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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2.0 탐방 ➈] 의사-환자 평등한 눈높이… 대전민들레의료생협

진료방법 등 소통하되 소신진료 보장하는 우리동네 주치의 체제

임혜현·최민지 기자 기자  2013.06.20 17: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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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들레병원 외관. 지역민들과 소통하기 위한 열린 구조와 노력이 눈에 띈다. ⓒ 프라임경제  
민들레병원 외관. 지역민들과 소통하기 위한 열린 구조와 노력이 눈에 띈다. ⓒ 프라임경제
[프라임경제] 대전광역시에 자리잡은 민들레의료생활협동조합은 2002년에 출범한 이후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전국에서도 모범적인 의료생협에 속한다. 전국 각지에서 협동조합 모범 케이스로 견학을 올 정도로 구성원간 의견 조율과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운영이 모두 우수한 곳이다. 이런 민들레의료생협은 이제 의료생협에서 내부 결의를 통해 한 차례 더 탈바꿈을 결심한 상태다. 과거 대전 한밭레츠 구성원들이 우리에게도 믿을 만한 동네 의사, '주치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논에서 민들레의료생협이 탄생했듯, 이제 민들레생협은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을 신청, 당국의 인가를 기다리고 있다.

병원이라고 하면 위생적이면서도 딱딱한 분위기와 권위를 연상하기 쉽다. 하지만 대전의 민들레의료생협을 방문하면 이런 모습을 찾기 어렵다. 의료생협으로 설립하던 당시부터 원년 멤버로 일하고 있는 나준식 원장(전문의)의 진료실에 들어서면 벽에 붙은 엑스선 사진과 환자용 침상 외엔 병원이라는 분위기를 느끼기 어렵다. 벽에 빙 둘러 의대 졸업장, 의사면허 등 으리으리한 권위의 상징들을 붙여놓게 마련인데, 미술품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고 가운 대신 편한 차림으로 환자를 맞이하고 있다.

민주적 의사소통,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 즐거운 일터

"이제 법이 바뀌어서 (면허를) 게시해 놓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 점도 있다"며 권위 탈피 시도에 애써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나 원장은 그러면서도 "의사답지 않게 젊어 보인다고 해서 좀 신경쓰이긴 한다"고 말한다. 나 원장은 조합의 특징인 조합원의 발언권 문제에 대해서도 상당히 열린 태도를 갖고 있다. 진료권이나 진료방식 등을 모두 마음대로 결정하는 게 의사들이 오늘날까지 누려온 지위다. 이런 신과 같은 지위를 내려놓고 진료방식이나 앞으로 어떤 진료를 더 할지에 대해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나 원장뿐만 아니라 이 곳에 근무하는 의사들로서는 쉽지 않은 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 원장은 조합원과 함께 병원을 꾸려나가는 일이 "보람이 있고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민들레의료생협 출범 무렵부터 참여해 온 원년 멤버 나준식 원장(전문의)이 편안한 옷차림과 사무실 모습으로 환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 프라임경제  
민들레의료생협 출범 무렵부터 참여해 온 원년 멤버 나준식 원장(전문의)이 편안한 옷차림과 사무실 모습으로 환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 프라임경제

조병민 민들레의료생협 전무이사는 이 같은 탈권위 행보에 대해 "진료방식을 결정하는 문제 등에서 권위를 고수하는 의료인들로서는 견디기 어려울 수 있다. (2002년 이후) 그간 몇 명의 의사가 교체된 경우가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진료를 하는 방법이나 앞으로 어떤 진료를 새로 추진할지(예를 들어 치과에서 그간 안 하던 교정치료를 할 것인지)에 조합원들의 의견 수렴을 해야 하지만, 대신 병원에서 수익을 내기 위해 무리한 진료를 추가, 유도하는 등 과잉진료 없이 소신진료를 할 수 있게 보장하는 게 의료생협병원의 매력"이라고 소개했다. 또 의료인으로서 양심껏 가장 적합한 판단으로, 환자들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판단을 하고 이를 조합원들에게 납득시키면 보통 병원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조치들도 취할 수 있다는 옵션도 뿌듯한 점이다.

