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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車 울산, 라이프치히 대신 디트로이트 향해 '폭주'

'노조 경영참여' 미명에 파산 지자체 꼴 따라갈까 우려↑

임혜현 기자 기자  2013.07.22 08:2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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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세계 자동차 수도였던 디트로이트시가 파산을 선언했다. 빚(약 20조원)을 못 견딘 데다 앞으로 지역 경제가 나아질 희망도 없다는 게 이유다. 이는 자동차 업계의 상징적 도시이던 디트로이트의 위상을 감안할 때 세계 카메이커들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제조업 쇠락에 대비하지 못한 산업도시의 비극을 극명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번 파산 요청은 시사점을 많이 던져준다. 디트로이트의 몰락은 1950년 30만명선에 육박했던 제조업 근로자가 2011년 2만7000명으로 급감한 데서 보듯 자동차 산업이 국내 다른 도시나 해외로 대거 이탈한 데 원인이 있다.

이런 가운데 울산에 뿌리를 둔 현대차가 시선을 끌고 있다. 이번 임금단체협상에서 현대차 노조의 각종 요구 안건이 풍문으로 흘러나오면서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사고 있는 와중에 미국발 산업도시 몰락 소식이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디트로이트처럼 되기 싫어서 집착한 '생산비율제', 언젠가 그것 때문에…?

공업도시 울산, 울산석유화학단지와 울산항을 갖추고 있지만 울산에게 현대차의 의미와 비중은 상당하다. 일례로 1998년 6월 현대차가 대규모 정리해고를 추진했을 때 시청 앞에서 젊은 주부들이 시위를 벌이는 등 지역경제 전반의 분위기가 가라앉은 적이 있다.

당시 영남노동운동연구소는 현대차에서 8000여명을 해고할 경우, 지역 전체에 2만명 이상의 고용감소 파급효과와 4000억원대의 소득감소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시에도 울산이 제조업, 특히 몇 개의 큰 생산업체에 도시의 명운을 건 비정상적인 산업 시스템을 가졌다는 우려가 등장했지만, 근래까지도 이 같은 경향은 별달리 개편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울산은 돈을 벌기 위해 모여드는 '젊은 도시'다. 가족이 따로 사는 이른바 '분거가족'의 전국 평균치가 16.9% 정도인데, 울산은 23.7%로 상당히 높다. 이 중에 직장 때문에 따로 사는 경우가 주류로(45.4%), 학업을 이유로 울산에 찾아든 경우(36.9%)보다 많다(울산발전연구원, 울산경제사회브리프 21호, 2012년). 위의 1998년 구조조정에 대한 지역경제 붕괴 우려에서 본 것보다 문제가 심각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현대차의 국내 생산 소요 시간은 현재 미국과 중국의 현지 공장 등에 비해 열악하다. 절반 수준이라는 비판마저 제기된다. 사진은 쏠라리스 생산 라인에서 도장 작업 중인 러시아 현지공장 직원들.  ⓒ 현대차  
현대차의 국내 생산 소요 시간은 현재 미국과 중국의 현지 공장 등에 비해 열악하다. 절반 수준이라는 비판마저 제기된다. 사진은 쏠라리스 생산 라인에서 도장 작업 중인 러시아 현지공장 직원들. ⓒ 현대차
식구들을 두고 돈 벌러 울산에 찾아든 사람들이 많은 만큼, 울산의 '유사시'라는 위기 국면은 전국적으로 파급 효과를 미칠 이슈가 될 수 있다. 특정 기업이 (속도야 어떻든) 철수 등을 단행할 경우, 유사시에는 울산 도시 자체가 붕괴할 수 있고, 전국적으로 파장을 미치면서 울산 이슈가 조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1998년 위기를 기억하는 현대차 근로자들은 이런 배경에서 '정당성'을 찾으면서, 강하게 노동권 사수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평가다.

강성 노조로 대변되는 활동이 근래까지도 그 극단성을 해소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들은 이미 1980년대에 일본차의 득세로 안방을 뺏긴 채 몰락하기 시작한 '자동차의 메카' 디트로이트의 전철을 밟지 않고자 하는 공감대를 갖고 있다. 이들이 디토로이트처럼 되지 말자는 생각에 택한 주요 공략 포인트가 있다. 바로 '국내외 생산비율제'라는 것이다.

◆현대차 노조, 처음엔 금속노조 생산비율제 주장에 무리수 판단하더니

이번 임단협에서 많은 근로자들이 분개한 점은 자녀 재수 지원비 등 도덕적 해이에 가까운 논의나, 과도한 금액 요청이 선정적으로 언론에 보도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글로벌 이익 중 상당 부분을 한국 근로자들에게 배분해 달라는 점, 그리고 해외와 국내 생산비율을 회사가 독자적으로 결정하지 말고 노조와 협상할 것 등을 요구한 대목에서 등을 돌린 경우도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경영권 침해'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식민주의'라는 평가다. 즉 해외 근로자들을 '돈 버는 기계'쯤으로 생각하는 것이지, '외국에서 근무하지만 노동자 연대로 묶인 이들'로 보지 않는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이렇게 해외와 한국 공장의 생산비율을 맞춰달라는 주장은 이미 2010년에 나온 바 있다.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가 이 같은 중앙교섭안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에 강호돈 당시 현대차 부사장은 "해외공장 필요성에 관해서는 (현대차) 노조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중국, 인도와 같이 관세장벽이 높은 국가의 경우 현지에서 직접 생산하지 않고서는 판매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러한 수출시장 여건을 무시한 금속노조의 일방적인 해외공장 생산비율제 요구는 현실을 무시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현대차 노조 내부에서도 무리수가 아니냐는 비판적 견해가 대두됐다.

