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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거부권] '보호무역주의 부활' 우려…기업 대응력 강화 절실

작은 내용으로 휘둘릴 가능성 농후, 동향변화 미리 감지 대응 필요

임혜현 기자 기자  2013.08.05 09: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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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구출된 당사자는 열광했고 불의타를 맞은 반대편은 경악했다. 미국 언론들조차 이례적이라는 표현을 써 가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위임을 받은 무역대표부(USTR)가 아이폰4S 등 애플 구형 제품이 삼성전자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수입을 금지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결정에 거부권 행사를 결정했다. 무역대표부는 이날 웹사이트에 공개한 4쪽 분량의 서한에서 "이번 결정은 미국 경제의 경쟁 여건에 미칠 영향과 미국 소비자들에게 미칠 영향 등 다양한 정책적 고려에 대한 검토 내용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법률적 차원보다 정책적 차원을 중시한 것이라는 분석, 그리고 '보호무역주의의 부활'이라는 평이 나오고 있다.

보호무역주의의 본격화 신호탄인지는 일단 분명치 않다. 다만 이 같은 상황이 가치판단면에서 옳고 그르고는 차치하고, 당분간 세계경제 침체 국면에서 기업들이 추구해야 할 바가 명확해진 한 계기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프랜드 원칙에 당했다? 이미 1월부터 조짐?

USTR은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인(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FRAND) 조건'을 이번 결정 사유로 들었다. 

표준특허란 특정 제품을 제조하거나 기술을 구현할 때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것이며, 프랜드(FRAND) 원칙은 특허 보유자가 무리한 요구로 다른 업체의 제품 생산을 방해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특허를 제공하기로 한 특허 보유자(삼성전자)가 부당한 지렛대를 사용하지 않도록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애플이 삼성이 가진 표준특허를 사용할 수 있는데, 삼성전자가 이 원칙을 충분히 지키지 않고 권리를 남용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난 6월 ITC는 아이폰 등의 수입금지 조처를 요청할 때 삼성이 특허 사용료를 과다하게 청구하지 않았고, 애플이 협상에 제대로 나서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는데 이 판단이 뒤집어진 것이다. 미국의 프랜드 원칙 판단이 엄격히 이뤄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금년 1월, 로이터는 미 법무부와 특허청이 "정당한 라이선스 체결 없이 표준특허를 사용, 침해했을 때에는 금전으로 배상해야 한다"고 성명서를 냈다고 보도했다. 즉, 로이터는 "판매금지 조치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성명서에서 밝혔다. 표준필수 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경쟁 제품에 판매금지 처분을 요구하는 것은 매우 제한된 경우에 허용된다는 것이다.

   특허가 먹거리인 시대, 하지만 핀치 투 줌도 표준특허도 모두 최종적인 길은 아니라는 점이 이번 애플 대 삼성간 전쟁에서 명확해지고 있다. 앞으로 표준특허의 범위를 벗어나는 원천기술을 찾는 것과, 표준특허만 가진 기업은 길고 지루한 민사소송을 두려워 않는 태도가 요청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 프라임경제  
특허가 먹거리인 시대, 하지만 핀치 투 줌도 표준특허도 모두 최종적인 길은 아니라는 점이 이번 애플 대 삼성간 전쟁에서 명확해지고 있다. 앞으로 표준특허의 범위를 벗어나는 원천기술을 찾는 것과, 표준특허만 가진 기업은 길고 지루한 민사소송을 두려워 않는 태도가 요청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 프라임경제

문제는 미국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이 같은 엄격한 태도의 프랜드 원칙 적용 움직임이 나타난 바 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삼성전자의 반독점 위반 여부를 조사키로 결정했다. 물론 이 당시 EU 집행위의 태도는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2012년 삼성이 EU 내에서 애플에 대해 3G 기술의 특허 침해와 관련된 내용을 제소해 이 규정을 위반한 의혹을 받게 됐다고 외신이 전한 점은 우려스럽다.

EU는 삼성이 지난 1998년에 이미 이런 규정을 준수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이행하지 않은 의혹이 있다는 것인데, 금년 들어 이 카드를 꺼내든 것은 조심스러운 타진으로 시작됐지만, 이미 EU가 삼성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내심의 태도는 긴 예의주시 끝에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해석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도 프랜드 원칙에 민감, 표준특허 아닌 원천기술 찾아라

결국 기술과 특허가 차세대 먹거리라는 대전제에는 변화가 없으나, 표준특허 같은 경우에는 이제 경쟁자들을 긴 시간 완전히 제압할 도깨비 방망이일 수 없다는 세계적 인식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꾸어 말하면, 앞으로 기술력을 확보함에 있어서 원천기술, 특히 표준적인 특허로 다른 기업들이 돈을 내면 사용할 수 있도록 강제되는 류의 특허로는 시장을 지배할 수 없으며, 대신에 다른 고차원적인 디테일한 문제를 파고들어야 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이미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어지간히 특별한 기술이 아니면 특허를 무효화해 버리는 결정을 한 경향이 있기 때문에, 지엽말단적인 기능은 당연히 안 되고, 원천기술이면서 표준특허 범주에 묶이지 않는 곳으로  신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7월29일 지식재산권 전문 블로그인 포스페이턴츠에 따르면 미국 특허청은 애플 아이폰의 대표적인 기능 가운데 하나로 두 손가락으로 화면을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기술인 '핀치 투 줌(Pinch to Zoom)' 특허가 무효라는 판정을 확정했다. 또, 손가락을 튕겨 인식하게 하는 바운스백 특허도 이미 무효화됐다.

