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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구 납품본 '판매'? 교보문고, 책세탁(?) 경로되나?

북마스터 등 필터링+제 목소리 문제제기 능력 있음에도 관행 눈감았나 논란

임혜현 기자 기자  2013.06.23 14:4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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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 1. 시내 중심가인 광화문-시청에서 책을 종종 구입하는 교육계 종사자 A양. A양은 사들인 책을 읽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서지정보가 실린 속지에 종이스티커가 발라져 일부 글자를 가리고 있는 게 뒤늦게 눈에 띄었던 것. 손톱으로 살살 뜯어본 A양은 이 책이 원래 판매용이 아니라 기금 지원을 받아 무료지원용으로 제작된 것임을 발견했다.

#2. 한때 문학소녀였던 직장인 B양은 지금도 문예지를 종종 구매해 읽는다. 특정 문예지를 지속적으로 구입하기 보다는 신생 잡지나 군소 매체 등도 가리지 않고 사들이는 편인데, 어느 날인가 수상한 스티커가 붙은 책을 사게 된다. 알고 보니, 증정용 책을 돈 주고 산 것. 오래 전에도 동그란 스티커가 붙었던 책을 샀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이런 찝찝한 잡지들은 우연이겠지만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산 책들이고, 종각역 영풍문고에서 산 잡지는 그런 경우가 없었다고 한다.

한국 오프라인 서점 중에서도 독보적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교보문고. 그 교보문고의 심장인 광화문점이 때때로 수상한 책들이 버젓이 유통되는 창구로 이용되고 있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위의 사례에서 문제가 된 책들은 각종 공공적 성격의 지원을 받아 특정 목적으로 사용될 것으로 예정됐던(그렇게 표시가 된) 상품들이다. 

복권기금, 문화예술委 기금받은 책들 정체 가리고 서점 매대 진출?

경제 침체와 각종 신미디어 발전으로 인한 독서인구의 감소로 현재 문화출판계의 사정은 녹록치 않다. 하지만 출판업이 위축되는 것을 시장 논리에 의해서 방치만 하면 문화 역량 문제가 생기므로, 각종 기금 등으로 공공적 지원이 이뤄지는 채널이 운영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 사업과 기획재정부 산하 복권위원회 기금 지원 등이 좋은 예다.

이들 채널의 운영 방식은 대체로 비슷한 틀을 갖는다. 즉 일정한 선정 절차를 거쳐(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우수문예지 사업의 경우는 문예지 발행회사가 자천을 하면 심사를 하고, 복권위 자금의 무료 제공용 도서는 한국도서관협회의 선정작 등을 반영) 책이 선정되면, 출판사에게 납품하게 하고 이를 배포할 대상을 고르며 책을 관리(보관·물류)와 도서인수증 확보 등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교보문고에서 진열 중인 자음과모음 2013년 봄호들(교보문고 광화문점 내부). 증정용임을 알리는 스티커가 정면에 붙어 있음에도,이를 눈 가리고 아웅하듯 작은 스티커를 재차 발라놓고 있다. 그 형태나 방식마저도 제각각이다. ⓒ 프라임경제  
교보문고에서 진열 중인 자음과모음 2013년 봄호들(교보문고 광화문점 내부). 증정용임을 알리는 스티커가 정면에 붙어 있음에도,이를 눈 가리고 아웅하듯 작은 스티커를 재차 발라놓고 있다. 그 형태나 방식마저도 제각각이다. ⓒ 프라임경제
그런데 이 도서가 인쇄된 해당 소개 내용을 가리고(작은 글자로 속지 일부에 나오므로 스티커 작업 등으로 처리하면 어렵지는 않다) 일반 소비자 대상으로 서점 매대에 진열되고 판매되는 것이다.

이는 여러 경우를 상정해 볼 수 있는데, 일차적으로 해당 서책을 발행하는 중에 선정이 안 된 책을 미리 납품용으로 인쇄했다가 문제가 돼 가린 경우, 혹은 발행량을 초과해 인쇄했다가 문제가 된 남은 책을 판매용으로 전용한 경우다. 이에 해당한다면 정가 판매에 나선다고 해도 논리상 문제는 없지만, 실제 문제 사례로 지목된 '문학과지성사'와 '자음과모음'은 한 곳은 전통있는 유력 출판사로 속칭 '물량 미스' 등의 아마추어적인 실수를 할 곳으로 보기 어려운 감이 있고, 다른 한 곳은 최근에도 백영옥 작가의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사재기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곳이라 진정성에 의혹이 제기될 만한 업체다.

