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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컷] 화려한 신라금관, 죽은 뒤에야 썼다?

하영인 기자 기자  2013.07.29 16:3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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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작년 어느 비 오는 날 에버랜드에서 그렸던, 해맑은 표정이 돋보이는 두 사람의 캐리커처 = 하영인 기자  
재작년 어느 비 오는 날 에버랜드에서 그렸던, 해맑은 표정이 돋보이는 두 사람의 캐리커처. = 하영인 기자

[프라임경제] 한동안 필자의 방 벽면에 걸려 있었던 액자입니다. 늘 그 자리에 있었던 터라 무심코 지나치곤 했던 그림인데요, 간만에 대청소를 한 후 상쾌한 기분으로 방을 둘러보니 캐리커처가 새롭게 보였습니다.

캐리커처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의 특징을 과장해 다소 우스꽝스럽게 풍자한 글이나 그림을 일컫죠. 좌측에 그려져 있는 넓은 이마의 여성은 다름 아닌 필자인데요, 당시 화가가 필자의 신분에 걸맞지 않게 멋진 드레스와 왕관을 씌워 줬습니다. 평소에 흔한 왕관 모양 액세서리도 착용해본 적 없던 저에게 말입니다.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여성도 왕관을 썼던가 하는 의문이었는데요, 신라시대에 여왕들이 있었으니 당연히 여성들도 왕관을 쓴 게 맞습니다.

당시 왕관은 금으로 치장이 돼 있어 금관으로도 불렸는데요, 천마총 금관 발굴 전까지만 하더라도 학계는 금관을 왕이 쓰는 전유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왕과 왕비뿐 아니라 왕족 어린이도 금관을 쓴 사실이 드러났던 것입니다.

금령총의 유물 추적을 통해 15세 왕족 어린이도 금관을 썼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금관의 용도가 왕족의 장례 용품의 일부라는 가설이 학계에 보고 됐는데요, '금관이 곧 왕관'이라는 공식이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왕들은 순금으로 만든 금관을 실제로 쓰고 다녔을까요? 금관총 금관은 금 100돈으로, 무게가 1kg이나 나갔다고 합니다. 금을 얇게 펴고 가늘게 잘라 세밀하게 장식한 금관인데요, 금은 잘 휘고 펴지는 성질이 있어 실제 사용하기가 불안정할 뿐 아니라 지금까지 발굴된 금관은 그 구조가 허약해 왕이 생전에 실용품으로 쓰고 다녔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역사학자들의 추측입니다.

또 한 가지 사실. 발굴 당시 금관의 모습을 보면 고깔 모양으로 휘어져 있는데요, 마치 왕의 얼굴을 감싼 듯 보입니다. 학자들의 견해로는, 장례 때 죽은 왕의 얼굴을 덮었던 장송의례품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네요. 화려한 신라문화의 상징임과 동시에 왕의 위엄을 나타내는 금관이 장례 소품으로도 쓰였다니 금의 용도는 참으로 다양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