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인사이드컷] 신발에서 끌어올린 감정선

정금철 기자 기자  2013.08.14 14:18:41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기자이기 이전에 두 아이의 아버지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높은 습도 탓에 본의 아니게 시스루패션을 완성하게 된 얼마 전, 제 작은 아이와 비슷한 크기 발사이즈로 추정되는 세탁을 마친 상태의 신발을 집 근처에서 보게 됐습니다. 놓인 모양새의 특이함과 아릿한 정겨움에 무작정 셔터를 눌렀습니다.

   창틀을 축 삼아 가지런히 마주본 아이의 신발이 정겹기만 하다. = 정금철 기자  
창틀을 축 삼아 가지런히 마주본 아이의 신발이 정겹기만 하다. = 정금철 기자
스마트폰 이미지 센서에 담긴 피사체를 눈으로 옮겨 머리에 새기니 바로 미국의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떠올랐습니다. 정확히는 헤밍웨이의 여섯 단어 글이 생각난 거죠. 알고계신 분들도 많이 있겠지만 이 여섯 단어 글은 헤밍웨이가 한 펍(Pub)에서 지인들과 벌인 10달러짜리 내기에서 창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헤밍웨이는 단어 여섯 개로 가슴을 흔들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가를 두고 승부욕을 살렸는데 결국 10달러를 얻게 됩니다.

"팝니다. 아기 신발. 한 번도 신지 않은…(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아기는 태어나지 못한 건지, 출생 후에 바로 어떤 일이 생긴 건지, 아니면 엄마에게 어떤 일이 생긴 것인지…. 신기지 못한 신발을 두고 이런저런 의견이 나올 수 있지만 대부분 슬픈 쪽으로 가닥이 잡혀 감성에 깊은 자극을 받을 수밖에 없는 글입니다.

이 같은 헤밍웨이의 문체는 유명하죠. 19살의 헤밍웨이는 시카고 '캔자스시티 스타' 신문에서 기자로 근무하며 이곳의 기사작성 매뉴얼을 바탕으로 간결하면서도 건조한 자신만의 문체를 만들어 갑니다.

'노인과 바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같은 유명걸작들 외에도 단편 '살인자들'은 종이를 비비면 불이 붙을 것 같은 드라이한 문장으로 메워진 하드보일드 소설의 전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헤밍웨이처럼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린 기자출신 작가는 꽤 많습니다.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에게 모험을 강요한 마크 트웨인은 1864년 샌프란시스코 '모닝콜지'에서 기자로 활동한 경력이 있습니다.

특히나 러일전쟁 당시 마크 트웨인은 새뮤얼 랭스 클레멘스라는 본명을 사용하며 우리나라에 종군기자로 체류한 적도 있다고 하네요. 이때 조선을 찾은 기자 중에는 사회주의 소설 '강철군화'의 작가 잭 런던도 있습니다.

또한 '올리버 트위스트' '크리스마스 캐럴'을 쓴 찰스 디킨스와 '로빈슨 크루소'의 저자 다니엘 데포도 기자출신이고 인접국 일본에는 '하얀 거탑'을 낸 마이니치신문 기자 출신 작가 야마자키 토요코가 유명하죠. 우리나라에서는 '칼의 노래' 김훈과 '독고준' 고종석 작가가 대표적 기자출신 문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사실 국내 기자들이 쏟아내는 책의 양은 방대할 정도입니다. 히트를 못했을 뿐이죠. 현직종사 중이거나 은퇴 후 한 권 정도 집필하는 것은 기자생활에 있어 느낌표나 마침표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