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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법이 모호함에 취하면 기업은 '기획소송'표적?

일감몰아주기 개정 등으로 우려↑…수출시장서 불이익 논란도

임혜현 기자 기자  2013.08.17 12:5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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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근대적 법원리만 가지고서는 기업이 급성장하는 현대적 경제 발전상의 병폐를 모두 제어할 수 없다. 이에 따라 경제법이라는 새로운 영역이 발전해 왔고 그 효용성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공정거래법(독점규제법) 등 경제법 영역이 발전하는 데에도 명확성의 기본적 원리가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요청은 여전히 유효하다. 음지에서 빚어지는 각종 문제를 규제하려다 보니 경제법 역시 무소불위의 힘을 갈구하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법치주의 원리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불만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개정법, '재벌 전횡 제약 필요' 논리 따라 모호함으로 무장? 

금년 들어 공정거래법 중 일부가 개정돼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이 같은 우려가 더 높아지고 있다. 이미 지난 4월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경제민주화 관련 공정거래법제의 쟁점과 과제' 정책세미나에서 "(봄 논의 당시) 가장 논란이 많은 불공정 하도급거래와 계열사 간 부당 내부거래 관련 개정 논의가, 집행은 강화하면서 행위의 불공정성 판단은 점점 쉽게 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註: 강조 표시는 편집자)"고 우려한 바 있다. 이렇게 되면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크게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법의 개정이 이뤄진 데 이어 시행령 마련 정국에 기업 등이 예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운 점도 이 같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는 게 아니냐는 해석을 더하고 있다. 시행령에 어떤 자구가 담기느냐, 또 자구가 무엇인가 그 하나하나에 따라 엄청난 과징금 폭탄을 맞느냐 여부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벌써 법률 개정 국면에서부터 구체적으로 논란이 불거진 부분도 있다. 총수 일가에 대한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을 신설하고, 금지의 유형을 '사업 능력이나 거래 조건 등에 대한 합리적 고려나 다른 사업자와의 비교 없이 상당한 규모로 거래하는 행위' 등 3가지로 하기로 했는데, 이는 이미 '경쟁제한성 입증 없이도' 제재가 가능하게 해 논란거리로 지적됐다.

아울러 계열사간 부당한 지원에서 위법성을 따지는 요건이던 '현저히 유리한 조건'을 '상당히'로 완화해 죄형법정주의 등 다른 법률 시스템과 함께 살펴 볼 때 지나치게 자의적인 몰아붙이기 수단을 만들었다는 우려를 샀다.

물론, 기업 간 거래에 총수 일가 구송원이 소유하는 회사가 끼어들어 수수료를 챙기는 속칭 '통행세'를 규제하는 것 등은 경제법의 기본 영역 발전상 언젠가 반드시 신설했어야 하는 것이고, 그 규정이 이번에 신설된 점 등 긍정적인 접근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대로 재벌의 문제 행위가 발전하는 데 발맞춰 규제안도 구체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과, 재벌이 밉다고 해서 '이현령 비현령'식으로 느슨하게 처벌의 길을 열어주는 것과는 문제가 다르다.

공정거래위원회 등에서 애초 사익편취 규제 조항을 법 제3장(경제력 집중 억제)에 넣기를 원했으나, 반대 의견을 의식 결국 제5장에 반영한 것도 지나치게 보괄적 힘을 추구하려는 논리, 편리성만을 따르려던 행동이었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렇게 규정을 집행에만 편리하게 바꾸는 것은 장기적으로 여러 문제를 낳을 수 있다. 비단 경제법 영역 외에도 우리나라 형사법 실무에서는 일처리를 완벽히 매조짐해 놓지 않고도 우월적 지위를 기반으로 고압적으로 이를 감수하도록 (사실상) 압박하거나 양형 등에서 일부 배려하는 조건으로 이를 받아들이게끔 타협을 하려 하고, 처벌 당사자 역시를 이를 감수하고 넘어가는 이른바 '타협적인 처벌'이 존재해 왔다. 이런 관행적 태도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황에 가장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해야 할 기업 관련 영역에서 자의적 해석의 도구를 마련하는 것은 한국 기업이 일정한 불이익과 자의적인 해석을 감수하도록 해 결국 글로벌 경쟁력을 좀먹는 부담을 지우는 가능성과도 연결된다.

무엇보다, 이런 이면적 관행은 해외에서는 인정되지 않으며 그 결정이나 처벌의 '액면 그 자체'에 따라 수출기업이 외국에서 추가로 피해를 입을 여지가 높아지고 있다.

모호한 결정 미봉책엔 기업체 반발?…해외 '라면 기획소송'보니 국익 배치 우려도

7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한 대형 한인마트가 농심 등 4개 라면 메이커와 이들 회사의 현지법인을 상대로 LA 연방지방법원에 집단소송의 진행을 승인해 달라고 요청해 관심을 끌었다. 한국에서까지 이 문제에 눈길을 주게 된 것은 사실상 집단소송이 제기되는 수순이며, 해당사의 한국 본사 경영 상황 전반에까지 큰 불똥이 튈 수 있기 때문이다.

