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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광장] 플라톤 마저 외면하고 싶은 21세기 대한민국

소정선 논설위원 기자  2013.08.19 10: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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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역사에 관한 두 기초적인 견해는 아직도 논쟁 중이다. 역사는 발전하는가, 아니면 반복 또는 퇴보하는가. 현재의 삶을 인정하고 더 나은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은 발전사관 쪽이다. 삶을 비관적으로 보면 역사는 반복, 또는 퇴보하고 있다.

신의 존재를 부정한 니체는 역사의 순환론을 주장했다. 왠 뜬금없는 소리냐 하겠지만 최근 우리 정치를 끝 모를 블랙홀로 빨아들이는 이른바 ‘국정권 선거개입’사건이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8개월이 넘도록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확대 분열을 거듭한다. 정쟁이 지루하다 못해 자칫 다음 대통령 선거까지 갈 수 있겠다는 개콘식 발상도 해본다.

이 시점에서 짚어 볼 것은 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 해결과정과 이 사건이 지니는 역사적 의미이다. 사건의 요체는 이명박 정권이 대통령 선거에 대비해 온라인 부대를 국정원산하에 조직해,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종북(북한 정권 추종자)으로 몰아가는 등 여론을 조작한 것이다.

민주당 등은 “지난 12.19 대선에서 70여명의 댓글 인력이 수 십개의 사이트에 글과 댓글을 쓰며 여론을 조작하고 사실을 왜곡하고 야당 후보들을 비방했다”고 주장한다.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관련혐의로 기소하고 국회는 국정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막상 국정조사가 시작됐지만 여야간 이견으로 지지부진한 상태. 증인 출석한 국정원장은 국정원대북 심리전 업무의 연장이라고 강변한다.

대학생들을 시작으로 시국선언이 학계, 종교계로 확산되고 시민들의 촛불시위와 야당의 장외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민생경제 회복을 내세워 기세 좋게 출범한 박근혜정권이 정치적 암초에 부닥쳐 오도 가도 못 하는 형국이다.

정치란 무엇인가. 현대인이 생각하는 정치의 목적은, 적어도 국어사전에 따르면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과거 정치의 목적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 정치론에 따르면 현대의 사전적 정의를 충족한 후  “국가가 시민을 교육시켜야 하며  인격수양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21세기 한국의 정치 현실은 시민의 인격수양은 커녕 갈등조정 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분명하지 않은가. 2000년 전 철학자의 정치론이 한결 고상하고 격이 높다. 그러면 우리의 역사는 정체내지는 퇴보하고 있는 셈이다. 

사건의 핵심인 국정원의 행위는 과연 어떤 역사적 의미를 띠는가. 2000년 전 한 철학자의 이상적 정치제도 도출과정을 살펴보자.

서양사상의 비조인 플라톤의 저서 ‘국가론’의 한 대목이다.     

 “그렇다면 참주정체(僭主政體, 독재정치)는 아마도 민주 정체(民主政體) 이외의 다른 어떤 정체에서도 조성되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즉 극단적인 자유에서 가장 심하고 야만스런 예속이 조성되어 나올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네.”라고 내가 말했더니”…(중략)…

“민주 정체의 나라를, 지금도 사실상 그렇듯, 논의에서 세 부류로 갈라 세우도록 해 보세나. [방금 말한] 그런 한 부류(가장 사나운 무리: 정치인)가 이 나라에서는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로 인해서, 과두 정체의 나라에 못지않게, 분명히 자라나게 되네”…(중략)…

“하지만 이 부류는 과두 정체의 나라에서보다 이 나라(민주국가)에서 한결 더 사납다네.”
“어째서죠?”
“민주 정체에서는 이 부류가, 소수를 제외하고는, 분명히 이 정체의 앞장서는 부류이며, 이들 중에서도 제일 사나운 무리가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데, 나머지는 연단 주위에 가까이 앉아서는 웅성거리거니와(여론조작), 다른 말 하는 사람들을 그냥 두지 못하네(언론탄압). 그리하여 이런 정체에서는 모든 것이,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런 부류(정치인)에 의해서 조종되네.”라고 말했더니,…(중략)…

“대중(일반대중)은 셋째 부류이겠는데, 이들은 언제나 한 몫을 얻기는 하나, 앞장서는 자들(정치인)이 가진 자들한테서 재산을 빼앗아서 대중한테 나누어 주되 대부분은 자신들이 차지할 수 있는, 그 한도 내에서 라네.”라고 내가 말했더니, “아닌 게 아니라 그 정도 몫을 얻습니다.”라고 그가 말했다네. …(중략)…

“그런데 대중은 언제나 어떤 한 사람을 앞장 세워, 이 사람을 보살피고 키워 주는 버릇이 있지 않은가?” …(중략)…

“그러므로, 참주(독재자)가 자라나게 될 때는, 대중의 선도자 격(格)인 뿌리(대중민주주의) 이외의 다른 어떤 것에서도 그 싹이 트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하네.”

플라톤은 민주정치는 “대중들이 정치가들이 부자들에게 빼앗아 주는 떡고물에 취한 상태에서 여론조작과 언론탄압이 진행되면서 독재정치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은 제도”라고 단언한다.

민주정치를 여러 정치제도 중 독재정치 다음으로 좋지 않은 하급정치로 격하시킨다. 여론조작과 언론탄압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기 때문이다. 그는 그래서 가장 이상적인 정체제도로 철인정치를 꼽는다. 국정원의 댓글 사건과 이어지는 거대 여당의 국정조사 방해를 플라톤의 ‘여론조작과 언론탄압’으로 연결하면 지나친 확대 해석일까.

플라톤의 말대로라면 국정원을 동원한 여론조작과 언론탄압에 의해 박근혜정권이 탄생했고 이들은 결국 독재정권으로 전락한다는 것인데. 만약 적절한 해석이라면 소름 끼치는 상황이다.

점쟁이가 아니고서야 플라톤이 2000년 후 한국에서 벌어질 일을 그대로 예언한 것이 아닌가. 물론 지나친 해석이라면 다소 안도할 수 있지만 그래도 분명한 것은 역사 발전 주장에는 선뜻 손들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20세기 60~70년대에 한국인이 경험한 여론조작, 인권 및 언론탄압 등 독재정치의 나쁜 추억이 떠오르는 탓이다. 민주투사들의 숱한 희생으로 그나마 이 정도의 정치현실을 만들었는데 이제 다시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니.

민주정치의 폐해가 오늘날 또다시 재연됐다고, 플라톤의 말처럼 이제 다시 철인정치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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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역사의 발전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말이다. 역사적 낙관론자들은 인간성 존중이나 물질문명의 발전은 전쟁과 파괴 등 고통의 과정을 거친 후 이루어졌으며 인류 역사는 단순히 직선적인 발전 과정을 밟는 것이 아니라 지그재그 식 또는 나선형 식의 발전 과정을 밟는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단기적인 관점에서 또 현재의 문제점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해 역사의 진보를 부정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역사의 퇴보나 정체를 막고 지속적으로 진보할 수 있도록 하는 구성원들의 ‘노력’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경주해야할 역사 발전을 위한 ‘노력’을 어떤 것인가? 모두가 풀어야할 숙제이다.


소정선 논설위원(前 코리아헤럴드·헤럴드경제 기자, 디저털 ‘말’편집국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