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인사이드컷] '진짜 신문고'는 어디에…

이보배 기자 기자  2013.07.31 15:30:07

기사프린트

   
"내 얘기 좀 들어주소" 지난주 국회 본관 로비에 할머니 한 분이 자리 잡고 앉아 자료를 들춰가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 이보배 기자

[프라임경제] 지난주 취재차 오랜만에 국회의사당을 찾았습니다. 의원회관을 거쳐 국회 본관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는데요.

본관 로비에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한분이 자리를 깔고 앉아 "위원장 나오라고 해"라며 언성을 높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주변에 수북이 쌓인 자료에 눈길이 쏠렸습니다. 국회 경호처 직원들은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역력했지요.

아는 분은 알고 있겠지만 국회 정문 앞에는 민원, 청원을 위해 매일 한 두명의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이들은 1인 시위, 피켓 시위, 3보 1배, 1000배 등 저마다의 방법으로 억울함을 호소하곤 하지요.

하지만 국회 본관 로비까지 들어와 억울하다 소리치는 할머니는 제가 국회에 출입하기 시작한 2009년 이후 처음 봤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국회는 방문신청을 하지 않으면 진입이 불가능하고 방문신청을 하더라도 짜여진 프로그램에 따라 견학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온라인 신청만 가능한 방문신청을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직접 하셨을 리도 없고, 그렇다면 단체 견학 중 개인행동을 하셨거나 수단과 방법은 모르겠지만 국회 본관 로비까지 나 홀로 진입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쌓인 자료를 곁눈질로 슬쩍 보니 경상도 창원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담당자를 찾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창원지방법원 판결문까지 있는 걸로 봐선 꽤나 오랜 시간을 이렇게 싸워 오신 것 같았습니다.

과거 조선시대에는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들을 위해 '신문고'를 설치했는데요. 신문고는 1402년 조선 태종 때 백성들의 억울한 일을 해결할 목적으로 대궐 밖에 설치한 북입니다.

물론 조선 초기에도 상소·고발하는 제도는 법제화되어 있었지만 최후의 항고나 직접고발 시설의 하나로 신문고를 설치해 임금의 직속인 의군부당직청에서 이를 주관 북이 울리는 소리를 임금이 직접 듣고 북을 친 백성의 억울한 사연을 접수 처리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신문고를 울려 상소하는 데에는 사건의 종류가 제한적이어서 실제로는 크게 이용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하늘처럼 여겼던 임금이 직접 듣는 신문고를 쉽게 울렸다가 사건 종류에 부합하지 않거나 조건에 맞지 않으면 중벌로 다스렸는데요. 당시 신문고는 그야말로 '목숨 바쳐 억울한 일이 있을 때 치는 북'이었던 셈이지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신문고 제도는 존재합니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 고충민원을 신청 받고 있는 것입니다. 고충민원은 국민권익위원회 홈페이지에서도 가능하고,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국민신문고' 사이트에서 바로 접수도 가능합니다.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을 위해 우편 신청, 팩스 신청, 직접 방문 신청도 가능합니다. 다만, '고충민원'이 행정기관 등의 위법·부당하거나 소극적인 처분 및 불합리한 행정제도로 인해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국민에게 불편 또는 부담을 주는 사항에 관한 민원 등 행정과 관련된 것으로 정의되어 있으니 참고해야 합니다.

요즘에야 동네마다 파출소, 지구대가 설치되어 있고, 전화 한통화면 경찰관이 출동하기도 합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변호사를 통해 억울함을 벗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과거 우리 선조들이 목숨 걸고 신문고 앞에 섰듯이, 지금도 어딘가에는 목숨을 내놓을 수 있을 만큼 억울한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들이 속 깊은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는, 억울한 마음 조금이라도 달래줄 수 있는 '진짜 신문고'는 어디에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