실제로 민들레의료생협에서는 브리지 진료 후 1년여 만에 병원을 다시 찾은 환자에게 거액의 임플란트 치료비를 병원 부담으로 재치료해준 경우도 있다. 이 케이스는 병원의 진료 책임인지 환자의 특이한 체질이나 관리 부실인지 모호한 경우였다. 보통 병원 같으면 환자의 관리 부실로 몰아서 재치료를 거절했을 사안이고, 관례상으로도 그렇다고 한다(의료 소송 등으로 가도 안 된다는 뜻). 하지만 이 문제를 놓고 고민하던 치과쪽에서는 조합원들에게 병원 부담으로 재치료를 해 주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격론 끝에 좁쌀만큼의 병원 책임이라도 있을 가능성이 있다면 다시 치료를 해주자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설명이다.

   권민정 이사(직원이사)는 민들레의료생협이 가진 민주적 구조가 좋다며 앞으로도 이 같은 모델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 프라임경제  
권민정 이사(직원이사)는 민들레의료생협이 가진 민주적 구조가 좋다며 앞으로도 이 같은 모델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 프라임경제
한편, 권민정 이사는 직장에 다니는 직원으로서의 입장에서도 조합, 사회적협동조합(전환추진)이 갖는 의미가 크고 보람있다고 말한다. 서울의 다른 직장에서도 근무하다 낙향, 이 곳에 자리잡은 뒤 만족하며 오래 일하고 있다는 권 이사는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윗분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민주적 분위기"라며 "'그래, 해 봐'하는 분위기 속에서 일을 추진할 수 있는 점이 좋다"고 말했다. 아울러 사회적으로 힘이 되는 일을 한다는 보람감도 장점이다.

이 병원은 현재 양방병원은 물론, 한방병원과 치과 등을 거느리고 있다. 법동 뿐만 아니라 대전의 핫플레이스인 둔산에도 마찬가지로 양·한방과 치과를 개설하는 데 성공했다.

지역사회에서 그만큼 인정받고 또 수요도 많다는 뜻이다. 이런 성공 덕에 의료생협들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협동조합이나 사회적협동조합을 준비하는 시민들에게도 벤치마킹을 할 만한 곳으로 알려져 견학단이 수시로 찾고 있다. 권 이사는 상반기 중에만 해도 20~30건 정도 조합 관련 견학을 받고 소개를 했다고 말했다. 

한밭레츠에서 시작, 지금도 공동체 화폐 적극 활용

권 이사 같은 경우는 민들레의료생협 산하 농경사업단에 들어와 인연을 맺은 케이스다. 이후 의료생협 사무를 보게 된 것. 농경사업단을 꾸리고 있는 점에서 보듯, 민들레의료생협은 원래 한밭레츠에서 시작한 뒤 발전해 온 태생적 DNA 덕에 다른 여러 협력과 연대에 관심이 많다.

한밭레츠는 지역공동체 화폐를 쓰는 모임으로, 자원봉사 등 품앗이를 통해 공동체 정신을 함양하고 서로의 재능을 나누자는 운동으로 이해하면 쉽다. 이런 한밭레츠 구성원간에 믿을 수 있는 주치의가 있는 병원을 만들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탄생한 의료생협이 민들레인 만큼, 이들은 농경사업단을 통해 농촌지역사회와 조합원간 먹거리 거래 등 여러 시도를 성사시킨 바 있다.

