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이 있다. 예로부터 술을 마실 때는 흔히 '술은 채워야 맛'이라고 했는데, 이 잔은 절대 잔이 가득 차도록 술을 담지 못하게 돼 있다. 일정량 이상 술이 채워지면 그 이상의 술은 저절로 새어나가게 되어 있다. 조선 후기의 거상이었던 임상옥이 늘 곁에 두었다고 해서 유명해진 술잔이다.
거상이었던 임상옥은 장사로 막대한 재화를 벌어들이면서도 인간이 과욕을 부리면 추해지고 분명히 어디선가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이를 두려워 하고자 이 잔을 항상 가까이 뒀다고 한다.
현오석 부총리가 2일 "공공부문 전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현 부총리는 이날 재정관리협의회에서 "성장률 둔화 등에 따라 중장기 재정여건이 어려워지는 가운데 지방재정 악화, 공기업 부채 증가 등 각종 재정위험 요인을 고려하면 공공부문 전체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낙관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하고 "공공부문 전반의 각종 재정위험을 종합적·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현재의 재정운용 시스템을 점검해 혁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 부총리는 현재 세입·세출예산 위주의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중앙·지방·공공기관까지 포괄하는 전체 공공부문 중기재정계획으로 보완·발전하는 방안도 강구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미 MB정부 시절부터 소장파 학자들이나 일부 언론에서는 공기업이나 지방에서 쓰는 돈도 모두 국가의 빚 부담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당시엔 오로지 좁은 의미에서 정부가 진 빚(부채)만 국가부채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그때 진 빚이 이제 새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인정하기 싫어도 통계에서 빠져나가 잡히지 않던 그 빚이 다시 솟아올라오는 셈이다. 여기서 빚이 계영배 밖으로 사라졌던 술인가? 아니다. 부어도 제대로 채워지지 않았던 당국의(지방을 포함) 욕심이 계영배 밖으로 흘러간 술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술은 흘러나가고 이제 술값 고지서만 돌아올 때가 됐다.
여러 생각에 이것저것 해 보려고 부채의 주전자를 들어 들이부어도, 남실남실 차는 듯 하지만 꽉 차지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이제 걱정이 덜컥 드는 것이 아닐까. 현 부총리의 고백에는 이런 위기감과 상황 인식이 깔려 있다.
복지정책 중에서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항목, 도저히 국가적으로 부담 주름살만 남길 것은 빨리 추려서 제외했으면 한다. 부채의 계영배를 잘 처리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