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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거부권] 삼성, 긴 공방전 버틴 하이닉스 배워라

미국 이은 EU,일본 몽니 분쟁…당국의 강한 응원도 적잖은 도움

임혜현 기자 기자  2013.08.05 11: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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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이번에 삼성전자 대 애플의 소송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세계의 눈길이 스마트폰 전쟁에 쏠리고 있다. 이번 거부권 행사는 단순히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결정을 뒤집었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준사법적 기구인 ITC의 행보에 제동을 건 전례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 미국 행정부의 단호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더욱이 이번 발표 내용 중 "사법적 구제 절차를 막는 것은 아니"라는 미국측 태도는 웬만한 특허 분쟁에서 앞으로 우리가 해당국 법정이나 세계무역기구(WTO)에서의 격돌을 예상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이에 우리 기업들이나 유관 부처가 앞으로 강화될 보호무역주의의 메인스트림 안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생각해 본다.

인내의 시간은 길었으나, 열매는 달콤했다. 2011년 하이닉스반도체는 8년여간 발목을 잡아왔던 상계관세 터널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미국 정부는 이때 상계관세 요율을 재조정하는 제6차 연례재심회의를 열고 하이닉스반도체에 부과됐던 마지막 상계관세 요율을 조정해 줬다. 하이닉스가 상계관세와 인연을 완전히 정리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가는 발길을 재촉할 수 있게 됐다.

애매한 상계관세의 덫, 경쟁국가들 미국 억지에 편승, 연타 날려

상계관세는 수출품에 장려금이나 보조금을 지급하는 경우 수입국이 경쟁력을 상쇄시키기 위해 부과하는 누진관세다. 무역구제 방법 가운데 수입제한 조치를 제외하고는 가장 강도 높은 조치지만, 애매하게 발휘되는 경우도 적지 않아 국제경제법 영역에서 뜨거운 감자로 취급돼 왔다. 하이닉스 상계관세 부과는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8월 미국 정부가 하이닉스에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총 5년간 상계관세를 부과하기로 최종 결정한 것이다. 당시 관세 요율은 무려 44.29%였다. 더욱이 미국의 이 같은 결정에 내리자 유럽연합(EU)과 일본도 상계관세 부과에 동참하면서 하이닉스는 '고사 위기'에 시달리게 됐다.

그 뒤 하이닉스는 상계관세의 부당함을 WTO에 제소하는 한편 요율이 너무 높게 책정됐다며 재심을 요청했다.

이 같은 노력에 따라 EU는 2008년 4월에 하이닉스에 대한 상계관세 철폐를 최종 승인했다. 2009년 4월에는 일본 정부도 상계관세 철폐를 최종 결정했다. 미국도 이 같은 요청을 받아들여 2006년 4월 첫 1차 연례재심을 열어 요율 재조정에 나섰다.

쉽게 끝날 것 같은 미국 정부의 요율 재조정은 연도별로 매해 재조정에 나서면서 장기전이 됐다. 2차 연례재심은 2007년 2월에 열렸다. 그뒤 2008년 3월 3차 연례재심, 2009년 2월 4차 연례재심, 2009년 11월 5차 연례재심 등 숨가쁜 행보를 이어갔다.

미국 정부는 드디어 최근 6차 연례재심을 열어 하이닉스의 상계관세 요율을 조정했다.

연례재심을 거치면서 초기 44.29%였던 상계관세 요율은 2차 31.86%, 4차 4.91%, 5차 0.06%, 6차 1.93% 등으로 조정됐다. 하이닉스는 조정된 요율에 따라 이미 냈던 상계관세와 그에 따른 이자를 돌려받는 등 짭짤한 부대수익도 거뒀다.

1987년 상황에 삼성 비웃은 언론, 다 어디있나? 정면 대응 옛 산자부 배포 필요

하이닉스가 2003년 포위됐을 때 당시 주무부처이던 옛 산업자원부에서는 ITC의 상계관세와 최종판정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며 WTO에 제소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하며 지원 사격에 나섰던 점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

김종갑 당시 산자부 차관보는 "ITC 예비판정을 대상으로 WTO에 제소했다"며 "ITC의 이번 최종판정도 제소할 것"이라고 거론했다. 그는 "DRAM 시장의 경기침체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이닉스 탓으로 돌린 것은 부당하다"고도 주장했다. 김 차관보는 ITC의 판정에 대한 대응에 대해 "끝까지 가 볼 생각"이라고도 힘을 실어, 당시 1980년대만 해도 미국의 작은 움직임에 '알아서 기던' 한국 통상 분야 공무원들의 태도가 변했다는 평을 얻었다.

다시 시점을 이보다 좀 앞으로 돌려보자. 1987년,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삼성에 대한 금수 조치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오늘날, 우리가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논리다. 하지만, 이 자유주의적 논리를 통해 삼성은 비로소 살 길을 찾았던 셈이니 아이러니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우리 언론은 이런 사정에 대해 굉장히 냉정한 평가를 했다. 일본 기업들이 돈을 주고 협상한 바에 대해서는 미국 기업의 금수 신청에 대해 딜을 할 반대급부의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고, 삼성은 이런 협상을 할 만한(주고받을)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버티다 금수(수출 금지)까지 당했다고 지적한 언론이 많았다.

하지만 이 같은 논리는 전적으로 옳은지, 이에 대해서는 아직 앞으로도 상당한 논의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긴 소송전 버틸 의지 유무에 따라 역사 바뀐다

삼성 대 애플에서 ITC의 판정과 그에 대한 거부권 등에 대한 다툼은 이제 민사 영역으로 넘어왔다. 오래 전 삼성이 1987년 레이건 행정부의 거부권을 얻어 내던 당시에, 많은 한국 언론은 '우리는 일본에 비해 반대급부로 내줄 게 없고', 그렇기 때문에 '협상력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기술 면에서(적어도 특허라는 측면에서) 우리가 강자이며, 강하던 협상력이 이번 거부권으로 일부 약해진 데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이나 영국식의 긴 소송전에서 우리 기업이 지치지 않고 버틸 능력과 여력이 있는지가 문제다. 확실한 것은 이 같은 '의지의 기업'이 늘 수록 한국의 산업 전반에 대한 외국 기업들의 외경심은 그만큼 높아질 것이라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