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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무지개학교 동행 취재기⑨] "장보고의 위상, 중국을 호령하다"

중국 석도·위해 일정 시작…법화원 거쳐 장보고 전시관, 철차산 탐방

장철호 기자 기자  2013.08.07 08: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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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상왕 장보고 대사 동상. 그 위엄이 하늘을 찌르는 듯 하다. =장철호 기자.  
해상왕 장보고 대사 동상. 그 위엄이 하늘을 찌르는 듯 하다. =장철호 기자.

[프라임경제] 중국 문화탐방 첫 일정으로, 선상무지개학교는 해상왕 장보고의 위상이 깃든 적산법화원과 장보고 전시관을 둘러봤다.

4일 오후 2시경 일본을 출발해 중국 석도로 향한 선상무지개학교 일행은 5일 저녁 11시경 석도항 인근에 도착, 숙면으로 여독을 풀었다.

정박된 실습선에는 잠자리 떼가 급습했다. 창문 틈 사이로 잠자리들이 들어와 뜻하지 않게 동침을 하게 됐다.

석도의 바다는 섬나라인 일본의 바다보다 청정하지 못했다. 환경을 파괴하며, 성장위주의 정책을 폈던 우리나라 60~70년대 상황과 흡사하다보니 연안관리에 소홀한 듯 보였다.

오전 10시경 여권심사. 한 학생의 이름 스펠링이 단체이름 목록과 다른데다 관광버스를 타고 배가 정박된 곳까지 들어가기 위해 출입국관리소 직원들과 협의를 한 관계로, 출국 수속이 다소 지연됐다.

뼈 해장국과 김치, 깍두기, 고추, 된장으로 한국 사람임을 확인하고, 해상왕 장보고의 기상이 숨쉬는 적산법화원과 장보고 전시관, 철차산을 차례로 방문했다.

산동성 롱청시(榮成市/영성시) 석도진(石島鎭) 북부의 적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적산법화원은 장보고가 당나라에 머물던 시절(서기 823년) 거액을 들여 건립한 불교 사찰이다.

   장보고 대사가 세운 적산법화원에 마련된 해신.  =장철호 기자.  
장보고 대사가 세운 적산법화원의 해신. 윤동화 교장과 지도교사들이 뭔가를 논의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장철호 기자.

당시 적산 인근에 거주하던 동포들의 단합을 도모하고, 신앙(불교)을 통해 이국땅의 외로움을 달래라는 취지로 세워졌다. 법화원은 해외 포교활동과 본국과의 연락기관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나라 무종 때 도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하는 정책 때문에 훼손됐으나, 중국 정부가 1988년 한중 양국의 우정을 기념하기 위해 복원공사를 시작해 1990년 5월 현재의 모습으로 개관했다.

이어 장보고 기념관이 중국 정부로부터 정식으로 공인을 받아 2007년 문을 열었다. 외국인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이 중국 정부로부터 공인을 받은 사례는 그 예가 드물다. 푸젠성의 한 서방인물 등에 이어 장보고가 3번째다.

장보고 기념관은 장보고 대사의 입당배경, 무녕군에 입대해 전투를 치르는 모습, 적산법화원 건립, 청해진 창설, 해적평정(노예매매 근절) 및 해상무역 활동 등 해신으로서의 장보고 모습을 담았다.

   가정이 평안과 부귀를 바라는 글. 철차산 중간 기점에 새겨져 있다. 사진속 인물은 필자. =장철호 기자.  
가정이 평안과 부귀를 바라는 글. 철차산 중간 기점에 새겨져 있다. 사진속 인물은 필자. =장철호 기자.

이어 찾은 철차산은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황해 서쪽 산동성 영성시 남부 황해 해안가에 위치한다. 철차산은 9갱의 암봉이 해안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어 해무가 끼면 망망대해에 뗏목이 떠 있는 형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철차산은 도교의 주요 발상지로, 금나라 때 왕중양이 산동지방에 와 도교의 한 종파인 전진교를 창립했다. 왕중양은 철차산 동쪽 운광동에서 도교를 수련하고, 전진교 곤산파를 창시한다고 전해진다. 철차산은 1991년 산동성 정부의 허가로 '성급관광명승지'로 지정됐다.

성인 걸음으로 30분가량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하는 코스였다. 여학생들에게는 다소 힘들어 보였지만, 대다수 학생들이 목적지까지 올라갔다. 얼마나 대견스러운지 모르겠다.

   장보고 기념관을 지키고 있는 장보고 금상. =장철호 기자.  
장보고 기념관을 지키고 있는 장보고 금상. =장철호 기자.
   철차산 도교 사찰. =장철호 기자.  
철차산 도교 사찰. =장철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