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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컷] 부촌에 나타난 샛노란 꼬마 코끼리

정금철 기자 기자  2013.07.11 12: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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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지난 주말 이른 석식 후 운동 삼아 가벼운 동네 산보에 나섰다가 잘 사는 터로 유명한 성북동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부티 나는 호화저택들 사이로 소담하게 아기자기 꾸며진 집이 눈에 들어왔는데 특히나 벽체가 눈에 띄었습니다. 정확히는 벽체에 달린 물뿌리개에 시선이 박혔죠.

    
"이러니 반하나 안 반하나" 바나나처럼 샛노란 물뿌리개가 주택 벽면에 달려 보는 이의 입꼬리를 올라가게 만들고 있다. = 정금철 기자
이색적이면서도 화사한 원색의 물뿌리개를 보자 1941년 세상에 공개된 디즈니 명작동화 '아기코끼리 덤보(Dumbo)'가 떠올랐고 잠시나마 순수한 동심 속을 거닐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커다란 귀로 하늘을 노니는 귀염둥이 덤보가 국내에 알려진 것은 언제일까요?

안타깝게도 덤보가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 첫인사를 한 때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관련 취재를 하면서 한국에 처음 코끼리가 들어온 것은 태종 11년 때인 1411년 2월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코끼리는 인도네시아 국왕이 수교를 위해 일본에 기증한 것이지만 당시 일본은 쇼군(장군) 국상을 이유로 우리나라에 다른 제의를 했습니다. 살아생전 조선의 고려대장경을 간절히 바랐던 쇼군의 뜻을 기려 대장경과 코끼리를 교환하게 된 것이죠.

이렇게 조선에 들어오게 된 코끼리는 이듬해 공조전서(工曹典書)였던 이우(李瑀)의 조롱을 참지 못하고 그를 밟아 죽였고 병조판서 유정현에 의해 사형의 위기까지 몰리게 됩니다. 그러나 전남 여수 앞 장도(獐島)로 귀양 간 코끼리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날로 참담한 몰골로 변해갔고 이를 딱하게 여긴 태종은 코끼리의 거처를 충청도로 옮겨줬다고 하네요.

하지만 코끼리는 충청도에서 민폐를 끼쳐 관할 관찰사로부터 거처 이동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리게 만드는 등 죽기 전까지 애물단지 처지로 전락하게 됐죠. 이후 코끼리는 조선시대에 중국의 사여(賜與, 조공의 대가로 들어오는 물건)로 반입됐었으나 사육에는 실패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