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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박근혜 대통령·박근혜 총통·박근혜 여사

이종엽 기자 기자  2013.07.05 12: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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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방문에 이어 중국 순방까지 성공리에 마쳐 국내외 언론은 연일 향후 성과 진행과정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번 방중에서는 중국 권력 서열 1위 시진핑 국가 주석과 2, 3위인 전인대 상무위원장과 총리와의 연쇄 회담으로 향후 아시아에서의 한국의 위치와 역할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박 대통령은 한중 비즈니스 포럼을 통해 양국간 교역 확대와 발전적 방향을 논의했으며, 명문 칭화대 연설에서 차세대 중국을 이끌어 갈 젊은이들과의 진솔한 대화 역시 큰 관심을 받았다.

국내외 경제 상황이 악화되는 시점에서 'G2'인 미국과 중국 정상과의 연쇄 회담을 통해 국익 실현에 힘쓰는 대통령과 정부 요인들에 대해 많은 국민들은 큰 감명을 받았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관련돼 오래됐지만 다른 시각의 이야기를 하나 해보겠다.

바로 중국의 '호칭' 문제다. 중국과 우리와의 호칭문제는 과거 수 천년 전 부터 내려온 해묵은 과제다. 대륙의 주인이 바뀌면 제일 먼저 우리에게 요구한 것이 바로 호칭 문제로 양국간 외교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호칭은 삼국시대 부터 근세인 대한제국시대 까지 동일한 한자 문화권과 유교적 질서를 강조한 중국과 우리 역사에서 빠지지 않는 핵심 키워드였다.

  상단 '한중비즈니스포럼'에서는 '총통'이라는 호칭과 하단 칭화대 연설에서는 '여사'라는 호칭이 혼재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상단 '한중비즈니스포럼'에서는 '총통'이라는 호칭과 하단 칭화대 연설에서는 '여사'라는 호칭이 혼재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방중에서도 역대 우리 대통령들에게 사용돼 이제는 무감각해진 호칭 문제를 한번 짚어보고 싶다.

중국은 대한민국의 국가원수인 대통령을 항상 '총통'이라 불러 왔다. 이번 박근혜 대통령 역시 '총통'이라고 호칭됐는데 우리에게 '총통'은 과거 군부 체제의 정부나 전체주의 국가 등에서 쓰이던 용어로 인식돼 있다.

우리 역사에서 '왕'이라는 호칭 이외 처음으로 쓰인 대외 공식적인 호칭은 '백리새천덕(伯理璽天德)'이다. 다소 생소한 이 호칭은 고종 19년 1882년 체결된 강화도조약(조미수호통상조약)에서 처음 등장한다.

당시 이 호칭은 청나라 실력자인 이홍장이 미국의 슈펠트 제독과 텐진에서의 회담을 통해 이홍장의 심복인 마건충으로 하여금 조선의 신헌 등과 조율한 외교문서에 처음 등장한다.

즉, 중국의 속방인 조선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스스로 주선자임을 자청한 이홍장의 작품인 '백리새천덕(伯理璽天德)'이라는 호칭은 외부 세력이 만든 임의 호칭인 셈이다.

대통령의 시원은 여러 해석이 분분하다. 우선 국제적 공식 문서에는 1858년 '미일수호통상조약'에서 처음 등장한다. 일본이 만든 단어로 세상에 처음 등장한 '대통령'이라는 호칭은 당시 한자 문화권에서 널리 쓰이던 여러 용어에서 새롭게 변형한 것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그 예로 중국에서는 1843년 쓰여진 '영환지략'이나 영국인 모리슨이 쓴 '외국사략' 등에서 '통령', '부통령', '총통령' 이라는 단어들이 등장한다. 이 단어들은 당시 각 지역의 지배자를 뜻하는 단어로 쓰였고 대만의 경우는 지금까지도 총통을 자국의 국가원수로 지칭한다.

이는 청나라 말, '황본기'의 편저인 역대직관표에 의하면 '보군(步軍)통령은 정2품 친선대신을 겸임한다'는 대목에서도 군사 편제에서 쓰이던 용어가 혼란한 시기 각 군벌에게 널리 쓰이는 단어로 대체됐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역사에서도 이 단어는 등장하는데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날 당시, 손병희 선생은 동학 2대 교주인 최시형 선생으로 부터 사령관 격인 '통령'에 임명됐으며, 당시 동학과 천도교에서는 통령 이상이 되는 대접주, 대두목, 대도주 등의 직함을 가진 이들을 '대통령'이라 불렀다.

이후 일제 식민 시기 독립운동을 하던 총 8개의 임시정부 중 대통령직을 둔 4개의 임시정부가 손병희 선생을 대통령으로 추대하면서 정부 수반으로 처음 쓰이게 된 것이다.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대통령 호칭이 지난 19세기 외세 세력 침략이 빈번한 시기 중국에서 쓰이던 단어가 일본에서 고착화 돼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셈이다.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에서도 나타났지만 중국은 한자 문화권이면서도 한국에서는 쓰지 않는 군사 정부와 전체주의 색이 남아 있는 '총통'이라는 단어를 굳이 고집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아울러 이번에 박 대통령이 명문 칭화대에서 연설할 때도 마찬가지다. 방중 공식 일정에 포함된 이번 행사에서 중국 측이 '여사'라는 호칭을 붙인 것도 의아한 부분이다.

양국 외교 실무진들간의 사전 조율이 있었는 지는 정확히 알 길이 없지만 다소 의외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통상 '여사(女史)'라는 호칭은 사회적으로 이름이 있거나 신분이 높은 경우에 많이 사용하는 단어로 일반적으로 배우자의 지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단어다.

퍼스트레이디일 경우 여사의 호칭이 적당하지만 대한민국의 대통령의 공식 일정에서 굳이 '여사'의 호칭을 붙인 것은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한 예로 지난 2009년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이화여대를 방문해 강연을 했을 당시, 우리는 국무장관 이외의 다른 어떠한 호칭을 붙이지 않았다.

만약 과거 힐러리 대통령의 퍼스트레이디 자격이었다면 우리는 '영부인' 내지 '여사'의 호칭을 붙일 수 있지만 공식 자격에 대한 의미 부여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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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지난 과거의 일까지 거론해 호칭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비생산적일 수 있지만 알고 넘어가는 것과 모르고 넘어가는 것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현재 한중간 논의되는 한반도 평화와 경제 협력 문제가 아닌 '동북공정'을 비롯한 역사 문제가 촉발될 때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자존심' 싸움은 명약관화하다.

가끔 중국 네티즌들의 글들과 그들의 뇌리에 각인돼 있는 '총통'이라는 단어를 우리에게 왜 부여하는지 모두의 상상에 맡긴다.


이종엽 자본시장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