 4조2000억원의 투자금을 투입했다.

20나노급 D램과 20나노 낸드플래시로 미세공정 전환을 가속화하며 원가경쟁력도 확보해나갔다. 최 회장의 전폭적인 지지로 하이닉스는 SK그룹으로 편입 후 5개월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이는 4분기 만에 이뤄낸 호실적이었다.

현재 SK하이닉스는 세계적인 종합 반도체 회사로 거듭나고 있다. 세계 반도체 업계 5위권 진입과 함께 올 2분기 세계 D램 시장 30%대 점유율도 마크했다. 디폴트(채무불이행) 직전까지 몰리며 기업존폐 위기를 겪었던 어두웠던 과거, 특혜 시비에도 반도체사업을 놓지 않기 위해 숨통을 틔워준 정부와 채권단의 노력, 하이닉스 자체적으로 행한 자구책, SK그룹의 결단 등 이 모든 것이 '기적의 SK하이닉스 드라마'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