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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회담 제안] 강한 리더십의 꿈 드러낸 '진격의 김한길'

원조 천막당사 朴과 눈높이 맞추기, 유약하다 우려 불식위한 手

임혜현 기자 기자  2013.08.03 17:3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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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결국은 '하방론'이다. 문화혁명 때 중국 지식인들이 벽지로 쫓겨가 험한 일에 내몰렸던 것에 빗대어, 현재는 진보 계열에서 지역 밀착, 일선과의 스킨십을 염두에 둔 행보에 나설 때 차용된다. 이번 민주당 장외 투쟁에서도 하방론 키워드를 읽어내거나 이를 갖다대는 이들이 없지 않다.

지난 5월 정동영 민주당 상임 고문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한길 민주당 대표에게 "하방론이다. 여의도에 머물러 있을 경우 탁상공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 있는 영등포 당사를 뜯어버리고 천막을 쳐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04년에 했는데 우리도 배울 건 배우자"라고 당부한 것을 기억하는 이들은 이번 장외 투쟁과 서울시청 앞 광장의 민주당 천막이 어떤 소용돌이의 진앙이 될지 눈길을 주고 있다.

하지만 2004년 천막 당사에는 당시 한나라당을 구할 '선거의 여인'이 있었다. '차떼기' 정치자금 수수 논란 등으로 당이 위기에 몰리자 돌파구 마련을 위해 이 같은 수를 둘 수 있었던 데에는 인물 비중이 그만큼 컸다는 이야기다. 이번 장외 투쟁 정국에서 제 1야당의 지도부에 이 같은 인물론을 기대할지에는 선뜻 답하기가 쉽지 않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장외 투쟁을 선포하고 나섰다. 강경파에 끌려서 어쩔수 없이 나섰다는 평 대신 어려운 정국을 돌파한 선봉장으로 기억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프라임경제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장외 투쟁을 선포하고 나섰다. 강경파에 끌려서 어쩔수 없이 나섰다는 평 대신 어려운 정국을 돌파한 선봉장으로 기억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프라임경제

이번 정국의 풀이에 '김한길론'이 중요하고 또 이번 정국의 해법 찾기 과정에서 '김한길 체제'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김 대표의 성장 여부까지 달려 있다는 점은 그런 점에서 쉽게 내다 볼 수 있다.

촛불과의 결합에 일정 부분 거리 둘 듯…영수 회담으로 격상 노려

이번 영수 회담 요청은 그런 점에서 여당과의 대화를 해서 얻을 게 없다는 김 대표의 절망감을 잘 드러낸 결과물인 동시에, 여당을 사실상 움직이는 청와대에 대화 요구를 함으로써 실질적 결과물을 만들어 낼 확률을 높이고 더욱이 정치적인 위상 격상을 이끌어 내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국가정보원 선거 개입 논란 국정조사가 사실상 파행으로 치달은 점을 박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고, 김 대표를 정치적 협상 파트너로 인정해 달라는 뜻이기 때문.

김영삼 전 대통령이 야당 시절,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독대한 후 정치적 위상에서 일부 긍정적 효과를 봤다는 의견도 나온다. 물론 이 자리 이후 YS의 태도가 모호해져 일부 지지자들이나 지식인들의 비판을 받은 면도 있지만, 영수 회담 제안을 통해 지난 대선 결과 자체는 인정한다는 메시지를 청와대에 전달하고 그 반대 급부로 정치적 위상 제고를 원하는 것으로 이번 민주당쪽에서 나온 제의를 풀이할 수 있다.

어찌 됐든 김 대표의 영수 회담 제안은 여러 점에서 나쁘지 않은 제스처로 읽힌다. 우선 청와대와 청와대 주변 세력을 문제 인물로 겨냥하는 효과가 있다. 이미 장외 투쟁 돌입 초기에 민병두 의원이 남재준 국정원장, 이정현 수석 등을 일컬어 '(5공 시절)쓰리허'로 지칭한 바 있는데, 영수 회담 제안을 통해 목표를 더 특정하고(즉 여당과는 더 대화가 안 되니 청와대 등에서 일하는 정권 주요 인사들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 강조) 정조준의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수를 대부분 박 대통령측에서 읽을 여지가 크며 그래서 이는 유야무야 무산으로 가닥을 잡을 여지도 있다. 오히려 김 대표가 영수 회담을 실제로 하게 돼도 얻어낼 게 많지 않을 극단적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이 같은 강수를 둔 점은 당내의 역학 관계에서도 이 논의가 의의와 효과를 상당히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영수 회담을 제안하는 것은 대선 결과 불복 운동과 선을 긋는 '선언적 효과'가 있다. 일단 대통령과 야당의 지도부가 만나는 것은 정치적으로 상대방을 타도의 대상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국정 일반을 상의할 수 있다는 핫라인 가동론의 표시다.