반대로 백혈병 등의 치료에 효과가 있는 글리벡 같은 경우, 세계적 지탄에도 불구하고 해당 제약사를 긴 세월 돈방석에 앉혀주는 아이템으로 앞으로 오래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핀치 투 줌은 '무효화', 극히 일부 구조변경한 글리벡은 '무소불위'

  극히 지엽적인 기술로는 특허를 아예 인정받기 어렵고 웬만한 기술은 표준특허라는 틀에 묶여 후발주자들을 오랜 시간 배타적으로 따돌릴 무기로는 사용할 수 없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글리벡(사진) 같은 특이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 원천기술로 제대로 대접받는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 노바티스  
극히 지엽적인 기술로는 특허를 아예 인정받기 어렵고 웬만한 기술은 표준특허라는 틀에 묶여 후발주자들을 오랜 시간 배타적으로 따돌릴 무기로는 사용할 수 없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글리벡(사진) 같은 특이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 원천기술로 제대로 대접받는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 노바티스
이미 글리벡의 제네릭(복제약)은 특허 기한의 만료로 판매 가능하지만, 원래 약이 잘 듣는 적응증 모두 특허가 종료된 것은 아니다.

제네릭의 대상은 만성골수성백혈병, 급성림프구성백혈병, 만성호산구성백혈병, 과호산구성증후군, 만성골수단핵구성백혈병, 만성골수성질환, 융기성피부섬유육종 등 7개다.

반면, 위장관기질종양(GIST)은 2021년까지 특허가 남아있다. 400mg 고용량도 특허분쟁 중이어서 제네릭사들은 제품을 발매할 경우 소송을 감수해야 한다.

글리벡의 경우 원래 대단히 특이한 약리 물질을 처음 개발해 낸 정도의 성과는 아니다. 그렇지만 일부 화학식의 구조를 변경하고 덧붙인 것만으로 이렇게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는 약을 만들어 내고, 또 어느 나라에서도 그 특허의 행사에 토를 달지 못하는 상황이 돼 있다는 점은 시사점이 크다.

인도 대법원이 글리벡 문제에서 독창적인 판결을 내놓은 것은 인간의 생존권(건강권) 문제에서 기인한 바도 있으나, 인도의 국제기구 가입과 의무 이행의 발효 시한 등 여러 문제가 겹친 상황에서 강행된 일부 특수한 사례로 보는 게 오히려 정확하다.

소송 맷집 키워 특허 트롤 방어하는 동시에 받아낼 돈 확실히 챙겨야

이번 상황에서 삼성 등 우리 기업이 받을 시사점은 또 있다. 소송을 무서워하거나, 협상력 강화로 본질적 소송을 피해가는 태도를 보여서는 미국 등에서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만들어 내고 있는 현상황에서 설 땅이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간 우리 기업들은 주로 선진국의 특허 관련 소송 전문 업체(이른바 특허 트롤)의 괴롭힘을 방어하는 데 송무의 주안점을 둬 왔다. 우리가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어찌 보면 논외의 영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 미국 행정부가 지적했듯, 본질적으로 소송을 막지는 않으나  다른 기업에 특허 사용 자체를 막아주거나 이런 침해시 판매를 금지하는 것까지의 조치를 행정적으로 취해주지는 않는 태도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민사로 문제를 풀어야 할 가격의 협상으로 대결의 무대가 옮아가는 것이며, 이런 영역에서도 길고 지리한 협상 최악의 경우 소송을 불사하는 태도와 능력을 갗춰야 할 필요가 급격히 높아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특허 트롤과 진흙탕 싸움을 불사하거나 때로는 우리가 특허 트롤이기를 주저하지 않는 과감한 스탠스 변경도 절실하다는 것이다. 시계를 과거로 돌려 보면, 2009년부터 삼성전자에 4억달러 규모의 로열티를 받아간 미국 인터디지털의 표준특허에도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게 마땅할 것이라며 이번 오바마 행정부의 조치를 비판하는 의견도 있다.

이는 다른 각도에서 보면, 우리가 표준특허 논리를 갈고닦아 미리 방어를 했으면 이번 거부권 행사 같은 '리딩 케이스'를 이끌어 낼 수도 있었다는 것도 된다. 삼성 말고도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더 공격적인 정신 무장을 한다는 점이 점차 명확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