  농심 라면과 관련,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부과가 미국에서 표적소송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최근 현실적 문제로 불거져 눈길을 끌었다. 공정하고 빈틈없는 경제법 영역의 해석과 처분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농심 제품의 애호가로 알려진 미국인 음악가 퍼렐 윌리엄스가 농심 신라면(수출 버젼)의 사진을 트위터상에 올린 것. ⓒ 퍼렐 윌리엄스 트위터  
농심 라면과 관련,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부과가 미국에서 표적소송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최근 현실적 문제로 불거져 눈길을 끌었다. 공정하고 빈틈없는 경제법 영역의 해석과 처분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농심 제품의 애호가로 알려진 미국인 음악가 퍼렐 윌리엄스가 농심 신라면(수출 버젼)의 사진을 트위터상에 올린 것. ⓒ 퍼렐 윌리엄스 트위터

미국의 손해배상금 판단 실무 기준을 적용하면, 이 사건에서 미국 교포 혹은 주재원이나 유학생 등 주요 소비자가 2800억원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문제는 이 같은 배상 요구가 우리 법률 감각에는 생소하다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한국적인 경제법 집행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외국 로펌 등에게 소송의 표적이 될 여지를 만든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우리나라 공정위 조사 결과 이들 4개 회사가 담합을 통해 지난 10여년간 부풀린 가격으로 라면을 판매한 것으로 결정된 바 있다. 그런데 이 과징금 결정에는 관련 기업이 바로 불복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법원에 과징금 부과 취소를 구하는 소송에 들어간 것. 기업체 입장에 경도된 시선이라는 평가도 있겠으나, 일각에서는 공정위가 라면 4사에 무리하게 담합 과징금을 물렸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이 관점을 따라가면, 이런 처분이 미국에서 집단소송 후폭풍을 몰고 왔다는 논리적 귀결에 이르게 된다.

다른 경우에도 공정위가 타협적인 처벌로 모호하게 일을 덮었다는 비판을 받은 경우가 존재한다. 일례로 지난해 5월, 공정위가 대한항공이 몽골 미아트항공과 담합해 13년째 인천-울란바토르 노선을 독점 운항했다고 밝혀 파장이 일었다.

이 판단에는 당시 대한항공의 억울하다는 주장에 동조하는 측이나 대한항공이 몽골에서 부당한 이익을 보고 있다며 비판적 견해를 취한 쪽 모두에게서 불만이 쏟아졌었다.

공정위가 담합 결론을 내리긴 했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았던 것이다. 다른 담합 관련 사건과 달리 이 조사건은 과징금 부과가 없었다. 시정하라는 명령에도 역시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고치라"는 알맹이가 빠져 있었다.

'처벌 그 자체에 의의' 기업 위에 군림할 게 아니라, 승복하게끔 명쾌한 처분해야
 
통상 공정위는 담합의 경우, 관련 매출을 산출해 과징금(관련매출의 최대 10%)을 부과함을 관례화해 왔는데, 정책적 고려에 따른 부득이한 결정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한편 이에 대해  공정위가 결정에 대해 자신감이 없다는 방증이 아니냐는 비판도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몽골 관련 공정위 처분은 어느 입장에서 보더라도 문제점이 남는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 경제법(공정거래와 독점 관련 규제) 관련 해석과 집행을 할 때 이처럼 모호한 처벌로 매듭짓지 않는다. 위의 농심 사안에서 짐작할 수 있듯, 어중간한 처분을 해 놓으면 바로 소송을 기획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이는 국민경제적 관점에서나 소송경제학상 또 사법정의상으로도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같은 항공 관련 사례를 보면 금년 8월 들어 대한항공이 항공료 담함 혐의로 거액의 배상금을 문 경우가 있다. 다만 이 경우 이미 증시용어를 빌리자면 '재료가 노출돼' 주가에 큰 장기적 타격을 불러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이 이를 처리하는 데 일정한 시간을 사실상 부여받으면서 경영 악재를 관리했던 것이다.  

대한항공은 2000년 1월부터 2007년 8월초까지 미국에서 미국∼한국간 노선표를 구매한 고객에게 현금 3900만달러(약 435억원)와 2600만달러(약 290억원) 상당의 상품권을 제공하기로 합의했는데, 이는 2006년 미국 법무부가 대한항공 등을 대상으로 가격의 담합 여부를 조사한 후 과징금을 물린 데 뒤따른 집단적인 소송을 합의처리한 결과물이다.

큰 과징금과 이에 뒤따른 민사적 영역에서의 집단소송에도 불구하고 지적이 타당하고 논리적으로 빈틈이 없으면 기업에서 이를 승복하기가 쉽다. 법적 해석이나 적용의 모호함에 따라 '불의타'를 맞는 게 아니기 때문에, 추가적인 소송 등에 대해서도 관리하는 데 일정하게 리스크 관리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현실적 예견 가능성도 나온다. 

이렇게 근래 해외와 한국을 넘나들면서 빚어지거나 시선을 끄는 경제법 관련 사안들은 우리의 공정거래법 등 경제법 관련 손질의 방향이 어디를 향해야 할지, 또 그 칼을 사용할 권한을 정해주는 데 있어 경제검찰격인 공정위 등에 어느 정도의 재량을 허용하는 게 합리적일지에 시사점과 영감을 준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이 같은 경제법의 손질 상황은 앞으로도 경제민주화 관련 논의를 진행하는 와중에 파생 이슈로 계속 논의의 중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적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