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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국가부채의 계영배

임혜현 기자 기자  2013.09.02 17:5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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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이 있다. 예로부터 술을 마실 때는 흔히 '술은 채워야 맛'이라고 했는데, 이 잔은 절대 잔이 가득 차도록 술을 담지 못하게 돼 있다. 일정량 이상 술이 채워지면 그 이상의 술은 저절로 새어나가게 되어 있다. 조선 후기의 거상이었던 임상옥이 늘 곁에 두었다고 해서 유명해진 술잔이다. 

거상이었던 임상옥은 장사로 막대한 재화를 벌어들이면서도 인간이 과욕을 부리면 추해지고 분명히 어디선가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이를 두려워 하고자 이 잔을 항상 가까이 뒀다고 한다.

현오석 부총리가 2일 "공공부문 전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현 부총리는 이날 재정관리협의회에서 "성장률 둔화 등에 따라 중장기 재정여건이 어려워지는 가운데 지방재정 악화, 공기업 부채 증가 등 각종 재정위험 요인을 고려하면 공공부문 전체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낙관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하고 "공공부문 전반의 각종 재정위험을 종합적·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현재의 재정운용 시스템을 점검해 혁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 부총리는 현재 세입·세출예산 위주의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중앙·지방·공공기관까지 포괄하는 전체 공공부문 중기재정계획으로 보완·발전하는 방안도 강구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미 MB정부 시절부터 소장파 학자들이나 일부 언론에서는 공기업이나 지방에서 쓰는 돈도 모두 국가의 빚 부담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당시엔 오로지 좁은 의미에서 정부가 진 빚(부채)만 국가부채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그때 진 빚이 이제 새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인정하기 싫어도 통계에서 빠져나가 잡히지 않던 그 빚이 다시 솟아올라오는 셈이다. 여기서 빚이 계영배 밖으로 사라졌던 술인가? 아니다. 부어도 제대로 채워지지 않았던 당국의(지방을 포함) 욕심이 계영배 밖으로 흘러간 술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술은 흘러나가고 이제 술값 고지서만 돌아올 때가 됐다.

여러 생각에 이것저것 해 보려고 부채의 주전자를 들어 들이부어도, 남실남실 차는 듯 하지만 꽉 차지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이제 걱정이 덜컥 드는 것이 아닐까. 현 부총리의 고백에는 이런 위기감과 상황 인식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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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아직 일부에선 빚 무서운 줄 모르는 담론이 횡행한다. 지방에서는 정부에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고, 당국에서도 체면상 각종 복지정책을 거둬들이기를 주저하는 눈치다.

복지정책 중에서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항목, 도저히 국가적으로 부담 주름살만 남길 것은 빨리 추려서 제외했으면 한다. 부채의 계영배를 잘 처리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