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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웰컴 투 대통령 기록 없는 나라"

이보배 기자 기자  2013.07.09 18:4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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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9일 국가기록원에 보관돼 있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열람한 뒤 여야 간에 합의된 내용에 대해서만 최소한 범위 내에서 공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앞서 지난 2일 여야 의원들은 국회 본회의에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과 녹음기록 등 자료제출'건을 가결시켰다.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보호되고 있던 '2007년 남북정상회담 관련기록'이 국회에 의해 열리게 된 것.

국회 나름의 절차를 거쳐 재적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통과시켰기 때문에 국회의 결정을 존중해야 하지만 정상회담 전문을 공개하는 것은 정말 불행한 일이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국가의 기능 자체를 포기하는 일"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기록관리단체협의회 관계자들은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는 실망을 넘어 절망적이라고 말했다. 신생국도 아니고 높은 수준의 왕조실록을 갖고 있는 우리 기록문화를 봐서도 부끄럽기 짝이 없다는 지적이다.

유구한 문화로 대변되는 조선시대 우리나라는 왕조실록을 남겼다. 그 시절에도 왕조실록은 해당 왕조차 보지 못하는 기록물로 분류됐다. 다음 왕은 정치에 참고할 수 있도록 왕조실록을 볼 수 있게 허했지만 재임기간에는 실록을 보고 정치적 개입이 있을 수 있고, 공정한 기록을 남길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보지 못하게 만들어놓은 것을 억지로 보자고 한 왕이 연산군이다. 이로 인해 무오사화가 일어났고, 피비린내 나는 정쟁이 이뤄졌다.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것도 문제지만 역사학적 관점에서 볼 때 그 시대의 기록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피비린내 나는 상황에서 사관들이 연산군에 대한 기록을 남길 엄두가 났을 리 없다.

이번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로 우리는 어쩌면 대통령 기록이 없는 나라에 살게 될지도 모른다. 대통령지정기록물이 정쟁으로 인해 이렇게 멋대로 공개된다면 어느 대통령이 기록을 남기고 또 보존하겠는가. 

대통령 기록은 지극히 정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엄중하게 보존해줘야 하는 것이고, 일정 시간이 지나 역사적인 평가를 위해 공개되어야 한다. 기록이 있어야 평가도 가능하다. 기록 자체가 남지 않으면 후세대는 이 시대를 무엇으로 평가할 것인가.

대통령기록관리법이 만들어진 지 이제 6년이다. 대통령기록관리법은 노무현정부 때 만들어졌고, 그 이전 정부 때까지 남아 있는 대통령 기록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노무현정부가 200만건의 기록을 남긴 반면, 그 이전 정부를 다 합해도 남아 있는 기록은 30만여건에 불과하다는 게 이를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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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이번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는 대통령지정기록물을 남겨도 보호되지 않는다는 전례를 남기게 됐다. 대통령지정기록물 제도가 사문화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정쟁으로 시작된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의 후폭풍도 걱정이다. 대화록 열람으로 정쟁이 종결될지도 의문이지만 대화록 공개가 더 큰 정쟁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