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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광장] 빚쟁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그 이름 ‘대기업’

소정선 논설위원 기자  2013.09.04 14:3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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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돈, 돈, 돈…빚, 빚, 빚.

온 나라가 빚 타령이다. 국민들도 빚이 많은데, 나라 빚도 거침없이 늘어 빚쟁이 공화국이 될 판이다. 그런데 유독 기업들은 돈이 남아돌아 처치곤란 지경이란다. 난감한 현실이다.

일단 가계든 국가든 빚이 많으면 좋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빚이란 급한 일이 있어 다른데서 꾸어온 돈으로 어차피 벌어서 갚아야할 돈이다. 열심히 일해 봤자 빚 갚는 데 다 쓴다면 현재와 미래 생활이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우선 국민들의 빚부터 보자. 한국은행 등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경기 침체 장기화로 지난 해 한국 국민의 진짜 가계 빚이 1100조원에 육박했다. 지난 해 기준 실질 가계 부채는 1098조 5000억원으로 전년의 1046조 4000억원 보다 52조 1000억원이 급증했다.

실질 가계부채란 가계부채와 이에 포함되지 않는 영세사업자나 종교단체 등 소규모 개인기업 대출 등을 합산한 수치다. 2000년대 초반 600조원 수준이던 실질 가계부채가 10여 년 만에 갑절이 된 셈이다. 

최근 언론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해 들어 가계 빚이 ‘늘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24.6%로 ‘줄었다(9.1%)’보다 3배 가까이 많았다. 우리 국민 4명 가운데 1명은 가계부채 문제를 해소하지 못한 채 상황이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빚이 늘어난 이유는 ‘주택구입 또는 전월세 가격 상승’ 등 주거와 관련된 부채 증가가 30.9%로 가장 높았고 ‘자녀교육(27.9%)’, ‘사업부진(25.5%)’, ‘의료비 부담 증가(6.1%)’ 등의 순이었다. 모두 서민들 생활과 직결된 사안이다.

서민들의 빚이 늘다보니 빚 못 갚는, 저신용층이 늘 수밖에 없다. 신용평가정보 등에 따르면, 5월 말 현재 신용등급 10등급(최하위)의 불량률은 40.98%였다. 지난 해 11월 말 10등급의 불량률 35.47%에 비해 반년 새 5%포인트나 오른 것이다. 즉 10등급 중 40%가량이 빚을 제대로 못 갚았단 얘기다.
 
반면 우량계층의 신용상태는 개선돼 여기서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났다. 1등급의 불량률은 작년 11월 0.08%에서 올해 5월 0.07%로 감소했다. 2등급 역시 0.17%에서 0.16%로 내려갔다.

결국 부모의 경제사정이 어렵다보니 대학생의 절반이 ‘학자금 대출계획’중이라는 충격적 결과도 나왔다. 모 취업포털 사이트가 대학생 79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5.1%가 ‘2학기 학자금을 대출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78.3%는 직전 학기에도 학자금을 대출 받았다고 했다. 이들 중 일부는 금융권과 대부업체대출을 계획 중이다.

학자금 대출과 관련된 반응 조사에서 응답자의 73%는 취업도 하기 전에 빚이 생겨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다. 돈이 젊은이들의 스트레스 원흉이 된 것이다. 부의 대물림이 아닌 가난의 대물림이 지금 2013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들 빚이 늘어나는 이유는 소득이 늘지 않기 때문이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소득은 사실상 제자리인 반면 연금과 사회보험 지출만 늘어 국민의 살림살이가 더욱 팍팍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의 2분기 가계 동향에 따르면, 월평균 소득은 404만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5% 증가했으나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실질소득은 1.3% 증가에 그쳐 여전히 제자리걸음 수준이었다.

이에 반해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료 등 비소비 지출은 가구당 월평균 75만3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나 늘었다. MB정권이후 경기부양책을 쓴다고 소리만 요란했지 정작 효과는 없었다는 얘기다.

