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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하기 힘든 제도와 정서 한국, '사장 우려'에 비명

CJ비자금이 상법개정 노력 등까지 찬물, '마지막비상구'놓칠까

임혜현 기자 기자  2013.06.25 12: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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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바야흐로 경제계는 '사장 우려'의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다름 아닌 CEO 리스크(에 한국 재벌 문화의 특성상 오너 리스크를 포함)의 사장 우려뿐만 아니라 경제적 제도 개선 노력들이 각종 역풍에 사장(死藏)될 우려까지 높아지고 있다.

CJ그룹 오너가 검찰에 출석하는 등 비자금 논란, 역외 조세피난처 악용 문제 부각 등 '경영 판단'이란 곧 부정적 이미지로 덧칠되는 시국이다. 하지만 근래 미국 출구전략 조짐과 중국발 금융 불안 바람이 겹쳐 한국은 물론 세계 경제를 흔드는 상황에 '경영 아이디어'가 더 부각될 수요가 높다고 할 수 있다. 경영인의 지혜가 두각을 나타내야 할 이 시기에 국내 법률 체계나 국민 정서가 경영 자율을 보장하고 돕는 데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대기업 세금 혜택부터 토막날까 전전긍긍? 'R&D 투자의욕 감퇴 우려'

정부의 2013년 세제개편을 앞두고 국내 기업들은 복지부동하고 있다. 세수 확보라는 대전제가 워낙 중요한 상황이라 취지 자체는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대기업 등에 대한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 혜택을 축소하려는 정부나 정치권의 움직임이 지나치다는 불안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가 주로 대기업들에 수혜를 주고 있다는 이유로 정부가 고용창출투자세액제도로 전환한 데 이어, 이 신제도가 제대로 안착하기도 전에 다시 손질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오는 26일 한국조세연구원 공청회를 통해 발표되는 정부의 비과세 및 감면 개편 방향이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알려져 경제계는 물론 학계 등의 시선이 집중돼 있다. 이번에 기업의 고용 및 투자 촉진보다는 법인세 세수 확보에 방점이 찍히면 투자의 의욕이 확실히 냉각될 것이라는 우려도 따른다. 기업 규모에 따라 설비투자에 대한 세제혜택 수준을 차등화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고 알려졌는데, 대기업일수록 세금을 덜 깎아주겠다는 정부의 뜻이 확인되면 파장이 만만찮을 수밖에 없다.

물론 R&D 의욕 고취를 위해 유망 중소기업을 대기업쪽에서 인수하는 경우, 계열사 편입(이는 기업의 경영에 상당한 제약과 부담이 된다는 평가다)을 늦춰주는 방안이 추진되는 등 유인책도 없지 않다. 하지만 돈줄 자체를 죄는 방안들이 마련되는 상황에 이 같은 언 발에 오줌누기격밖에 안 된다는 비판론이 힘을 얻고 있다.

안티-대기업 정서, 리니언시 등에도 부정적 '국책연구기관도 우려 표시'

재벌의 그간 구태에 관련해서 국민들의 불만이 높은 것은 사실이나, 대기업 행보에 대해 전반적으로 백안시하는 정서가 만연하는 것은 기업 활동에 크게 문제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4일 발표한 '자진신고자 감면, 카르텔에 독배일까 성배일까' 보고서는 이런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케이스다. 2005년 4월 리니언시 제도 개선 전후의 입찰담합사건과 일반담합사건 건수 비율을 비교해보면 리니언시 적용이 활발했던 때의 일반담합사건 건수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담합이 적발된 시점을 기준으로 비교해도 전체 사건에 대한 일반담합사건 건수의 비율은 67.7%에서 62.5%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송은지 KDI 연구위원은 "리니언시 제도의 이용이 활발해 담합 적발력이 높아야 하는데, 일반담합의 비중은 오히려 감소했다. 이는 일반담합의 실제 형성이 상대적으로 감소했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이런 효과는 담합이 형성된 시점을 기준으로 비교하면 그 효과가 더욱 뚜렷해진다는 분석이다. 2005년 4월 이전 75.3%에 달했던 일반담합의 비율이 리니언시 제도 개선 이후 47.5%로 감소했다.

송 연구위원은 "대기업이 자진신고 감면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근거로 리니언시 제도가 대기업에 유리한 제도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면서 제도 자체에 대한 무용론, 폐지론 등을 경계할 필요가 높음을 시사했다.

여야 막론 '제대로 된 기업' 키울 상법개정 백가쟁명하지만

무엇보다 현재와 같은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 분위기에 가장 안타까운 대목은 각종 상법 개정안 등으로 '제대로 된 기업의 경영 판단&활동만큼은 보장해 주자'는 공감대마저 무의미하게 흩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다.