하지만, 불과 10여년만에 현대차 노조는 사실상 이 같은 최소한의 겸양과 경영권 존중을 버렸다. 더욱이 글로벌 이익 배분 요구를 이에 결합시키는 태도를 이번 임단협에서 드러냈다. 이런 논의를 대부분 수용해 주면 현대차는 가장 엽기적인 형태의 경영권 간섭을 허락하게 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본국에 앉아 식민지 생산을 착취해 과실 배분을 즐기던 일제시대 일본 노동자들의 태도를 답습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론도 존재한다.

생산비율제만으로 이미 대세 못 뒤집어

문제는 외국으로 생산시설의 메인스트림이 빠져 나가지 못하게 하자는 취지의 비율제 논의가 울산을 디트로이트처럼 되는 것을 막는 단기적 효과는 거두고 있지만, 언제고 노동환경 프레임이 급변하는 상황을 맞으면 이 둑이 바로 터질 가능성이 있다는 데 있다.

장기적으로 볼 때에는 오히려 강성 노동활동의 전미자동차노조가 디트로이트를 공동화시켰듯,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현대차 노조의 행보가 "대국민 공감대를 등에 업을 일이 하나 터지기만 하면, 이를 핑계로 무조건 나가 버리겠다"는 '방아쇠'로 작용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이미 글로벌 수출로 먹고사는 명실상부한 초국적기업이 됐으며, 생산망 역시 전세계에 구축을 완료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 노조가 국내외 생산비율 협의제를 요구하는 등으로는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현대차에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는 외국인 현지 시승고객들. ⓒ  현대차  
현대차는 이미 글로벌 수출로 먹고사는 명실상부한 초국적기업이 됐으며, 생산망 역시 전세계에 구축을 완료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 노조가 국내외 생산비율 협의제를 요구하는 등으로는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현대차에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는 외국인 현지 시승고객들. ⓒ 현대차
현대차 울산공장의 차량 1대를 만드는데 소요되는 시간 즉 HPV(Hour Per Vehicle) 지수는 30.7시간. 미국 앨라배마 공장(14.6시간)에 상당히 뒤지며 심지어 현대의 베이징 공장(19.5시간)보다도 훨씬 떨어진다.

지난해 11월 브라질 공장 가동을 시작으로 지난 7월부터 연 40만대 규모를 생산할 수 있는 중국 3공장까지 갖춘 현대차는 이제 더 이상 울산이 아쉽지 않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현대차의 해외 생산능력은 브라질 15만대를 비롯해 미국 30만대, 유럽권 30만대, 중국 100만대를 기록한다.

현재 정치가 불안정하지만 터키에 구축한 10만대 생산시설 역시 유로존 수출을 노릴 '배후 공략 카드'로 이미 오래 전부터 회자돼 왔다. 현대차에서는 애써 숨기고 또 부각을 달가워 하지 않지만, 글로벌 생산기지 구축으로 국지적 충격에 흔들림 없는 안정적인 사업의 운영이 가능하게 됐다는 풀이다.

라이프치히 노동자들, BMW에 감동 준 경영참여제

더욱이 현재와 같은 현대차 노조의 행보는 독일식의 경영참여제와도 비견할 게 아니라는 점에서 설 땅이 좁다.

독일에서는 2차 대전 이후 노동자의 경영참여가 활성화됐는데, 이는 현실적 한계 등에도 불구하고 노동 문제나 노동법, 상법 등 법학 영역에서도 많은 학자들에게 영감을 준 바 있다.(국내 법학자 중에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조명한 이로는 이기수 전 고려대 법대 교수)

하지만, 이 제도의 참여란 상당한 권리를 누리는 대신에 이에 상응하는 의무 또한 노동자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특히, 회사의 부담을 줄여주는 노조의 제안을 통해 노사가 상생하는 등 오히려 회사에 힘이 되어주는 경우도 많다.

2001년 BMW 근로자들이 포함된 산별노조가 독일 내 생산라인을 해외로 옮기지 않는다면 동일 임금에 노동시간 연장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한 경우가 있다. 이 제안을 받고 고심한 끝에 BMW는 공장을 해외로 옮기는 대신 라이프치히에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현대차 노조의 이번 임단협 줄다리기가 어떻게 끝나든, 디트로이트 파산 등 글로벌 환경과 우리 주요 카메이커 근로자들이 갖고 있는 태도의 괴리가 크다는 점은 여실히 입증됐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울산은 이미 라이프치히 같은 건강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경영참여 대신 디트로이트식의 강성 노동운동으로 치닫는 마지막 갈림길에 이미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