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국민은행 100억수표 지급소송, 은행측 불리 포인트는?

행장 교체, 조직개편 잡음 여전한테 과거 잘못 부각까지 겹쳐

임혜현 기자 기자  2013.07.28 17:21:11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은행장 신관치인사 부인 논란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KB국민은행이 또 하나의 난제를 맞을 전망이다. 지난달 국민은행 수원 일선점포에서 발생한 희대의 위조수표 인출 사기 사건이 결국 수표(원본) 주인의 100억원대 소송 제기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번호가 소송을 제기한 A씨에 의해 유출됐는지 혹은 현재 경찰 조사 단계에서 거론되는대로 위조한 쪽인 B씨측에서 용케 번호를 알아내 일을 저지른 것인지 여부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나, 이 같은 문제와 큰 관련이 없다는 반론도 나온다. 즉 이번  문제는 국민은행에 어떤 식으로든 부담이 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위조인지 제대로 안 확인하고 돈 내준 건 은행이 알아서 책임질 일이고…"

28일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문제의 수표 원본 소지자인 대부업자 A씨는 "100억원짜리 자기앞수표에 대한 수표금을 지급하라"며 국민은행 본점을 상대로 수표금 청구 소송을 냈다. 은행쪽에서 위조된 수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돈을 지급해 놓고, 막상 수표 주인인 자신에게는 수표금 지급을 거부하고 있다는 이유다.

여기서 B씨 및 그 연루자들에게 수표의 번호가 노출됐는가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이에 대해 "회사를 인수하려는데 돈이 필요하다. 자금력을 증명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수표를 빌려주거나 보여주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일선 지방법원 단독 재판에서 거론된 점이지만, 흥미로운 설명이 있다.

2012년 여름 서울중앙지법 민사**단독에서는 자기앞수표의 변조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변조범에게 수표금을 준 은행이 수표의 원래 주인에게 수표금을 지급하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놨다.

금전대여업 L씨는 신한은행을 상대로 수표금 20억원짜리의 지급 소송을 제기했는데, 재판장은 여기서 △변조된 가짜가 비전문가의 눈으로 보기에도 정상적인 수표와 견줘 상태가 훼손돼 있었던 점 △액면금이 수십억원이나 되는 수표를 제시받은 은행이 수표의 변조 여부에 대해 의심할 수 있는 그리고 검토해야 할 가능성을 지적했다. 

◆서울중앙지법, 사채업 관행상 돌아다니는 자금력 과시용 사본에 눈길 

이어서 재판장이 주목한 부분은 △수표의 변조되는 과정에서 L씨가 공모 내지 협력했는지 여부다. 그러나 판사는 이에 대해서는 "자기앞수표 사본을 대가로 받고 일정 기간 활용하도록 제공하는 거래는 사채시장에서 간혹 이뤄지는 거래"라는 상관행에 초점을 뒀다.

즉 "변조수표를 이용해 받은 편취금 일부를 (수표의 원본 소유인) L씨가 분배 받지 않았고 수표의 사본을 변조범에게 준 것은 이자 수익을 얻기 위함이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점을 반영하면 이번에 문제가 된 수표 사건에서도 금융기관이 불리할 가능성이 있다. 더욱이 액수가 지나치게 고액인 점에서 전전유통 과정과 진본 여부에 대한 점검 책임 역시 더 커질 수밖에 없어 신한은행 사건 이상으로 국민은행에 불리한 잣대를 법원이 갖다 대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가능하다.

◆서울고법 농협 '조건부 판결'책임 등 수표 사고=금융기관 괘씸죄 시각 ↑ 

좀 다른 각도의 문제지만, 수표 사고에서 금융기관의 책임을 강하게 묻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점도 이번 문제를 어렵게 할 요인이다.

