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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뱅킹 사용소감 받는 우리은행 지원서, 갑의 횡포 논란

임혜현 기자 기자  2013.08.30 14:4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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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하반기 은행권 채용 규모가 예년보다 줄어든 가운데, 취업준비생들이 주눅들고 있다. 우리은행의 경우 하반기 200명, 연간 438명선으로 지난해보다 162명(27.0%) 채용 규모를 줄일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좁은 문 앞에 주눅이 든 취업준비생들에게 우리은행이 지나치게 까다로운 자기소개서(이하 자소서)를 요구하고 나서 문제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금년 하반기 우리은행 공채의 자소서에서는 우리은행 인터넷뱅킹을 사용해 보고 소감을 적어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두 개의 항목으로 나눠어 인터넷뱅킹을 가입한 점포의 대고객 서비스에 대한 느낀 점, 인터넷뱅킹을 진행해 보고 장점과 개선점을 찾아 적도록 돼 있다.

서류 지원 첫 관문부터 '상품 판매 당해?'

즉 지원을 하려면 인터넷뱅킹을 새로 가입하든 적어도 이전에 만들어 놓은 것을 사용하든 간에 실제 금융 거래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최근의 자소서는 문항이 점점 구체화되면서 글자 수도 한정돼 점차 까다로워지고 있는 추세다. 하나의 자소서를 만들어 놓고 여러 곳에 활용한다는 것은 이미 거의 불가능한 상황. 또 핵심을 논리적으로 확인하기 위한 각 회사 인사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어서 부정적으로만 볼 수도 없다.

자신이 근무하고 싶은 은행에서 선배 행원들의 판매 관행을 살펴보고 타산지석 혹은 반면교사를 삼거나, 상품의 장단점을 빠르게 파악해 내는 능력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공채 과정에서 전적으로 무의미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상품 가입과 거래를 강제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 또 그것을 첫 관문부터 제시하는 게 타당한지에는 의견이 엇갈린다.

예년의 우리은행 채용 실례를 보더라도, '세일즈 스킬' 같은 실무적 안목은 인성면접과 집단토론 등과 같이 '1차 면접 단계'에서 함께 살폈다. 문제로 출제되는 상품은 어렵지 않기 때문에 상품 관련 지식이 부족해도 전반적인 판매 상황을 사전에 파악하고 의욕적으로 임하면 됐다.

   각 회사별로 채용 서류의 질문이 복잡해져 가고 있는 가운데, 올해 하반기 우리은행 공채 자기소개서에는 우리은행 인터넷뱅킹을 가입해 보고 영업점 대고객 서비스와 인터넷뱅킹의 장단점을 평가해 보라는 문항이 등장했다. ⓒ 우리은행  
각 회사별로 채용 서류의 질문이 복잡해져 가고 있는 가운데, 올해 하반기 우리은행 공채 자기소개서에는 우리은행 인터넷뱅킹을 가입해 보고 영업점 대고객 서비스와 인터넷뱅킹의 장단점을 평가해 보라는 문항이 등장했다. ⓒ 우리은행

그런데 처음 서류 관문에서부터 상품 가입이나 분석을 요구하고 또 거래를 강제하면서, 을의 처지일 수밖에 없는 취업준비생들에게까지 영업을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취업준비생들은 대체로 말을 아끼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익명을 전제로, 우리은행이 갑의 횡포를 부리는 것 같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미스터리 쇼퍼 노릇에 돈 없는 고객 비대면 채널 몰기 경험, 은행계는 정글?

우리은행이 당장의 영업 실적 올리기 측면에서만 이 같은 항목을 삽입한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처음 사회 진출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에게 낼 문제로 적합한 것이냐는 의문이 남는다.

   우리은행이 공채 첫관문부터 인터넷뱅킹 가입과 사용을 사실상 강제하면서, 취업준비생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것이냐는 지적이 나온다. 취업준비생들 대다수는 입장 표명에 조심스러우나 익명게시판에서는 '갑의 횡포' 불만이 나오고 있다. ⓒ 다음 카페 '닥치고 취업'  
우리은행이 공채 첫관문부터 인터넷뱅킹 가입과 사용을 사실상 강제하면서, 취업준비생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것이냐는 지적이 나온다. 취업준비생들 대다수는 입장 표명에 조심스러우나 익명게시판에서는 '갑의 횡포' 불만이 나오고 있다. ⓒ 다음 카페 '닥치고 취업'

취준생들이 각자 실제로 영업점을 방문, 대고객 서비스를 평가하게 하는 것은 현재 행원 근무자들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미스터리 쇼핑이라는 평가다. 반대로 취준생들 입장에서도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작성하기에도 불안하고, 흠을 적극적으로 찾아내기도 거북한 항목이다. 금융전문가의 꿈을 안고 도전하는 이들에게 고객들의 눈치와 감시에 노출된 서비스 직종의 비애부터 간접 체험하게 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소액 거래 고객들을 저원가성 채널로 몰고 있는 일선 점포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경험하게 하는 게 취준생들에게 대한 처우로 적당한 것이냐는 우려도 나온다. 큰 자산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적은 취준생이 인터넷뱅킹 가입을 경험하게 하는 과정(점포 방문→일반 예금 개설→인터넷뱅킹으로 사용 패턴 중심의 이동)은 은행들이 이미 얼마 전부터 집요하게 진행해 온 소액 거래 고객들을 저수익성 채널로 유도하는 과정의 집약판이라는 것이다.

이번 공채에서 우리은행에 최종 합격을 하지 못하는 취준생들의 경우, 특히 은행 외의 다른 직종으로 발길을 돌리게 될 취준생이라면, 우리은행의 이런 공채 진행 패턴에서 은행계 전반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게 될지 재고해 볼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