조 전무이사는 "우리 민들레의료생협의 경우 활동가들이 활동비 중 일부를 공동체화폐인 '두루'로 받기도 한다"면서 "조합원들의 경우도 두루로 일부 진료비를 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조 전무이사는 두루의 장점에 대해 마이너스인 상태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면서 예를 들어 저소득층이 지금 당장 돈이 좀 모자라면 현금에 두루를 통해 한약을 지을 수 있다며 이 경우 마이너스된 두루의 부분은 자기가 어떤 봉사를 하거나 품앗이를 해 벌어서 나중에 메울 수 있는 게 매력이라고 말했다.
   민들레치과 내부의 시설 전경(대전 법동). 조합원들의 의견을 반영, 조만간 교정치료도 개설할 것이라고 한다. ⓒ 프라임경제  
민들레치과 내부의 시설 전경(대전 법동). 조합원들의 의견을 반영, 조만간 교정치료도 개설할 것이라고 한다. ⓒ 프라임경제

이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민들레의료생협은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을 결의, 추진하고 있는 만큼, 의료서비스를 통한 사회적 기여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해고 노동자들의 경우 경제적 부담으로 건강을 잘 챙기기 어려운데 검진 지원을 해 준다든지, 지자체에서 의뢰한 소외계층의 경우 치과 치료 같은 경우 검진 도움을 주는 등 활동을 하고 있다. 아이쿱생협에서 지역사회기금을 전달받은 것으로 여러 진료 지원 등을 하며 예방 활동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권 이사는 "예방을 하면 (당장은 병원 손님이 줄어들지 몰라도) 건강한 문화가 형성되지 않는가"라고 이 같은 일반병원과 다른 행보를 보이는 철학을 설명했다.

이런 활동을 하면서도 큰 경제적 어려움 없이 운영이 될 정도로 건강한 조직을 갖고 있다. 흔히 의료생협에 대해 오해하는 것이 조합원들의 출자금으로 의사들이나 직원들 월급을 주냐는 것인데, 이에 대한 민들레의료생협의 설명은 병원을 운영해 이곳을 찾는 조합원 환자나 일반 환자의 진료금 수익으로 운영하는 것이라고 한다.
   민들레한의원의 탕약실. 가족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정성들여 약을 달인다. 이 곳에서는 친환경 재배 한약재를 사용한다. ⓒ 프라임경제  
민들레한의원의 탕약실. 가족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정성들여 약을 달인다. 이 곳에서는 친환경 재배 한약재를 사용한다. ⓒ 프라임경제

조합의 출자금은 병원의 시설물, 특히 각종 진료장비 등을 구비, 구축하는 종잣돈으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남는 수익으로 위의 각종 사회적 기여를 추진하는 게 가능하다고 하니, 지역에서 좋은 일을 하는 곳으로서만이 아니라 병원 그 자체로서도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방증이겠다.

무한확장보다 지역에 밀착한 주치의 병원으로 남고파

이런 탄탄한 기반을 마련하면 여러 곳으로 뻗어나가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병원을 둔산으로 확장한 것처럼 더 많은 곳에, 특히 대전권 이외의 영역으로도 더 양질의 의료 시스템을 선보이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의료생협에서 협동조합이나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이 마무리되면 특정 지역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해석이다. 일부 치과 등이 브랜드화해 퍼진 네트워크 병원 같이 발전할 가능성도 (논란이 있겠지만) 전혀 없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이런 점에 대해서는 민들레의료생협 관계자들은 선을 긋는 모양새다.

조 전무이사나 권 이사 모두 조합원들의 의사 결정에 의해 방향이 결정되는 것이라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면서도 무한 확장은 일단 지향점이 아니라는 뜻을 시사했다. 조 전무이사는 탄생 당시부터 있으나 없으나 한 병원 한,두개를 더 늘리는 것보다 진정으로 의사와 지역주민들이 소통할 수 있는 병원을 만들고자 한 것이라며 초심을 늘 유지할 뜻임을 밝혔다. 권 이사는 다른 곳으로 뻗어나가는 등 광역 확장보다도 "구마다 하나씩 믿고 찾을 수 있는 병원을 만들고 싶다"고 개인적인 꿈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