이명수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상법 개정안 등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미국 스타일과 독일식으로 크게 두 줄기를 형성, 세계 경제의 메가 트렌드로 이미 자리한 일명 '경영 판단 이론'을 체계화해 이식하려는 일명 이명수案은 법사위에 20일 상정됐다. 이 의원 등이 준비한 개정안은 상법에 이중대표소송의 도입을 명시하고 경영 판단 이론을 법제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중대표소송은 주주대표소송제를 모자관계에 있는 회사로까지 확장하는 제도다. 현재 활용되고 있는 지주회사제의 현실을 반영하고 실질적으로 사용되는 권한에 따르는 책임을 일치시키려는 것이다. 기업의 경영 실전 상황에서 보더라도, 탁상공론이 아닌 지주회사와 자회사간 유기적 관계에 따른 손실의 전이 문제에 대해 깊이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한 법안이라고 환영받고 있다.

현행법상 지주회사의 주주는 주주권자로서 지주회사에 대해 관리·감독할 수 있지만 실질적인 사업의 주체인 자회사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관리·감독을 할 수 없다는 맹점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회사의 손해는 모회사의 손해로 귀결되기 때문에 손해의 궁극적인 당사자인 지주회사의 주주의 이익을 강구하기 위해 이중대표소송이 필요하다는 게 이 의원의 법안에 함께 이름을 올린 이들의 공감대다.

경영 판단 이론의 법률상 명시 구상(확실한 도입 추진)은 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요소다. 그간 법학계에서는 모호한 배임 관련 규정과 해석론 때문에 경영 행위에 대한 배임죄 처벌이 고무줄 잣대로 적용됐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일례를 들어 보자. 가수 비에 대한 수십억원대의 배임 혐의가 검찰의 재수사에서도 다시 무혐의 처분(원래 수사는 무혐의가 났으나, 고등검찰청에 항고를 해 재수사를 해 이번에 그 결론이 난 것)된 것은 일종의 해프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한편 어떤 손실이 기업에 날 때 오너의 경영상 여러 판단에 모두 회사에 손해를 끼칠 문제로 보는 정서의 저변을 반영한 논란이 아니었냐는 해석도 존재한다.

결론적으로 기업의 경영 판단에 대해 지나치게 광범위한 책임추궁론이 존재하는 현상황은 어떤 형태로든 글로벌 스탠다드에 가깝게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는 뜻도 된다.

학계에서는 경영 사항에 관한 전문적 지식이 부족한 법원에 경영 판단의 옳고 그름을 따지도록 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보는 의견도 존재한다. 일부 학자들은 경영 판단에 배임 논리를 적용하는 것은 사실상의 사법권 남용이라고까지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경영 판단 중에서도 지나친 무리수에는 상법 차원에서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는 구상을 담은 개정안도 따로 제출돼 있다.

유승희 민주당 의원이 내놓은 이 법안은 '회사가 인수 또는 매각하려는 자산의 규모가 일정 규모 이상으로 큰 경우'를 신중히 스크린하자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한통운 및 대우건설 인수에서 볼 수 있듯이 대규모 인수합병 이후 유동성 위기를 겪은 사례 등이 앞으로 나오지 않게 규제하자는 것이다.

유 의원의 개정안은 양수도하는 자산의 규모가 자산을 양수도하는 회사 자기자본의 50% 이상인 경우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받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대규모 인수합병 결정이 일부 대주주 및 이사진의 이익을 위해 기업이 감당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투자가 결정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이렇게 여야의 정치적 벽과 상관없이 좋은 의견들이 다수 쏟아져 나오고 서로 뒤섞이면서 발전할 여지가 엿보이는 국면에 CJ 스캔들 등이 악영향을 미쳐 도루묵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문제라는 탄식이 나오고 있다.

금융권, 공정위와 금융 당국 손발 좀 맞춰달라 '읍소'

금융권도 기업 활동하기 어렵다는 하소연을 하고 있다. 25일 정재찬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 '새 정부의 공정거래정책 방향'을 주제로 금융투자업계 최고경영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이 같은 일선의 애로점들이 당국에 전달됐다.

특히,금융투자업계 CEO들 사이에선 금융 당국과 공정위의 이중규제에 대한 불만도 제기됐다. 현행 판례는 행정지도(행정청에서 비강제적인 사실상의 명령이나 유도 등을 통해 행정행위를 한 것 같은 목적을 달성하는 기법)에 따라도 담합이 된다고 했지만, 금융업 종사자에겐 그것이 행정명령으로 해석되곤 한다고 의견을 개진한 것이다. 금융 당국과 공정위 간 의견조율 채널을 확대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지적되는 부분이다.

이렇게 각 영역에서 문제가 부각되고 있어 대대적 개혁을 추진할 마지막 비상구가 지금 여기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는 가운데, 과연 기업들이 피부로 느끼는 각종 문제점들을 해결해 줄 제도적 개선이 가능할지 관심과 우려가 교차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