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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한국은행 보고서 새삼 눈길, 현실화 짚어보니…

R&D 등 투자에도 성과 안 나와 '잘못된 구조' 점검할 필요

임혜현 기자 기자  2013.07.22 13:3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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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10년 전 보고서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질 것이라는 점을 짚어내고 그 한계가 어디에 있을 것인지 풀어낸 이 보고서는 리먼 브러더스 사태 같은 대변혁은 감안하지 못했지만, 대체로 저성장시대인 작금의 상황을 그대로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은행 산하 금융경제연구원은 지난 2003년말 '우리 경제의 장기성장기반 확충을 위한 과제' 보고서에서 2000~2003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잠재성장률이 5%대 보다 낮은 4.8%라고 추정하면서 우리 경제가 현재 같은 패턴을 유지할 경우, 성장동력 손실이 심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10년 후 잠재성장률 하락을 예언했다.

이 보고서가 나오기 전까지, 한국은행은 잠재성장률이 5%대라고 추정했었지만, 이를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경고음을 내기로 결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향후 10년간 즉 2013년까지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연 3.9~4.1% 수준으로 하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같은 문제를 빚을 최대 위험 요인으로 금융경제연구원은 △새로운 성장동력 상실 △우수한 인적 자원 고갈 △기업가정신과 노동윤리의 쇠퇴 △가계부채 급증과 자산 디플레이션 위험 등 4가지를 꼽았다.

◆한국 경제 주저앉힐 '4가지'

이 보고서 작성 당시 이미 한국 경제는 가격 경쟁력을 후발 이머징마켓 국가들에게 뺏기고 선진국에는 치이는, 특히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괴로움에 처할 것이라는 우려(후에 이른바 샌드위치론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된)가 막 태동하던 시기였다.

생명공학이나 초정밀기술 등 핵심기술 분야는 선진국과 격차가 커 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고서는 진단했다. 아울러 높은 연구개발 투자에도 불구하고 생산성 향상은 미흡하다는 점도 거론됐다. 보고서 작성 당시 내용을 보면, 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비율은 2001년 3.0%로 미국(2.7%)과 독일(2.5%)보다 높으나 기술수지는 GDP의 0.6% 적자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4개국 중 최하위 수준인 23위에 그치고 있다.

그리고 그 동안 한국 경제의 주된 성장동력이었던 우수한 인적자원 역시 고령화, 출산율 저하 등으로 인해 고갈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 다음이 눈길을 끈다. 파업, 시위 등 강경한 투쟁 방식의 노조 활동과 노동시장 경직성으로 인해 기업가정신마저 위축되고 있다는 점, 또한 강경한 노조 활동과 노동시장 경직성은 기업의 투자의욕 약화는 물론 국내공장의 해외 이전을 초래할 것이라는 제조업 공동화 가능성도 제기됐다.

◆10년 전 보고서 내용 적중, "2013 잠재성장률 4% 안 돼" 한은 총재 실토

물론 10년이 지난 지금, 민주당 계열 정부에서 새누리당 정부로 집권당의 색깔은 바뀌었지만, 우리 경제가 신음하는 요인은 이 보고서의 예상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꿔 말하면 보고서의 지적이 대체로 맞았고, 또 이는 보고서의 선견지명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뜻도 된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이달 기자들에게 " 우리의 성장잠재력이 정확히는 몰라도 4% 조금 안 되는 숫자다. (여기에 도달하는 성장률을 내놓지 않았는데)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얘기한다면 적절치 않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중간에 리먼 브러더스 사태라는 돌발 상황을 만나기는 했지만, 결국 10년새 꾸준히 잠재력 감퇴를 겪을 것이라는 점과 이로 인한 숫자값까지도 거의 맞은(2013년까지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연 3.9~4.1% 수준으로 하락할 것) 상황은 이제부터라도 이 보고서가 주시한 문제점들을 수술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외국계부터 노동 운동으로 인한 노이로제 반응, 상법 개정

R&D 예산은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는 16조9000억원으로 전년보다 5.3%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비율은 4.03%로, 이스라엘(4.38%)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이다. 그리고 연구개발 성공률은 2011년 97%로 세계 최고 수준이며, 작년 특허출원 건수는 세계 4위권이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에서 좀처럼 애플의 아이폰 같은 경천동지할 상품이나 신약 같은 저력있는 물건이 상용화되는 것으로 연결되지는 못하고 있다. 이는 실용성 문제 등 여러 논의가 있을 수 있겠으나, 기업이 꾸준히 뭔가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할 전체적인 분위기가 안 된다는 문제가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특히, 노조 활동의 극렬함이 외국인 투자자들이나 외국 기업의 한국 진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우려가 높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측과 격렬하게 맞설 필요가 노동 문제에는 내재돼 있다고 하겠지만, 현대차 노조 같은 노조 이기주의(1억대 연봉 인상안 요구설과 경영권 침해에 해당하는 글로벌 생산비율 협의 결정 제안 등)가 현재의 극렬 투쟁 기조와 결합해 나타나면 대책이 없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현재 노동계의 갈등 유발은 통상임금 소송 등 이른바 기획 송사 논란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물론 그간 우리의 근로와 임금 시스템이 현실과 괴리되어 운영된 점, 이를 바로잡고 넘어갈 필요가 높다는 당위성 등 기본적인 인식은 옳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소송에 이용되는 상황을 보면, 귀족노조에 해당하는 곳에서도 소송을 시도하는 등 문제가 크다는 지적이다. 전체 노동자의 권익이라는 문제를 방패삼아 특정 노조들이 과실을 취하는 게 아니냐며 백안시하는 비판론까지 제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GM측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문제 해결을 요청하고 박 대통령이 이에 화답할 정도로, 현재의 노동 문제는 기본적으로 사측이 건전한 파트너로서 불만이 다소 있더라도 감수해야 한다는 일반론의 범주를 넘어서서 초국적기업들도 곤란해 할 정도의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여기에는 5공화국 붕괴 직후의 과도한 노동 관련 투쟁 마인드가 아직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 완전히 소멸되지 못하고 변형 혹은 왜곡돼 잠재해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런 논의가 과거 일반 시민들에게도 호응 내지 묵인될 여지가 있었던 점은 5공화국까지만 해도 노동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고 이 와중에 사측이 상당히 부당하게 돈을 번 측면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시국에서도 기업인은 무조건 나쁘지 않겠냐는 시각을 견지하고 시시때때로 기획성 공세를 펴는 것은 글로벌 스탠다드에도 맞지 않고, 국가적으로도 미래 발전에 좋지 않은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상법 등을 개정해서, 기업인들이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우 대표소송 활성화와 다각적인 경영권 전횡 견제 등을 할 수 있도록 해 주고, 대신 적어도 경영판단임에도 불구하고 업무상 배임죄로 처벌될 여지가 지나치게 넓게 열려있는 현재 상황(경영판단이론을 인정해 주는 독일 등에 대조해 보면, 우리나라의 기업인 처벌은 거의 검찰의 공소권 남용에 가까울 지경이라는 비판도 나온다)의 숨통을 틔워줄 필요가 높다고 하겠다.

10년의 흐름 속에서 많은 경제 이슈들이 지나갔지만, 한국은행 보고서는 쉽게 빛이 바래지 않는 통찰력(Insight)을 보여주면서 가장 손을 확실히 대야 할 이슈들을 선별, 최소량만을 제시해 줬다는 점에서, 지금부터라도 이 같은 논의 도출이 활발히 이뤄지고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