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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컷] 피난계단의 패션화

임혜현 기자 기자  2013.07.02 17: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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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대전의 목원대학교에 들렀다가 학교 건물 밖에 위치한 피난계단을 봤습니다. 과거에는 피난계단 등 위기 관리 시설을 가리고 감추는 데 급급했다면 지금은 사진 우측에 드러난 것처럼 색깔있게 잘 표시하고 오히려 일종의 패션 아이템처럼 활용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가 12일까지 서울역, 용산역 등 7개 민자역사를 대상으로 여름철 소방안전대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전기·가스 안전시설 관리상태, 비상구 폐쇄 여부와 함께 중요하게 보는 게 있으니 바로 피난계단에 짐을 쌓지는 않는지(일명 '적치 행위') 여부가 들어갑니다.

  목원대 건물의 패션화 경향. 색깔 있는 피난계단 표시를 통해 오히려 위기시 안전 대피를 하게끔 유도하고 있다. = 임혜현 기자  
목원대 건물의 패션화 경향. 색깔 있는 피난계단 표시를 통해 오히려 위기시 안전 대피를 하게끔 유도하고 있다. = 임혜현 기자

일본에서는 '경찰'이라는 직책이 등장하기 전부터 에도 막부(도쿠카와 막부로도 부름) 시절부터 순시관이라는 직급을 두고 있었고(무사 계급이 순시관으로 근무하고 그 밑에 실무자를 두었음) 그 중에는 도둑을 잡는 순시관만 있었던 게 아니라 '적치순시관'이라고 해서 불이 나는 경우 그 진화 작업 등 안전 작업을 진행함에 있어 방해가 될 요인을 예방 단속하는 고급 공직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 적치순시관이 오늘날로 따지면 피난계단 같은 시설 업무도 봤겠지만요, 그런데 일반적인 치안 관련 업무를 보는 순시관과 달리 이런 적치순시관은 크게 힘있는 자리이거나 좋은 자리로 받아들여지진 않았다고 합니다.

피난계단은  장애물 화재 등 재난 발생시 대피를 위한 중요한 '생명줄'이고, 선진국에서는 다른 효율과 기능 이전에 안전을 우선순위에 두고 계단을 설치하고 있습니다.

물론 계단에 대해서는 여러 문화사적 의미가 연구 결과 부여되고 있습니다. △종교적 상징성 △정치적 기념비성 △사회적 공공성 △경제적 욕망 △생물학적 의미 등 인간을 둘러싼 개인적 혹은 집단적, 신학적 문명 작용의 총집합체가 계단이라는 연구 결과를 담은 책도 있는데요(임석재 이화여대 교수의 '계단, 문명을 오르다'). 이런 어려운 의미 중에도 뭐니뭐니 해도 기본은 '안전과 이동'입니다.

계단 속 배려의 의미는 지금의 건축법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계단 높이가 3m 이상 될 경우 높이 3~4m 이내마다 '계단참'을 설치하도록 법에 규정돼 있습니다. 저 사진 속에서처럼 잠시 쉬는 판판한 공간이 있는 것이지요. 극단적으로 계단만 계속 이어지다가 무한정 굴러내려오는(이런 경우 필시 치명상을 입게 마련) 최악의 사정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 보기엔 다소 좋지 않더라도 혹은 건물을 디자인함에 있어 미관이 100% 살지 않더라도 피난계단을 백안시할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렇게 색깔있는 공간, 그리고 그 와중에도 층계참(계단참)을 둔 피난계단을 보면 계단과 건물의 가장 중요한 목적인 '안전'을 되새겨 보면 좋겠습니다. 옛날 일본의 적치순시관들이 저런 말끔한 색깔로 꾸며진 예쁜 피난계단을 봤다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꼈을 법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