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은밀하게 위대하게' 전략적 소송태도가 특허전쟁 방패

한국식 특허전쟁에 위기감 던져준 ITC 삼성 금수 판정

임혜현 기자 기자  2013.08.11 17:25:03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바야흐로 특허를 통한 보호주의무역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 1930년대 세계인들을 괴롭힌 대공황 국면에서 당시 강대국들이 파운드 블럭, 프랑 블럭 등을 쌓아 본국과 식민지 시장 주변에 높은 관세 벽을 쌓는 기법을 썼다면, 근래의 리먼브러더스 위기 이후의 보호주의는 무역에서 특허라는 고급 개념을 적극 활용하는 쪽으로 치닫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애플의 스마트폰과 태블릿 제품 등에 대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수입금지 권고에 거부권을 행사해 애플에 구원의 동앗줄을 내려준 데 이어, 이번에는 ITC가 삼성전자 갤럭시 제품 일부에 대해 애플 특허 침해에 따른 수입 금지 판결을 내렸다.

삼성으로서는 연속으로 타격을 입은 셈이다. 앞의 문제는 삼성이 가진 기술을 표준특허로 지목, 이른바 프랜드원칙을 요구한 것이다. 금년 1월(이하 시각 모두 현지기준), 로이터는 미 법무부와 특허청이 "정당한 라이선스 체결 없이 표준특허를 사용, 침해했을 때에는 금전으로 배상해야 한다"고 성명서를 냈다고 보도했는데 이 태도가 현실적으로 미국의 무역 관련 태도로 굳어지는 모습이다. 즉, 이때 미 법무부 등은 "판매금지 조치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성명서에서 밝혔다.

물론 이번 일이 애플의 완승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9일 ITC의 판단을 보도한 비즈니스위크는 "ITC가 판결에서 삼성전자 제품 가운데 일부는 애플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며 이 같이 분석했다.

비즈니스위크는 이번 삼성전자 제품 수입금지 판결 사례는 오바마 행정부가 최근 뒤집어준 애플 제품 수입금지 판결과 완벽하게 일치하진 않는다"며 "문제가 되는 특허들이 단말기의 기본 기능에 관련된 게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손가락을 오므려 화면에 명령을 인식시키는 애플의 기술 장면. 이번 애플과 삼성간 특허전쟁은 원천적으로 중요한 기술은 표준특허로 오히려 독점적이고 배타적 행사가 어려워지는 대신, 부수적인 영역에서 창의성을 발휘하는 쪽에 차세대 먹거리를 보장해 주는 쪽으로 앞으로의 특허전쟁이 펼쳐질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지엽말단적 소송에 천착하는 대신, 영감이 번뜩이는 기술력을 확보하고 전략적 소송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선진형 산업태도가 필요하다는 점 또한 명확해지고 있다. ⓒ 프라임경제  
손가락을 오므려 화면에 명령을 인식시키는 애플의 기술 장면. 이번 애플과 삼성간 특허전쟁은 원천적으로 중요한 기술은 표준특허로 오히려 독점적이고 배타적 행사가 어려워지는 대신, 부수적인 영역에서 창의성을 발휘하는 쪽에 차세대 먹거리를 보장해 주는 쪽으로 앞으로의 특허전쟁이 펼쳐질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지엽말단적 소송에 천착하는 대신, 영감이 번뜩이는 기술력을 확보하고 전략적 소송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선진형 산업태도가 필요하다는 점 또한 명확해지고 있다. ⓒ 프라임경제

본질적 기능에 대한 특허 아니라 애플이 이겼다?

워싱턴포스트의 분석도 시사점이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ITC 최종 판정을 보도하면서 "이 사건이 다루고 있는 제품들은 더이상 광범위하게 판매되고 있지 않은 오래된 것들이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애플이 거둔 이번 승리는 향후 출시될 단말기에 포함될 특성과 삼성전자의 움직임을 둔화시키는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ITC는 지난해 10월 예비 판정에서 삼성전자가 애플의 특허 4건을 침해했다고 봤지만 이를 번복한 뒤 수 차례 재심사한 끝에 그중 2건만 최종 판정에서 침해 판단을 유지했다. 이 2건의 특허는 삼성전자가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만들기 위해 기본적으로 탑재해야 하는 종류의 기능은 아니다.