수표는 금전의 편리한 유통을 위한 수단이라는 대전제 하에서 상당히 기계적인 해석이 중시돼 왔다. 그러나 금융기관에서 사고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나몰라라 식으로 문제에 대응하는 것까지 방치할 수 없다는 쪽으로 법원이 인식 변화를 보이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에서는 2012년 4월, 농협이 분실신고를 내 수표를 무효로 하는 제권판결을 받은 사람에게 판결 당일 서둘러 수표금을 지급했다가 수표 소지인에게 8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놓은 바 있다. 제권판결은 수표의 권리자 문제에서 실권(권리를 잃게 하는 것) 처리를 하는 부분으로, 이 제권판결을 악용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 첨예한 논쟁 대목이다. 그런데 이를 안일하게 인식하고 기계적인 논리 해석으로 지급 관련 업무를 처리(편의성)하는 경우 책임을 금융기관에 묻게 하려는 태도로 보인다.

J씨는 2009년 5월 29일 직원을 통해 농협 분당 어느 지점에서 8억원짜리 자기앞수표를 발행받아 채무의 변제를 위해 K씨에게 교부했다. 그러나 채권관계서류를 돌려받지 못하자 사고수표 신고를 했다. K씨는 수표금을 지급받지 못했고, C씨는 9월 분실을 이유로 제권판결을 받아 수표금 8억원을 지급받았다. 뒤늦게 제권판결 사실을 알게 된 K씨는 11월 소송을 내 1심에서 승소했다.

이에 대한 2심 판단은 다음과 같다. 재판부는 "농협 직원은 김씨로부터 수표와 관련해 대응할 수 있도록 연락해 줄 것을 부탁받았으므로 제권판결 취득자에게 수표금을 지급하려면 적어도 K씨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고 제권판결 불복의 소를 제기할지 여부 등 의사를 확인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농협은 제권판결 불복의 소가 확정되지 않아 수표가 무효라며 수표금 청구는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 논리는 그릇된 것으로 지적됐는데 그 설명도 흥미롭다. 재판부는 "K씨가 청구취지에서는 명시하지 않았으나, 청구원인에서 제권판결 불복의 소가 '인용됨을 전제로' 농협 등에 수표금 지급을 구하고 있어 장래이행의 소에 해당한다"고 해석했다.

이어서 "법원으로서는 원고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하지 않는 이상 이를 단순히 배척할 것이 아니라 질적 일부 인용이라고 할 수 있는 조건부 판결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수표 관련 상사법 영역에서의 태도 뿐만 아니라 소송물이론 등 민사소송법에도 구소송물이론을 추종하는(기계적으로 소송의 대상물을 확정하는 태도. 잘못 제기된 소송이나 확장 등을 해야 하는 경우도 당사자의 의사를 중시하는 태도다. 법원 재량껏 판단할 여지를 잘 두지 않으려 함) 법원의 확고한 태도에 어느덧 고등법원급에서도 사안에 따라서는 다소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방증으로 볼 여지가 있다.

결국 수표의 번호가 어떻게 흘러났는지에서 그야말로 원본의 소지자가 금원 수수 등 부정한 목적으로 적극적으로 관여한 대목을 밝히지 않고서는 이번 국민은행 수표 사건에서 은행 입장에서는 선뜻 승리를 바라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서 거액의 액면을 다루는 수표를 어떻게 심사하고 수표금을 가짜를 제시한 측에 출납했는지가 더 두드러질 공산이 크다는 면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명약관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비단 근자에 거론됐던 '금융권 탐욕' 논란을 재점화할 수 있는 부분일 뿐만 아니라, 금융그룹과 은행 지도부의 교체 와중에서 악재가 될 수밖에 없는 요소다. 더욱이 소매금융의 주요 은행으로 그간 인식돼 온 국민은행으로서는 대고객 관리 전략 면에서도 불특정 다수에 선정적인 거액의 수표 문제와 업무 공신력이 입길에 오르내리는 쪽으로 소송 관리를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해 어려움이 더 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