물건이 흘러나올 그 다음 경우를 추가로 상정해 보자. 위의 과정에서는 도서의 확보(물품으로 치면 납품이 될 것이나)부터 보관, 발송 등 여러 과정을 위탁으로 처리하기도 하는데(일례로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개입돼 있는 문학나눔 사업은 최근 우수문학도서 배포용역을 맡을 곳으로 한국출판협동조합이 선정된 바 있음) 이쪽에서 물량이 비정상적으로 유출됐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배포된 서적 중 일부가 (이미 기금 등에서는 물건을 넘기고 영수증을 수집한 뒤) 원래 목적대로 사용되지 않고 판매되는 경우인데, 이 경우 '작은도서관' 등에 납품되는 경우라는 점을 함께 생각해 보면 확률이 크지 않다. 개인에 가까운 공공기관(도서관)에서 교보문고 같은 곳에 책을 '납품'한다는 것이 채널 확보상으로 또 물량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 일부 문제 도서가 유력한 대형서점을 통해 버젓이 소비자에게 팔리는 상황은 문제 소지가 있을 확률이 크다.

교보 "몰랐다" 면책 어려워, 아예 '눈가리고 아웅용' 스티커처리조차 안한 증정책도

교보문고로서는 문제의 서적을 납품받았을 뿐, 배경의 사정을 모르거나 또 알 필요가 없다고 주장할 여지도 있다. 하지만 과정을 보면 모두 그렇다고 빠져나갈 수 있는 경우는 아닌 것 같다.
   교보문고에서 판매된 일부 서적이 원래 증정용 내지 공공목적 납품용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표식을 엉성하게 가린 뒤 납품돼 시민들에게 정가로 판매된다는 것이다. 의혹 대상 도서들의 하단에 교보 판매 도장이 보인다. ⓒ 프라임경제  
교보문고에서 판매된 일부 서적이 원래 증정용 내지 공공목적 납품용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표식을 엉성하게 가린 뒤 납품돼 시민들에게 정가로 판매된다는 것이다. 의혹 대상 도서들의 하단에 교보 판매 도장이 보인다. ⓒ 프라임경제

   납품용임을 종이를 발라 가린 케이스와, 증정용임을 가리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망각한' 채 서점에 진열, 판매된 케이스. 문학과지성사는 규모있는 출판사로 공공기관 납품용 부수를 잘못 제작하는 엉성한 일처리를 할 것으로 생각하기 어렵고, 자음과모음은 사재기 논란을 빚은 전력이 있어 신뢰성이 낮다. ⓒ 프라임경제  
납품용임을 종이를 발라 가린 케이스와, 증정용임을 가리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망각한' 채 서점에 진열, 판매된 케이스. 문학과지성사는 규모있는 출판사로 공공기관 납품용 부수를 잘못 제작하는 엉성한 일처리를 할 것으로 생각하기 어렵고, 자음과모음은 사재기 논란을 빚은 전력이 있어 신뢰성이 낮다. ⓒ 프라임경제
유통의 납품 과정에서 진열, 판매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게 되는데, 북마스터 등까지 두고 있는 교보문고로서는 문제를 스크린해 짚어낼 역량이 다른 서점에 비해 높은 편이다. 속지의 스티커 작업이 된 의혹이 있는 서책까지는 몰라도, 정면에 증정용 스티커를 뻔히 붙인(그 위에 다시 얇은 가림막 표시) 채 매대에 진열되는 것을 인지했거나 인지할 수 있었던 사정이라고 보는 게 합당하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22일 발견된 사례는 더 심각하고 교보문고가 이런 문제 유통, 거래를 조직적으로 묵인하고 있는 것이라는 오해를 살 여지가 크다. '자음과모음' 2013년 봄호가 여러 권이 각각 증정용임을 가리려는 흰색 스티커의 형태나 방식이 다른 가운데 여러 권이 매대에 진열됐다.

아울러 그 중에는 그나마 눈속임용 표지를 붙이려는 노력조차 없이(작업 중 누락?) 공공연하게 증정용임이 정면에 드러난 상태로 판매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실제로 이를 계산대에 제시해 보니 아무런 이의없이 정가로 판매). 

결국 국민의 혈세로 마련되거나 좋은 뜻에 쾌척된 자금이 문화출판계와 문학에 피와 살이 되는 '종잣돈'으로 쓰이기 보다는 그야말로 '눈먼 돈'처럼 처리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현실이고, 이 같은 문제 소지가 있어 보이는 책이 납품될 경우 걸러내 거래를 거절할 역량이 있는 유력한 서점마저도 이를 방치해 문제를 키우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근래에 출판사가 자신들의 책을 (판매량 조작) 한 번 사들였다가 밑에 서점 도장이 찍힌 부분을 깎아내 다시 유통시킨 경우(같은 판본인데 조금 차이가 있다고 해 이른바 '키가 다른 책'이라 함) 등 많은 문제가 있었는데, 실제로 증정용 도서가 유통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사는 상황은 문제의 심각성이 더 하다. '키 다른 책' 꼼수를 애교에 가까운 행동으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악질적 행위인 증정용 도서 논란은 어떤 형태로든 관련 점검이 필요하며, 그런 노력의 마지막 수문장이 되어야 할 서점들 중에서는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의 대형서점 역할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