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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빚독촉, 일3회 제한? 차라리 절차요구권을…

임혜현 기자 기자  2013.06.21 10:5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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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가끔 정책구상이나 관련 아이디어를 접하고 기사를 쓰다 보면, 이런 생각을 짜내느라 얼마나 고심했을까 숙연해지기까지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도 하지만, 연구 끝에 내놓은 건 알겠는데 좀 의아하다 싶은 경우도 있다. 좀 다른 각도에서 나온 말이지만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줘서는 안 된다"던 어느 관료의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기자들을 청한 자리에서 빚독촉 관련 이야기가 나왔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과도한 채권 추심을 하지 못하도록 (채권 추심) 횟수 제한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여기까지는 신선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런데, 금감원이 추심업계나 여신금융협회 등과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채권 추심 업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채권 추심 횟수와 방법에 대한 상세한 규준을 정할 계획이라는 추가보도가 나오면서 의아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TF는 현재 채권별로 하루 세 번 정도로 추심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우선 자식한테 삼시세끼 공양을 챙겨받는 것도 아니고 독촉 전화를 받으라는 것이냐는 볼멘 소리는 일단 논외로 하자. 다만, 하루에 세 번이라는 것이 온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아침에 없는 돈이 독촉받는다고 점심엔 생기고 저녁엔 채권자 손에 넘어오는 게 아닌 바에야, 일정한 위력을 보이고 약간은 괴롭히는 걸 허용해 주겠다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 구상이다.

아울러 저 세 번을 놓고 실제로 받은(연결이 된) 횟수인지, 건 횟수인지 옥신각신까지 생기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현행법은 오후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 채권 추심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점을 함께 상기해 주길 바란다. 자영업이든 회사원이든 그야말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이 일정치 않은 사람이든 간에, 업무시간(경제 활동)으로 사용함이 마땅한 채권추심 가능 시간대에 꼬박꼬박 세 번 독촉을 대부분 소화하면서 남들과 같이 정상적으로 일을 하긴(돈을 벌긴) 어렵지 않겠는가?

하루 세 번을 실제의 다정한(?) 대화가 진행된 횟수만을 가리키는 것으로(발신을 한 횟수 기준이 아니라고) 본다면, 문제는 차라리 대법원 판례에 맡기는 게 낫겠다. 

2005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채권추심을 하는 대부업체 직원들이 빚을 독촉하기 위해 실제 19번만 채무자와 통화했다 하더라도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는 대법원이 설사 400여회의 발신 중에 실제로는 19차례 통화만 된 사례로, 이런 독촉으로 인한 업무방해 결과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업무를 방해받을 위험이 상존한다는 사실만으로 죄가 된다고 판단한 경우다.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주지 말라는 소리를 저 뉴스에 괜히 연상한 게 아니다. 심한 말이지만, 차라리 잘할 자신이 없으면 그냥 저런 형사적 구제책에 기대게끔 놔 두면 될 일인데, 뭔가 개악을 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닐까 싶다.

즉 오히려 "금감원이 독촉은 하루 3회는 해도 된단다"는 식으로 문제를 만들어줄 여지가 생기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아직 확정이 된 안이 아니므로, 앞으로 진행의 경과와 결과를 주시해 봐야 할 일이다.

참고로 우리나라 법원은 행정지도에 따르다 범법 문제가 생기는 경우 위법성 조각(죄는 형식적으로 범했으나 처벌을 하지 않는 조건 중 하나)으로 해석해 주는 데 인색한 것으로 안다. 금감원에서 아무리 저런 선을 그어놓고 그런 점에 따라 진행되었다 해도, 업무방해로 처벌받을 경우도 나올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슬픈 얘기지만, 우리나라의 제도나 관계 당국의 움직임은 빚을 받아내겠다고 악착같이 구는 채권자를 대리한 추심업자들의 잔머리를 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것 같다. 물론 선량한 대부업자나 채권추심업 종사자들도 많겠지만 금감원 등 여러 관련 기구에서 그런 사람들이나 회사만 상대로 제도를 하는 것도 아닌 바에는 좀 더 신중하고 고차원적 추진을 해서 앞뒤를 모두 재 보고 실시여부를 따져야 할 것 같다.

부연하자면, 대법원이 채무관계로 인한 분쟁을 없애기 위해 도입한 전자독촉시스템을 악용해 채권을 받아내 부당이득을 챙긴 불법 추심업자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는 소식이 불과 얼마 전 나왔다.

대구지검 서부지청은 소멸시효가 지난 물품대금 채권 등을 헐값에 사들인 뒤 대법원 전자독촉시스템을 악용, 수백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변호사법위반)로 불법 채권추심업자 등을 구속했다고 하니, 법망과 제도를 전문가 집단만큼이나 더 잘 파악하고 활용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 같은 상황에서는 오히려 지금 하루에 몇 번 독촉을 하게 할 건지 따질 게 아니고, 홍종학 민주당 의원이 2012년 제시한 바 있는 '절차 요구권' 도입 등을 다시 논의해 보는 게 차라리 낫지 않나 생각한다. 

채무자가 채권자 등의 강박적인 빚 독촉을 견딜 수 없어 변호사 등 채무자의 대리인을 선임해 대리인을 통해 채권자와의 연락을 취하고 싶은 경우, 채무자로 하여금 대리인을 선임할 수 있게 허락하고 채권자 등은 대리인에게만 채권의 추심에 관해 연락을 취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변호사들을 주로 이용하라고 만들어 놓은 제도마저 오히려 전문가 뺨치게 악용하는 추심업자들마저 활보하는 세상이니, 채무자에게도 변호사를 앞세워 문제의 소지가 있는 독촉에 대응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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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은 너무나 분량이 적고 구조도 단순해서 이런 제도들을 추가로 보충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루 세 번 정도를 검토한다니, 금감원의 구상은 너무 순진해서 슬프기까지 하다. 관계 법령을 확실히 정비해서 'Watch Dog' 기능을 금감원에 선물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