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현·정수지 기자 기자 2013.08.07 10:42:19
[프라임경제] 햇살이 따가운 대구의 여름 한낮, '아마'들이 교사들을 도와 아이들의 낮잠 시간을 준비한다. 조금 전까지 시끄럽게 뛰어놀던 아이들이 곧 쌔근쌔근 소리를 내며 잠들어 조금 여유시간이 생기면, 텃밭에 가꾼 야채를 돌아보고 오후 일정도 준비한다.
대구에 자리잡은 대구강북공동육아 노마어린이집(이하 노마어린이집)은 협동조합의 정신으로 공동육아라는 키워드를 실천하는 성공적 모델로 꼽힌다. 2001년부터 논의돼 2002년 3월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노마어린이집은 원래 대학 동문 중에서 공동육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10년여 세월이 흐르는 동안, 새로운 많은 이들이 잘 동참해 오고 있다. 규모도 커지고 기반을 잡는 한편으로 아이들이 커 나가는 상황에서도 또다른 조합원간에 대물림을 잘 하며 '초심'을 잃지 않는 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잘 잡고 있다.
◆조합원 학부모가 활동에 참여 '아마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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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지원을 위해 나선 아버지들이 아이들의 식사 상황을 챙기고 있다. ⓒ 노마어린이집 | ||
사실 아이들을 어린이집 등에 일단 보내 놓으면, 귀가할 때까지 부모로서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구체적인 모습을 잘 알 수 없는 일반적인 모습과는 다르다. 이는 달리 보면 '보내만 놓으면 일단 신경쓸 일이 없는' 것일 수도 있는데, 노마어린이집은 공동육아의 정신으로 출범한 곳이기 때문에 이런 방식에 따르지 않는다. 아마 활동을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이에 부모들도 호응해 늘 아이들과 접촉하고 있다. 자신의 아이만 신경쓰는 1일 교사 개념이 아니라 내 조합의 아이들을 모두 돌보고 이끄는 역할을 맡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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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애들 낮잠시간으로 잠시 짬이 난 틈에 정리를 해 볼까?" 아마 활동을 나온 학부형 조합원인 토끼 이사가 노트를 넘기며 망중한 중이다. ⓒ 프라임경제 | ||
조합 내의 활동에서는 모두 별명을 사용한다. 자신이 좋아하거나 외모의 특징을 반영하는 단어 혹은 지향하는 점을 드러내는 이름을(예를 들어, '흰구름' 혹은 '늠름한', '토끼' 등으로 부름) 사용함으로써 개성을 드러내는 한편, 서로 민주적인 대화논의와 조직 운영이 가능하도록 한다.
처음 노마어린이집을 거쳐간 아이들이 이미 고등학교 2학년이 될 정도로 훌쩍 자랐지만, 이렇게 조합원들이 자녀들의 교육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공동육아 정신을 실천하는 공간에서 정서 함양을 하는 매력에 '졸업'을 한 아이들이나 전 조합원들 역시 정서적인 유대감을 아직 간직하고 있다.
'큰노마터전살이'라는 이름으로 졸업한 아이들이 노마어린이집의 추억을 돌이켜 보고 친목을 다지기도 하는 자리가 마련돼 왔다. 일종의 '홈커밍데이'라고 할 수 있다. 조합원들 역시 이전에 아이들을 졸업시킨 전 조합원들과 종종 연락과 상의를 하며 '먼저 아이를 키운 경험'이나 '조합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공동육아의 길이 과연 옳은 건지' 등 고민을 나눈다.
◆아토피 식단 등 맞춤형 육아 가능…마당있는 집 장만 숙원 이뤄
처음 9명의 아이들을 놓고 옹기종기 시작한 노마어린이집은 이 같은 끈끈한 유대감을 바탕으로 입소문을 타며 점차 그 규모를 늘려 왔다. 졸업을 하고 새로 아이들을 받는 등 성장을 거듭해 오면서 현재 노마어린이집에서 보살피고 있는 아이들은 총 24명. 현재도 이 곳에 아이를 보내고 싶어하는 문의 전화가 있다. 이를 테면 대기 수요인 셈인데, 내년에 4세가 되는 아이들의 학부형이 5~7명 정도 전화 상담을 해 오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시설장(원장) 역시 긴 보육 근무 경험이 있는 조합원이 맡고 있고, 이사회와의 긴밀한 협력과 소통을 통해 조합원들의 의견이 잘 반영되도록 운영해 오고 있다.
