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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컷] 수박씨 뱉다 떠오른 이름, 그리고 '우리의 뿌리'

최민지 기자 기자  2013.07.15 17:2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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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있는 화채도 맛 좋아" '프라임경제'표 수박화채를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수박을 반으로 자른 후, 속을 파낸다. 그 속에 미리 썰어놓은 수박 조각들과 사이다, 우유, 설탕을 넣고 잘 저어주면 완성된다. = 최민지 기자
[프라임경제] 지난주에 사무실로 수박 두 통이 배달 왔습니다. 후덥지근한 여름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잘 익은 수박인데요. 이날도 무척이나 습하고 더워, 수박 생각이 간절하던 차였습니다.

한 통을 두 쪽으로 나눠서 한 쪽은 썰어서 먹고, 나머지는 사이다를 부어 화채로 만들었는데요. 맛있게 먹은 후 자리를 돌아보니 수북이 놓인 수박씨들이 있더군요. 수박씨는 리놀렌산과 글로불린 단백질이 풍부해 씹어 먹으면 동맥경화와 고혈압을 예방하고 피부까지 좋게 한다고 하죠.

이러한 효능에도 수박씨는 골라서, 뱉어서, 피해서 먹게 되는 귀찮은 부분입니다. 씨 없는 수박이 지금까지 주목받는 이유도 이러한 편의성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요.

이러한 씨 없는 수박은 씨가 영양분을 흡수하지 않고 과육으로만 영양분이 축적되므로 맛과 당도가 뛰어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씨 없는 수박은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즉 유전자변형 농산물일까요. 정답은 '아닙니다'. 씨 없는 수박은 다른 종의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결합하지 않고 만들어지기 때문이죠.

씨 없는 수박은 1947년 일본의 유전학자 기하라 히토시가 개발해, 1952년 우장춘 박사가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했는데요. 우 박사는 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씨 없는 수박 외에도 수많은 과학적 업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우리가 농산물을 자급자족할 수 있게 한 중요한 위인인 우 박사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가담했다가 일본으로 망명한 조선 후기 무관 출신인 우범선의 아들입니다. 하지만 가는 길은 달랐습니다.

1898년 도쿄에서 태어나 1950년 조국으로 귀국한 우 박사는 국가 재건과 농업기술 혁신을 위한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우 박사는 늘 고무신을 신고 다니며 육종연구와 후학양성에만 전념했다고 합니다. 일본인인 어머니 장례식에 참가도 못했죠.

우 박사는 1954년 처음으로 무와 배추의 개량품종 생산에 성공하고, 이어 새로운 품종의 감자와 감귤, 벼 생산에 성공하죠. 이뿐인가요. 오이, 고추, 양배추, 양파, 참외 등 수많은 품종을 개량했습니다. 이로 인해 6·25전쟁 후 참담했던 국민들의 식량난을 해소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현지 환경에 맞는 농산물을 통해 국내 자급이 가능해졌죠. 그 전에는 무, 배추, 감자 등 각종 농산물을 일본에 의존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우 박사의 행적은 우리나라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후기부터 6·25전쟁, 그리고 해방 후까지 역동의 한국사에 그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놓치고 있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국사과목이 수능 선택과목으로 전환되는 첫 해인 2005년에는 국사 선택률이 27.7%에 그쳤죠. 그러다 지난해 국사 선택률은 고작 6.9%에 불과했습니다.

이러한 낮은 선택률에 S대를 갈 고등학생만 국사를 공부한다는 씁쓸한 우스갯소리가 들려옵니다. 언제부터 우리 자신의 근원이자 뿌리인 한국사가 특정학교 입학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게 됐을까요.

아시아는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해 중국과 일본 등에서 끊이지 않는 역사 논쟁으로 들끓고 있습니다. 이 논쟁에 발끈하고 마음이 뜨거워진다면, '우리의 역사' 조금만 더 가까이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의 뿌리'를 잊지 않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