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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 탐방 41] 사회 편견 희망으로 바꾼 사회복지회 '비둘기집'

지체장애인 기술교육 통해 재활·자립, "장애인이라 못할 것이다" 뒤집어

전지현 기자 기자  2013.07.29 17: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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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장애인이 만드는데 제대로 만듭니까?'라는 말을 듣기 일쑤죠. 그 때마다 품질과 기술로 인정받기 위해 튼튼하고 오래 사용하는 제품 생산에 박차를 가합니다."

서울 종로구 동숭동 주택가에 위치한 지체장애인 자립작업장 비둘기집. 고급주택가 한 가운데 위치한 비둘기재활센터 내 한편에 위치한 이 작업장은 큰 정원과 별장의 모습을 갖춰 언뜻 제대로 찾아왔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 정수지 인턴 기자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지체장애자기술공동체 비둘기집. = 정수지 인턴 기자
그러나 센터 내 작업장에 들어서기 위해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공장 문밖부터 '드르륵드르륵' 재봉 돌리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20평 남짓 공장 속 열댓명 작업자들은 연신 땀을 흘리며 작업에 몰두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인기척에 환한 미소를 건넸다.

"믿기십니까? 저분들이 모두 장애인입니다. 이중에는 봉재에 대한 지식이 아주 없었던 분이 17년째 이곳에 머물고 계시기도 하죠."

◆장애인 직업 재활 목적으로 일궈진 30여년 세월

비둘기집은 성인 지체장애인들이 기술교육을 통해 재활하고 자립하도록 그들의 작업능력 개발 향상을 도모하는 보호 작업장이다. 1986년 4월2일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부설로 시작한 비둘기 집은 지체 장애인들의 직업 재활을 목적으로 수유리에서 양재도구를 구입해 문을 열었다.

   = 정수지 인턴 기자  
김대율 비둘기집 시설장= 정수지 인턴 기자
시설장과 공장장을 포함한 비장애인 5명과 정신지체 및 소아마비 등 장애인 11명이 일하는 소규모 봉제 공장 비둘기집이 오픈 이후 순탄한 길만 걸어오진 않았다. 6년 전,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공장 운영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적자폭이 커져 공장 문을 닫아야만 했던 적도 있었다.

유일한 천주교 장애인 시설이 문을 닫게 된다는 소식이 퍼지자 걱정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쉽사리 앞장서는 이는 없었다. 생계 걱정 없이 사진사로 편안하게 생활하던 김대율 시설장은 공장가족들이 실업자가 될 것이란 사연을 접하고 공장으로의 첫 발을 내딛게 된다.

김 시설장은 본인의 연봉과 부모님 연금을 모두 넣어 인건비를 보충하고 건물 보수공사를 해 공장을 다시 일으켰다. 6년째 월급이 없지만 모자라는 것은 사진 아르바이트를 통해 메우고 있다.

김 시설장은 "현대그룹 이사까지 역임하다 정년퇴직 하신 아버지가 재단을 통해 공장 운영에 신경 쓰고 계셨지만, 나이든 분이 하시기엔 적잖은 무리가 있었다"며 "형과 누님 모두에게 제안했지만 사회복지를 공부하던 저에게 기회가 왔다"고 6년 전을 회상했다.

   = 정수지 인턴 기자  
비둘기재활센터는 지난 1991년 11월, 지금의 대학로 동숭동에 위치한 전 정주영 회장 별장 저택을 구입했다. 비둘기집은 이 센터 내 초입구에 위치해 있다. = 정수지 인턴 기자
경기 등 지방지역으로의 배달부터 사무직에 공장장 운영까지 1인 5역을 해야 하기에 사생활도 없다. 취미생활 하듯 사진 일을 하며 월 몇 천만 원씩 손에 쥐던 과거가 그리울 법한데 그는 "현재 법정 최저임금을 겨우 맞춰 제공하고 있다.

초반 정상인의 50%만 따라오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 생각했지만 공장직원들은 한번 시작하면 죽을 만큼 연습해 완성하는 자존심으로 현재 70%까지 따라오고 있다"며 공장 가족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는다.

그 결과 1984년 첫 문을 열었을 시절, 5명이던 교육생 4명은 현재 16명으로 늘었다. 2012년 고용노동부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고, 같은 해 보건복지부에서 중증장애인생산품 생산시설 지정도 받았다.

◆사회적 약자가 아닌 인식의 약자

같은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힘든 것은 사회적 편견이다. 장애인공장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원단 품질에 한층 더 신경 쓰고 있는 이유다. 제품 판매비가 1000만원이라 가정하면, 원단가만 600~700만원을 차지한다. 재구매율을 높이기 위한 자구책으로 품질을 선택한 셈이다.

김 시설장은 "장애인이 힘들어하는 것은 '넌 못할 것'이라는 사회적 편견이다. 사회적 약자가 아닌 인식의 약자가 되는 것이다. 장애인이 만드는 것이니 물건을 그저 받아 파는 것이라는 의심도 했다"며 "장애인 공장이라고 무시당하기 싫어 남들이 중국산 쓸 때, 국산을 고집하고 오차가 나면 그 자리에서 뜯고 다시 박았다. 좋은 품질에 두 세번씩 넣어 박음으로써 튼튼한 제품을 만들다보니 한 두번 거래하던 곳이 지속 고객이 됐다"고 말했다. 

   = 정수지 인턴 기자  
비둘기집 공장 내부. 20여평 남짓의 공장에 16명의 공장 가족들이 웃음꽃을 피우며 일하고 있다. = 정수지 인턴 기자
인터뷰 도중 사무실 한편에 위치한 마네킹이 눈에 띄었다. 마네킹이 입고 있는 것은 노란색 앞치마. 비둘기집에서 만든 어린이집 교사용 앞치마였다. 비둘기집의 주요 생산품은 병원 수술포와 사제·수녀 의복인데 앞치마가 왜 있을까.

  = 정수지 인턴 기자  
= 정수지 인턴 기자
김 시설장은 "얼마 전부터는 어린이집 아동복과 교사 앞치마 제작도 시작했다. 직원들이 꼼꼼한 바느질 솜씨와 순면으로 만들어진 원단의 높은 품질, 볼펜 및 핸드폰 꽂이 등 아이디어가 빛을 발해 일반인들에게도 인기 많은 상품이 됐다"고 자랑했다.

초창기 연매출 5000만원. 김 시설장에게 바람을 물으니 비둘기집 연매출 2억을 올리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고 답한다. 현재 그는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근로사업장을 준비하고 있다. 법인독립체로 자리 잡아 장애인 고용도 늘리고, 직원들을 비장애인 기술자 수준으로 대우해주는 것이 그의 가장 큰 바람이다.

김 시설장은 여유가 생겨 공장 규모와 직원 수를 늘릴 수 있다면, '장애인 보호작업장'보다 더 높은 근로조건 기준을 요구하는 대신 성장 기회가 있는 '장애인 근로사업장'으로 인증을 받을 생각이다.

그는 "기숙사만 있다면 취업시켜달라는 분들도 많다. 근로사업장으로 만들어 더 많은 장애인들이 월급도 올리고 좋은 근로 환경에서 작업하도록 만드는 것이 제일 큰 목표다"며 "장애인들이 만든 제품이 인정받고 실력도 인정받는 날이 왔으면 한다"며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