국민들 살림도 어려운데 나라 빚도 크게 늘어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한다. 관련통계에 따르면 올해 정부가 보증하는 국채와 특수채의 발행 잔액 합계, 즉 나라 빚이 800조원으로 5년 새 2배나 증가했다. 그 원흉은 정부·공기업의 ‘부채폭탄’이다.

4대강 사업 등 국가사업을 통해 늘어난 것이 주원인이다. 빚더미에 앉은 공기업의 신용강등은 물론 부실화도 예상된다. 더구나 올해도 저축은행 구조조정 등을 위해 나라 빚이 불가피한 상황이고 지난 4월에만 국채 6조원을 발행한데 이어 경기부양 추경이 20조원 안팎으로 전망되면서 빚은 더 늘 예상이다.

그러나 세금은 안 걷히고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증가와 통일비용 등 앞으로도 돈 쓸 곳은 많은데 경기마저 둔화돼 국가 살림살이는 더욱 어렵게 됐다.

결국 국가 빚은 국민들이 세금 등으로 떠안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국민들 개인당 빚은 개별채무에 국가채무를 더해 계속 늘고 있는 셈이다.

나라와 개인은 빚에 허덕이는 데 돈이 남아돌아 골치가 아픈 곳도 있다. 바로 대기업이다. 기업은 돈이 남아돌아 곤란하단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국내 10대그룹 쓸데없어 쌓아둔 돈 이 무려 124조원이며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채 현금자산으로만 방치되고 있다.
 
공기업을 제외한 자산 순위 10대그룹 소속 83개 12월 결산 상장사의 현금성 자산을 집계한 결과 작년 말 현재 총 123조7000억 원으로 지난 해 112조4000억 보다 10%(11조3000억 원)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금성 자산이란 곧바로 현금으로 바꿀수 있는 자산을 말한다. 국내 굴지 상위 3개 그룹은 올 들어 현금성 자산이 크게 증가했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쌓아 둔 기업예금이 312조에 이른다.

결국 거시경제 순환 사이클에서 기업이 가계와 정부의 경제잉여를 흡수만하고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돈이 한곳에 정체하다보니 사상최저의 저금리에도 불구하고 돈이 돌지 않는 ‘돈맥경화’현상이 심화돼 예금회전율이 6년 내 최저치를 기록했다.
예금은행 예금회전율은 2012년 3분기 3.9회에서 4분기 4.0회로 높아졌으나, 올 1분기 3.8회로 하락했고 2분기에는 3.7회까지 떨어졌다. 혹자는 기업 옥죄기 등 투자환경의 미비에 따른 투자부진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돈의 기업집중을 부르는 각종 요인에 따른 탓도 크다. 예컨대 기업이 번 돈을 투자자나 근로자에게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것이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의 배당수익률이 주요 선진국의 절반 수준이다.

한국과 미국, 일본 등 9개국 주식시장의 전년도 배당수익률을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는 1.3%로 가장 낮았다. 이탈리아는 4%, 영국 3.9% 에 달했고 미국도 2.45%, 일본도 1.58%로 우리보다 훨씬 높았다.

이른바 ‘쥐꼬리’같은 배당이 현금자산 ‘사상 최대’ 결과를 낳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근로자 절반을 넘어서는 비정규직이 최저생계비 수준에서 허덕이는 이유 중의 하나는 사용자의 저임지불과 비용 떠넘기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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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하반기 세계경제가 침체를 거듭하는 상황에서 가계 빚이 악화될 경우 국내 경제의 침체는 물론 심각한 사회동요 현상을 부를 수 있다고 전망한다.

서민들의 가계 살림살이가 주거비와 교육비 상승, 각종 공공요금인상 등으로 계속 악화되면 이른바 ‘가계부채의 덫’에 걸려 사회경제적 문제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MB 정권이 남겨놓은 국가부채 급증에 대한 대책과 함께 가계부채 경감과 소비 진작 등 정부 차원의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남아도는 기업들의 자산을 유효수요를 늘이면서 가계에 스며들게 하고 기업이익도 함께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할 시점이다. 

 

소정선 논설위원(前 코리아헤럴드·헤럴드경제 기자, 디저털 ‘말’편집국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