즉 근래 삼성과 애플간에 서로 주고받은 공방전은 본질을 건드리지 않는 '묘한 전쟁'이라는 얘기다. 본원적인 기술은 표준특허 논리로 처리하겠다는(이를 추종하는 남의 상품을 판매를 금지하도록 소송을 걸지는 말고 민사보상책으로 대응하라는 유도) 태도와 함께, 기본적 기능이 아닌 디테일한 영역의 특허 논쟁이 오히려 주안점처럼 받아들여지는 상황으로 향후 특허전쟁이 흐를 것임을 강하게 암시하는 것이다.

'선구적인 디테일 문제'에 강해져야…지나친 지엽말단은 경계

앞으로 표준특허로 후발주자의 추격을 방어하는 것은 어려워진다는 점을 의미하는데, 창조적인 영감이 번뜩이는 파생적 영역이 오히려 특허전쟁의 꽃이 될 수 있다. 이런 영역을 발전시켜야 방어와 공격에 더 유리하다는 것은 자칫 특허전쟁이 지엽말단적인 진흙탕 싸움으로 치닫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기도 한다.

특히 한국 기업들은 이 같은 경향이 이미 없지 않아 이번 삼성과 애플간 분쟁을 계기로, 이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높다는 지적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2009년 국내 기업 1000여 곳을 대상으로 특허분쟁 실태를 조사한 결과, 특허소송 등 지식재산권 분쟁 상대는 해외 기업(39.8%)보다 국내 기업(69.9%)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한국 기업 간 소송은 시장을 선점하려는 목적이 대부분으로, 기술적인 실제 분쟁이라기 보다는 자존심 싸움으로 흐를 여지가 높다는 데 있다. 과거,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기술 유출 공방전의 경우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을 빼돌린 혐의로 수사기관이 나서면서 일이 복잡해진 케이스다. 정부 중재로 실무 협상이 시작되는가 싶었지만, 압수수색으로 흐르면서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었다.

이는 한국 기업간 대형 분쟁의 주무대가 되고 있는 디스플레이와 2차전지 같은 영역이 가진 특수성 문제를 반영하지 못한 소모전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분명히 신성장 기술이기는 하나, 그런 만큼 발전 속도가 빠르고 논란이 장기화 될수록 소송전에서 이기더라도 얻는 것이 별로 없다는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선구적 위치에서 더 뻗어나가는 데 사용해야 할 자체 역량을 소송전으로 서로 낭비하는 사이, 중국이 OLED나 2차 전지에 '인해전술식' 물량 공세로 추격전을 벌이는 상황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영역별 특수성 인지, 소모적 소송 대신 전략적 공격-방어 채택 필수

반면, 소송이 후발주자를 제어하는 수단으로 유효하며 한편 후발주자 입장에서도 적극적인 대응을 통해 틈새시장을 얻을 여지가 높기 때문에, 이 소송 가능성을 판단하는 대목에 전략적 대응을 기울여야 하는 산업도 있다. 제약업이 바로 이런 영역이다.

미국은 '해치·왁스먼법(Hatch-Waxman Act)'이라는 제도로 특허권을 강하게 보호하는 연계 제도를 갖고 있다. 제너릭(복제약)이나 개량 신약 업체가 시판 허가를 신청할 경우, 특허권자에게 이를 통보해 이의 제기가 없을 때만 허가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다. 특허권자가 특허침해 소송을 내는 경우 최장 30개월까지 시판 허가를 미룰 수 있기 때문에, 후발 업체로서는 소송전을 두려워 하면 밀릴 수밖에 없다. 반면 적극적으로 대응하면 오히려 적잖은 이익을 챙길 수도 있다.

