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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컷] 장맛비와 태극기, 그리고 '동심'

나원재 기자 기자  2013.07.02 13:4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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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내리는 과천 정부청사, 그리고 휘날리는 태극기' = 나원재 기자  
'비 내리는 과천 정부청사, 그리고 휘날리는 태극기' = 나원재 기자
[프라임경제] 아침 출근길 갑자기 쏟아진 비 때문에 고생 많으셨죠. 젖은 신발을 터벅터벅 이끌고 회사로 향한 분들이 많으셨을 텐데요. 7월초가 돼서야 본격적인 장맛비가 내리는 모양입니다.

수도권에 호우특보가 내려졌는가 하면 남부지방은 명일 많은 양의 비가 내린다고 하니 단단히 준비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과천 정부청사로 출근하는 길. 여기도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쏟아지는 비에 보폭을 넓히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우산이 없었다면 학교에서 배운 광행차 이론을 생각하면서 선비의 느린 걸음을 떠올리기도 했겠죠.

하지만 오늘은 유달리 시선이 한 곳에 머물렀습니다. 정부청사로 들어서는 길 따라 휘날리는 태극기가 힘이 없어 보입니다.

매일 같은 위치에 있는 태극기가 오늘따라 왜 이리 눈에 밟히는지 우선 숨을 가다듬고 천천히 생각해봤습니다만, 결론은 너무나도 간단했습니다. '비와 태극기'의 관계가 어색했기 때문이었죠.

보통 비 내리는 날에는 태극기를 게양하면 안 되지만, 이곳 과천은 폭우에도 태극기가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아닙니까. 청사 내 우뚝 솟은 태극기는 흡사 축 처진 거인의 어깨와 같았습니다. 무슨 연유가 있을 것이란 생각에 법제처 홈페이지에서 '대한민국국기법' 시행령에 명시된 주요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 그리는 방법을 모르는 분은 없을 것으로 사료돼 미처 몰랐던 내용만 전달하겠습니다.

대한민국국기법에 따르면 국기 깃면의 크기는 특호 및 1호부터 10호까지로 구분됩니다. 또, 국기게양대를 다른 기의 게양대와 같이 설치할 때에는 국기게양대를 다른 기의 게양대보다 높게 설치하고, 총수가 홀수인 경우에는 국기게양대를 중앙에, 짝수인 경우에는 정면 왼쪽 첫 번째에 설치해야 합니다. 사진은 정부청사 안에서 바라본 것으로 밖에서 봤을 때 왼쪽인 셈이죠. 

이 대목이 가장 눈에 끌렸습니다.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공공기관의 청사 등에는 국기를 연중 게양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요.

시행령에는 △공항·호텔 등 국제적인 교류장소 △대형건물·공원·경기장 등 많은 사람이 출입하는 장소 △주요 정부청사의 울타리 △많은 깃대가 함께 설치된 장소 △그 밖에 대통령령이 정하는 장소 등에는 연중 국기를 게양해야 하며 야간에는 적절한 조명을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하지만 시행령에는 국기가 심한 눈·비와 바람 등으로 그 훼손이 우려되는 경우에 게양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오늘 아침 상황이 이해는 가지만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는 정부청사 담당자 판단에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분위기를 바꿔볼까 합니다. 며칠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 '초등1학년의 태극기'란 제목으로 한 장의 사진이 게재됐습니다. 비 내리는 날 창밖에 걸린 사진 속 태극기는 비닐이 씌워진 채 였습니다. 혹시 태극기가 비에 젖을까 걱정된 초등학생의 동심이 그대로 담긴 것입니다.

이를 두고 네티즌들은 '순수한 마음에 절로 미소 짓게 된다', '비 내리는 날에는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도록 돼 있지 않나', '발상이 귀엽다' 등의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학생 때 넓게만 보였던 학교 운동장이 나중에 돌아와 보면 작게만 느껴지는 이유도 보이는 것만 보는, 있는 그대로만 바라보는 동심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장맛비로 우중충한 하루를 시작하셨다면 어린 시절 비 내리는 놀이터에서 놀던 그 때를 떠올려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