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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귀족노조의 셀프먹칠 '면책특권 논란'

임혜현 기자 기자  2013.08.23 16:5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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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알렉산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는 지금도 연극이나 영화로 계속 각색될 정도로 좋아하는 이가 많다. 시골 출신의 달타냥이 재상인 리슐리외 추기경의 음모에 맞서 사랑과 나라를 구한다는 드라마틱한 내용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소설에서 마치 악의 화신처럼 묘사된 리슐리외 추기경은 루이 13세가 왕권 강화를 추구하면서 중용한 인물로 프랑스의 부국강병을 평생의 업으로 삼았던 인물이다.

조세제도를 개혁하고 지역별 표준 징세제를 도입한 인물이자, 천주교 고위 성직자인 추기경의 신분임에도 국익을 종교보다 우선시, 30년 전쟁 당시에는 신교 세력과 손을 잡았다. 한때 프랑스 세력권이었던 캐나다 퀘벡주에 리슐리외강이 있고, 프랑스 국립박물관 제1전시실 이름도 리슐리외실이다.

해군에서도 함명을 붙인 전례가 있다. 그럼에도 삼총사를 기억하는 이들은 리슐리외 추기경을 권모술수의 정치인으로 연상할 테니 고인으로서는 보통 억울한 일이 아닐 것이다.

가끔 어떤 첫인상이 어떤 존재나 개념에 대한 이해를 망치는 일이 적지 않은데, 뒤마의 리슐리외 오해 못지 않게 통탄할 일이 오늘날 한국 노동운동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노조의 면책특권 요구 무리수라는 선정적인 보도가 연이어 언론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이미 여러 차례 귀족노조 논란을 불러온 현대차노조가 이런 요구를 했다고 해 이슈가 되더니, 이번엔 다산콜센터에서 파업 강행 운운하며 직접고용과 면책특권 요구를 했다고 해 일각에선 "어디서 못된 것부터 배웠다"는 류의 비판도 나온다.

면책특권이란 무엇인가. 원래 정당한 파업이라면 민형사상 소송에 걸릴 것을 두려워 할 게 아니다. 그런데, 왜 이 같은 요구가 나오고 특권 논란이 불거진 것일까.

일각에서는 노조 활동에 대한 '전략적 봉쇄소송'으로 과도한 가압류나 가처분을 거는 관행이 문제라고 얘기할 것이다. 정치적 파업이나 절차를 위반한 파업 등이 아니면 원래 이 같은 판단을 법원이 내 줘서는 안 될 것인데, 거액이라는 표현만으로 모자랄 천문학적인 규모의 가압류 등으로 노조를 압살하는 일에 사법부가 도구를 빌려주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런데, 왜 일응 타당해 보이는 면책 관련 논의마저 이렇게 '면책특권'으로 거론되고 있는가. 이는 노조의 몽니에 대응하는 사용자 측이나 기사를 다듬는 언론의 '어젠다 세팅'에 놀아나는 측면도 없지 않으나, 가장 큰 문제는 무리수 카드를 꺼내든 당사자들에게 있다고 할 것이다.

현대차 노조는 이미 올해 생산라인을 불법으로 중단시킨 문제로 배상 판결 철퇴를 맞아 눈길을 끈 바 있다. 법원이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전 노조 간부에게 "회사에 1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했는데, 현대차에서 발생한 라인 중단 행위에 대해 법원이 당사자에게 직접 배상하라고 판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만큼 이들의 문제적 행동에 사회적으로 문제 인식이 퍼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특히나 다산콜센터의 상담원들이 친노동성향의 시장이 임기 중이라 해서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식으로 무리수 행보에 가담한 게 아니냐는 문제에까지 이르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공무원 철밥통(직접고용 요구)에 무소불위의 파업권(현대차노조 같은 귀족노조 비판을 듣는 대기업 노조들의 행태)까지 갖추려는 태도로 시민들 눈에 비치기 딱 좋으니, 이를 어쩔 것인가.

'정당한 노동운동에 대한 면책 논의'라는 좋은 주제를 '면책특권'이라는 왜곡 냄새가 진한 어젠다로 포장해도, 적잖은 사람들이 오히려 이에 공감을 하는 불상사가 빚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개념에 대한 오해 유발도 이 정도면 수준급이다. 더욱이 이런 문제가 고작 자신들의 이익 강화 카드 중 한 장으로 쓰이고 있다니 더욱 안타깝다. 오랜 세월 노동법이 발전하면서 가다듬어져 오고 있는 개념을, 그것도 아직 상당수의 노조와 노동자들이 전략적 봉쇄소송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 상황에서 하필이면 욕먹기 가장 좋게 '오용'을 하고 나섰다니 상황이 너무도 좋지 않다. 이제 평범한 갑남을녀들 중 많은 이들이 노동운동계에서 '면책' 소리만 꺼내도 백안시를 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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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적 재미를 위해 명재상을 악질 정치인처럼 묘사한 뒤마의 붓솜씨는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재미라도 선사했다지만, 이번 문제는 대체 누구를 위한 선택인가. 지금이라도 잘못된 협상안 전체를 함께 접든지, 아니면 적어도 그 중에 저 대목 하나만이라도 빼서 먹칠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자기 얼굴에 먹칠만 하는 것이면 모를까, 전체 노동자의 미래와 권익에 관련된 개념을 영영 진흙탕에 처박을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