이런 전폭적인 애정과 열의있는 활동이 오랜 세월 이어져 온 덕일까. 이들은 마당이 있는 집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처음 출발해 세를 얻어 건물을 사용할 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있었던 점이 깊은 각인을 남겼다는 것. 그래서 형편상 한때는 마당이 없는 아파트에 들어가 있기도 했으나, 어린이집은 역시 마당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게 대두돼 충분한 논의 끝에 결국 터전을 마련하기로 결정, 지금의 자리로 이사를 매듭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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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마어린이집 전경. ⓒ 프라임경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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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텃발을 통해 유기농 야채를 가꾸는 모습. 아이들에게 좋은 음식을 공급할 수 있다는 점이 마당과 텃밭이 있는 터전을 마련한 가장 큰 보람 중 하나다. ⓒ 프라임경제 | ||
토토로 조리담당교사는 "(마당 외에도) 텃발이 있으니 유기농 채소를 직접 길러 급식에 사용할 수 있어 좋다"면서 "아이들이 적기 때문에 예를 들어 아토피 같은 경우 등 배려가 필요한 경우에도 맞춤형으로 식단을 구성할 수 있다. 대형어린이집에 비해 큰 장점"이라고 흡족함과 자랑스러움을 표했다.
◆90% 졸업률 높은 만족도: 충분한 야외활동에 세시풍속 가르쳐
마당과 텃밭에 한정되지 않고 인근 지역이나 먼거리 소풍 등을 통해 사시사철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충분한 야외활동이 이뤄지도록 커리큘럼을 마련한다. 아울러 세시풍속을 익힐 기회를 마련, 시시때때로 즐겁게 서로 어울려 놀도록 한다.
단오에 즈음해 아이들에게 창포물로 머리를 감도록 하고, 투호 놀이 등 민속놀이도 익히도록 한다. 영어유치원 등 학교 입학을 준비, 선행학습을 받도록 하는, 일명 인지교육에 치중하는 요새 트렌드와는 다소 다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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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거운 여름을 날려버릴 즐거운 물놀이 시간을 갖고 있다. ⓒ 노마어린이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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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을 통해 아마 활동을 요청하고, 친목도 도모하는 등 부모 조합원들이 활발히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노마어린이집의 특정이다. ⓒ 노마어린이집 | ||
불안하지는 않은지, 걱정은 안 되는지 묻자 여러 조합원들은 공부를 자신이 하고 싶을 때 해야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되묻는다. 오히려 튼튼하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하고, 똑소리 나게 자신의 의사를 발표할 수 있도록 하는 데서 그간 많은 조합원들이 만족해 왔다는 것이다. 긴 시간을 진행해 온 만큼 노마어린이집 나름의 검증을 얻었다는 자신감의 발로다.
실제로 사교육 등을 통해 이런 교육을 공동육아와 진행하기를 원하는 일부 조합원들의 의견이 나왔을 때 긴 논의 끝에 노마어린이집 협동조합에서는 사교육을 금지하는 것으로 정관에 규정하기도 했다고 한다. 사교육이 과연 필요한지 또 그것이 옳은지는 차치하고라도, 이런 흐름이 전체적인 공동육아의 진행과 운영에 긍정적이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판단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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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복을 갖추고 입고 절을 하는 아이들. ⓒ 노마어린이집 | ||
부모들 역시 전인교육에 초점을 둔 각종 활동을 준비해 주면서 혹은 아마 활동으로 이에 직접 참여하면서 서로 어울려 자신들의 친목도 자연스럽게 도모하고 있다. 노마어린이집 건물의 내부에 필요한 각종 비품, 예를 들어 커튼을 만들고 한방탈모샴푸를 제조하는 등 부모 조합원들도 서로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4세에 들어와서 7세에 졸업하므로, 졸업까지 이곳에서 머무는 시간은 평균 3년~4년. 아이들이 무사히 졸업하는 경우는 조합원 가입 비율 대비 90%에 달한다는 설명이다. 이사라든지 불가피한 사정으로 떠나는 인원에 협동조합 활동이 당초 기대와 달리 버거움이 더 커 이탈하는 인원도 꽤 있을 수 있겠다는 예상을 빗나가는 성과다. 아라치 시설장은 "전문용어로 충성고객이 많은 게 아니겠느냐"며 웃음짓는다. 오늘도 노마어린이집은 단지 한글과 알파벳을 먼저 머리에 새기는 공간이기 보다는 어른의 틀에 박힌 생활습관이나 고정관념이 강요되지 않는 분위기 조성, 아이의 개개인의 개성이 무시되지 않는 공동육아의 정신, 따뜻한 눈맞춤과 포옹이 자연스럽게 가능한 공간을 목표로 매력을 가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