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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오롱의 인권유린 행위 ‘심각’

노조, 위원장 선거 뒤 사측 ‘선거 무효 진행 과정’ 문건 폭로

최봉석 기자 기자  2005.12.20 02:3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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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NUP란 말은 새로 나온 시사용어다. 대기업에 입사할 수험생들이라면 이번 기회에 알아두면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안타까운 일은 최신판 시사상식을 뒤져도 이 같은 단어는 절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NUP는 New Union Project(Partner ship)의 줄인말이다. 신 노동조합 계획의 일환으로 모 대기업이 2005년에 머리를 짜내 만든 용어라고 한다. 겉으로는 거창해보이지만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노조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쯤으로 해석하면 무리가 없다.

국내 대표적인 화섬업체인 (주)코오롱이 자신들이 원하는 노조 위원장을 당선시키기 위해 대응 전략을 수립하고 구체적인 활동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노조 위원장 선거를 준비하는 과정도 아니고, 선거가 정상적으로 마무리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정하지 않은 채 재선거를 준비했던 것이다. 

(주)코오롱은 지난 10월 “위원장을 사칭하며 요구하는 일체의 협의나 요청에 응할 수 없다”는 ‘위원장 사칭 및 부당행위 중지 요청’ 공문을 보내는 등, 행정기관인 구미시로부터 노동조합 대표자변경 신고필증까지 받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사측에 불편한 노조가 당선된 직후 일절 대화를 중단한 상태다.

지난해 말부터 대규모로 진행된 사측의 인력 구조조정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이유로 9대 노조 집행부가 지난 5월께 전원 사퇴함에 따라 7월 20~21일 제10대 노조 위원장 선거가 열렸고 이를 통해 사측의 ‘인력 구조조정 분쇄’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평조합원 출신 최일배씨가 당선됐지만 사측은 이 같은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앞서 지난 7월 28일 당시 조현문 코오롱노조 선관위 위원장은 간담회를 개최한 자리에서 느닷없이 ‘선거무효’를 주장한 뒤, 선관위위원장을 사퇴하고 곧바로 잠적했다. 회사측은 이에 대해 일절 언급을 피했다.

노조는 당시 “회사측이 당선무효를 위해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다”면서 “이는 말도 안되는 억지주장으로 자살골을 넣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자살골은 5개월 여만에 ‘결국’ 터졌다.

◆ 구미공장 노조 와해공작 문건  “충격적”  

(주)코오롱 구미공장에서 회사측이 노동조합의 임원선거 종료 뒤 ‘준비된 위원장’을 당선시키기 위해 전 부서에 걸쳐, 장단기적으로 노동조합 와해 공작을 시행했던 사실이 자세히 공개된 문건이 폭로됐다.

   
(주)코오롱은 제10대 노조 위원장 선출을 위한 1,2차 선거를 거치면서 회사측이 원하는 후보가 당선되지 않자 Re-E라는 내부 문건을 작성, 새로운 위원장 당선을 위한 대응 전략을 수립하고 구체적인 활동에 들어갔던 것으로 밝혀졌다.

노조측이 공개하고 본지가 지난 16일 입수한 ‘Re-E’라는 제목의 문건에 따르면, (주)코오롱은 조합원을 3등급인 White(확실자, 회사측에 우호적인 사람) Gray(의심자) Black(반대자, 노조측에 우호적인 사람)으로 분류해 대상자에 대해 Cross-Check를 위해 2명 이상의 관리 담당자를 배정했다.

‘Re-E’란, Re-electon의 줄인말. 재선거를 치르겠다는 회사측의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또 조별로 조합원들을 그룹화해 리더를 선정해 관리하고, 조합원 내부에 정보원을 심어 이들을 이용해 조합원들의 여론과 개인성향을 파악하고, 그 결과에 따라 의심자로 분류된 조합원에 대해서는 회유, 협박, 설득 등의 공작을 진행했던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문건은 또한 조.반장을 중심으로 확실자를 구축하고, 의심자에 대해 물증확보나 투표기권을 유도하며 반대자들은 책임담당자를 지정해 밀착감시하면서 시정지시, 인사조치 등으로 압박하라고 지시했다.

노조측이 공개한 문건에는 이밖에 △“조직에 협조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인식을 부여하라 △“돌발상황 시에는 조직적, 집단적 선제대응을 실시히라”는 등의 행동강령을 ‘조합원 중에 반대자로 분류된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라’고 지시한 내용도 자세히 기록돼 있다.

또한 현장 하급 관리자들인 파트장, 반장들에게는 업무 평가의 40%를 노경분야에서 평가하는 것으로 하고, 결속력 강화를 위한 발대식 및 워크숍까지 사외에서 진행하고 일일 지시와 일일 보고를 통해 그 내용을 취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 조합원 인간적 자존심 마저 유린

심지어 현장에서 영향력을 소지한 대의원 및 활동가 계층에 대해서는 양호 성향자를 통한 시비걸기, 시비 걸면서 유언비어 논리개발을 유표할 것을 지시하는 등 코오롱 구미공장에서 근무하는 조합원들은 ‘재벌기업’이라는 거대권력으로부터 인간적 자존심마저 유린당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측은 ‘Re-E 전략’의 개요에 대해, “10대 위원장 선출을 위한 1,2차 선거를 거치면서 결과에 대해 선거패배 원인 분석을 토대로 NUP 당선을 위한 대응 전략을 수립하고 구체적인 활동에 대해 정리한 내용”이라고 문건을 통해 설명했다.