한미약품의 경우 아스트라제네카의 '넥시움정'의 주성분을 변형한 개량신약을 내놨는데, 해치·왁스만법에 따른 소송에 휘말렸다. 하지만 2년여간의 소송을 진행한 끝에 넥시움의 특허를 침해한 게 아니라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렇게 합의를 마치고 시판 허가를 따면서, 한미약품은 넥시움 특허가 만료되고 제네릭이 출시되는 2014년 5월까지 틈새시장을 얻었다. 즉 이 기간 동안 사실상 단독으로 미국 시장을 공략할 기회를 얻게 됐다.

다른 방법도 있다. 인도의 제너릭(복제약) 제약사인 란박시의 경우, 미국 특허 제도를 분석, 적절히 싸울 방법을 선택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신약(오리지널)이 나오자마자 특허 분석에 들어가는데, 100여명에 달하는 변호사들이 오리지널 약품의 특허가 약한 곳을 발견해 무효 소송을 내거나 제일 먼저 제너릭을 출시하는 전략을 쓰는 쪽으로 선회한다. 제너릭을 최초 출시하면 6개월간 독점권을 주는 이점을 활용한 것이다.

'특허 펀드 전쟁 '은밀하게 위대하게' 수면 아래 진행 중

결국 밑천이 두둑하지 못한 상황에서 특허를 매개로 한 전쟁에 휩싸이더라도 솟아날 구멍은 지혜 여부에 따라 좌우되는 셈이다. 이런 판단이 없이 지엽말단적인 싸움에 집중하면 당장은 대응을 잘 하는 것으로 보일지 몰라도 이런 근시안적인 태도를 답습하면 결국은 체력 낭비에 머물 것이라는 우려다. 반면, 산업 영역별 특성을 감안해 송곳 같은 대응을 한다면 기술력이나 세계의 무역 구조에서 차지하는 중요도에서 샌드위치 신세에 가까운 한국도 얻을 여지가 아직 많다는 지적이다.

산업별 특성에 맞춘 대응도 중요하지만 표준특허 중심의 먹거리 창출 대신 체계적인 특허의 인수 및 관리와 보유 특허자산간 융·복합을 처리할 중앙처리장치(CPU) 같은 국가 브레인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성이 높다는 점도 이번 삼성과 애플간 분쟁이 시사하는 대목이다.

가장 먼저 공공 특허 관련 펀드 조성에 뛰어든 이스라엘이 '요즈마' 펀드를 통해 적극적인 방어책과 새 기술 파생에 노력 중이다. 1993년에 1억달러(약 1070억원)로 시작한 이래 통신과 생명과학 분야 등에 특허 관련 포트폴리오 40개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한국도 '인텔렉추얼 디스커버리'를 출범시켜 200여 특허를 사들였고, 프랑스의 '브레베' 역시 활동 중이다. 일본은 우리보다 2년 앞선 시점에 거액을 이 부문에 투자했다. 2009년 7월 1000억엔(약 1조2800억원)으로 시작해 캐논 등 대기업의 동참을 통해 몸집을 키우고 있다. 

이른바 IP 국부 펀드들에 국가별로 이렇게 열의를 불태우는 이유는 국가가 투자해 '특허 트롤(소송으로 돈을 뜯는 데 주력하는 공격적 모델 회사 혹은 변종 로펌)'을 만들자는 데 주요 목표가 있는 게 아니다. 소송을 몰고 들어와 자국 기업의 공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는 여지를 방어하기 위해 아직은 큰 의미가 없는 원석 같은 특허 자원을 사들이고, 아울러 이들을 보유해 융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자는 데 의미가 있다.

따지고 보면 특허 국부 펀드들의 이 같은 대두는 특허 관련 소송이 전략적으로 발전하는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다. 소송을 두려워 않는 의지와 자금력이 우선 가장 중요하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지만, 애플과의 분쟁으로 시험대에 오른 우리 같은 자원 부족 무역 중심 국가가 추가로 챙겨야 할 전략적 태도와 도구는 이렇게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