당이 이번에 장외 투쟁에 나선 점에 관련해 김 대표의 심사는 복잡할 수밖에 없다. 김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유약하다는 논란 끝에 떠밀리듯 투쟁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쏟아지고 있는 점은 이번 상황에서 신강경파의 대두로 흐르는 감이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신강경파 제어하면서도 또다른 선명한 이미지 만들어야

실제로, 민주당은 3일 오후 5시30분 서울 청계광장에서 '민주주의 회복 및 국정원 개혁촉구 국민보고대회'를 갖고, 이후 시민단체들이 주도하는 촛불 집회에도 자율적으로 참석한다는 방침이다. 이 상황에서 민주당의 태도가 자율적 참석으로 가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외 투쟁이 곧 촛불로 연결되는 상황을 막고 싶은 당 일각의 기류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장외 투쟁 국면에서 민주당과 촛불의 연계를 어떻게 보고, 또 촛불 정국과의 연대를 바라보는 우호적 태도의 강약에 따라 그 정치인이 민주당 내부에서 어느 계열에 서는가를 짐작해 볼 수 있다는 흥미로운 분석이 나온다. 예를 들어, 박영선 의원 같은 경우 촛불에 우호적인 인물인데, 그는 신강경파로 분류된다. ⓒ 트위터  
이번 장외 투쟁 국면에서 민주당과 촛불의 연계를 어떻게 보고, 또 촛불 정국과의 연대를 바라보는 우호적 태도의 강약에 따라 그 정치인이 민주당 내부에서 어느 계열에 서는가를 짐작해 볼 수 있다는 흥미로운 분석이 나온다. 예를 들어, 박영선 의원 같은 경우 촛불에 우호적인 인물인데, 그는 신강경파로 분류된다. ⓒ 트위터

보수 세력으부터의 공세는 차치하고라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이 촛불 집회에 적극적이고 우호적인 정치인들과 그렇지 않은 정치인들로 갈리는 상황에서 거리를 유지하는 가장 적당한 수를 둔 것이라는 지적이다. 여기에 영수 회담 제안을 겹쳐 보면 당내 신강경파 등을 어떻게든 장외 투쟁 정국에서 제어하고 싶은 현재 당권파의 입장이 더 선명하게 읽힌다는 것이다.

이번 영수 회담 제안 문제가 김 대표의 인물론에서 2.0의 업그레이드 장이 될 것이냐는 의미 부여는 여기서 시작된다.

신강경파와는 다른, 그러면서도 선명한 지도자의 인상을 확고히 뽑아내야 한다는 데 있다.

실제로 김 대표의 그간 정치 여정을 살펴 보면 강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대중에 잘 어필했다는 식의 요약을 해내기는 쉽지 않다.

어려운 길 가는 정치인 이미지 안 읽혀? 강한 리더십 쌓을 필요 높아

기자 생활과 인기 소설가이던 그는 정치권에 발을 들인 이후에도 싸움꾼보다는 전략가, 실력자 이미지가 상대적으로 강했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언론을 통해 투영된 이미지는 그렇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될 때 미디어본부장으로 대선을 잘 치러냈다는 평을 얻은 바 있고, 2004년 무렵부터 이미 여당의 원내대표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등 비중을 인정받았다(이때에는 만류를 받아 결국 경쟁에 나서지 않음).

시계를 잠깐 뒤로 빠르게 돌려 보면, 2007년 정 상임고문(DY)이 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되는 과정에서 이른바 '김한길계 정치인들의 DY 지지 역할'이 부각되기도 했다.

즉 거물이긴 한데, 이번 국면에서처럼 지도부가 유약하니 국조 파탄이 난 게 아니냐는 식의 평에서 자유롭지 못한 아이러니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2004년 봄 원내대표 선출 국면 이후, 그 이듬해 1월28일 다시 치러진 원내대표 경선의 상황(천정배 당시 원내대표가 국가보안법 문제 해결을 못한 책임을 지겠다며 전격 사퇴해 경선을 또 치르게 됨)을 이어서 보면 이때에는 정 상임고문 등이 출마를 권유했으나, 김 대표 본인이 고사했다고 한다.

정치적으로 여러 문제가 있고 정치인별로 셈법이 있었겠으나, 이 당시 옛 열린우리당 내부에 불안한 평화 국면이 조성돼 있었던 점을 상기하는 이들도 있다. 굳이 어떤 식으로든 당내 여러 계파상 문제가 불안정하나마 봉합돼 있는 상황에 치열하게 나서지 않는 길을 택한 많은 정치인들이 있었고, 같은 판단을 김 대표가 당시 했다는 평가다. 냉정한 시선인 셈이나 시사점은 작지 않은 지적이기도 하다.

이후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의 역할이 사실상 마감된 이후 일명 '김-이-정(김한길-이강래-정세균)'이 '신당권파'로 부상했던 것을 보면 특별히 어려운 정국에서 키를 잡는 역할 외에 다른 정치적 역학 해법과 역할 소화에 김 대표가 더 강점을 보인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이번 당대표 선출 과정에서도 친노는 싫으니(경선에서의 경쟁자였던 이용섭 의원은 친노 직계는 아니나 범친노 성격+장관직을 여럿 지낸 전문성의 코드로 해석되는 거물이다) 김 대표를 택한다는 식의 해석이 나오는 점도 과거 '정세균 지도부'가 들어섰던 때의 분위기가 유사하다는 데자뷰 효과가 있다.

늘 강성인 정치인들이 늘 좋은 정치인이냐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때로 강인한 리더십을 보여야 할 당대표급 정치인의 덕목을 놓고만 보자면 지금 김 대표는 이 시험대에 선 셈이고, 본인도 기꺼이 그 시험을 질 치러내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영수 회담 제안은 훗날 민주당 역사에서 작은 핀업으로 기억될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오랜 시간 후에도 정치인들이 '김한길론'을 의미있게 되짚어 보며 리더십 영감을 얻을지, 관리형 지도체제와 연관지어 그를 연상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