회사 관리자들끼리 주고 받은 이메일 내용도 충격이다.

선거 직후인 지난 8월2일 모 과장이 여러 명의 현장반장에게 보낸 메일 내용에는 “BLACK 성향자를 확실하게 적출해야 한다. 그래야 그림이 그려진다”면서 “한입 건너 두입으로 번진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메일)내용은 보시고 바로 삭제해달라”고 기록돼 있다.

같은 달 22일 보낸 메일에는 “여러분들 조에서 BLACK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악성’을 골라내야 한다”면서 “예를 들어 ○○○ 같은 사람은 악성으로 보면 될 것 같다. WHITE라고 분류되는 사람은 꾸준히 관리하자”고 당부하는 등 반대자에게는 인권유린을, 확실자에게는 지지와 격려를 꾸준히 보내주면서 반대자에 대한 고립화 전략 실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메일에는 또 노조 선거 결과에 따른 노사갈등이 반복되면서 시작된 노동부 소환과 관련, 소환 조사를 받을 경우 어떤 내용으로 진술하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지시하는 내용도 담겨져 있다. 지난 9월15일에 과장과 반장이 주고 받은 이메일에는 ‘노동부 출석시 질문 및 답변 내용’이라며 ‘내용을 숙지’하라고 지시돼 있다.

이와 함께 지난 10월 MBC가 코오롱 노조위원장 선거 뒤 회사측 고위 임원이 노조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에게 수백만 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제공하며 선거 무효화를 시도했다고 보도한 것과 관련, “지금 회사는 존폐위기의 어려운 상황”이라며 “무대응 무의견으로 대응하라고 전달하라”고 이메일을 통해 지시하기도 했다.

당시 MBC측 보도로 노조 선관위가 ‘잠적’을 하게 된 것은 사측이 부당하게 개입한 것이라는 노조측의 의혹을 사실로 확인시켜줬다.

이와 관련 민주노총 구미지역협의회 배태선 사무국장은 “(주)코오롱의 부당노동행위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구미노동사무소를 비롯한 관계기관은 1년 내내 이를 방치하고 있다”며 “코오롱에서 노동조합과 정리해고자들은 회사의 갖은 불법, 부당노동행위를 감당해야 했다”고 말했다.

코오롱노조측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인정하지 않는 부당노동행위 정도의 선을 넘어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 보호받아야 할 기본적 인권조차 말살돼 있고, 더욱이 지금도 그것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경영상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경북 구미, 김천, 경산 공장의 직원 중 약 35%를 구조조정했던 (주)코오롱은 회사측의 구조조정에 반대했던 9대 집행부의 지지를 받고 있는 최일배씨가 당선될 경우 향후 있을 인력 구조조정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판단, 부당하게 선거에 개입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주)코오롱은 지난 10월 21일 경북 구미공장과 경산공장에 있는 스판덱스 생산 라인의 가동을 중단했지만 노조측의 거센 반발을 샀다.

◆ 회사측  “문건 아는 바 없다” 강력 부인

(주)코오롱은 이 같은 문건에 대해 “아는 바 없다”며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윤정민 코오롱 관리이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노동부의 조사 결과를 보고 회사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지난 1년 동안 코오롱 내 모든 노동자들이 회사가 매긴 등급에 따라 인권을 유린당했고, 이 고통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기 위해 검찰과 노동부가 하루빨리 나서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코오롱노조는 지난 13일 사측의 노조에 대한 인권유린 및 탄압 의혹과 관련, 국가인권위원회에 조사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한 상태다.

이에 따라 노동부는 (주)코오롱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조사를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때문에 지난해 7월부터 야기된 (주)코오롱의 노조에 대한 부당노동행위와 불법적인 지배개입 의혹에 대해 조사가 이뤄질지 주목되고 있다.

또 대기업의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이 같은 행위는 (주)코오롱 뿐만 아니라 다른 일부 대기업들도 비슷한 실정이어서 대기업의 부당한 횡포를 근절시킬 수 있는 당국의 적절한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는게 노동계의 시각이다.

(주)코오롱은 현재 고용조정의 원인으로 고임금, 섬유산업 경쟁력 약화를 들고 있다. 그러나 코오롱의 속사정을 잘 아는 당사자들은 부실계열사의 경영실패를 그 원인으로 꼽고 있다.

기업 전문가들은 “재벌 3세이자 최고총수 이웅렬회장은 경영 초기 벤쳐기업 투자에 손을 대며 돈을 물쓰듯 하면서 코오롱그룹을 내리막길로 내몰더니 급기야 HBC코오롱, 코오롱캐피탈의 자본 잠식과 공금횡령 등으로 수 백억원을 날리며 코오롱을 쇄락하는 기업으로 전락시켜 왔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편 올해 초 노조로부터 단체협약 위반 및 불법파견, 부당해고 등의 혐의로 고소를 당했던 한광희 (주)코오롱 대표이사는 지난 12일, 신설되는 중국전략본부 사장에 임명됐다.

이번 인사와 관련, 코오롱 관계자는 “구조조정 등을 통해 수익성 개선 및 주가상승 등 성공적인 턴어라운드를 이룬 것에 대한 성과 평가 차원”이라고 말했다.

(주)코오롱 구미공장 소속 조합원들은 이번 인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