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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컷] "방독면이 필요해" 도심 속 화생방 훈련?

이보배 기자 기자  2013.06.20 14: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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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최근 전국적인 금연운동 열풍으로 흡연자들의 설 곳이 좁아졌습니다. 발길 닿는 곳마다 금연 스티커가 붙어 있어 담배 한대 태우려면 흡연 가능한 곳을 찾아 원정을 다녀야 할 정도입니다. 호프집은 물론 PC방도 흡연자를 꺼린다니 말 다 했지요.       

지난 주말 고향을 찾았던 필자는 늦은 밤이 되서야 서울 강남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강남터미널 앞 광장 아시죠? 약속이라도 한 듯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태우는 흡연자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 날 따라 광장에서 담배를 태우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더라고요. 무슨 일인지 싶어 광장을 한 바퀴 둘러봤습니다. 광장 구석 쪽에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흡연실이 설치됐더군요.

    
"담배가 아무리 좋아도 저긴 좀 그래" 서울 강남터미널 앞 광장에 설치된 흡연실. 뿌연 연기로 가득찬 흡연실에 흡연자 조차 들어가길 꺼리고 있다. = 이보배 기자

사진 상으론 잘 보이지 않지만 흡연실은 뿌연 연기로 가득했고, 문이 열린 채 흡연실 안팎으로 담배를 태우는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흡연실 안쪽에는 흡연실 성능을 체크 중이니 문을 꼭 닫아달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습니다. 담배연기가 제대로 빠지지 않는 지 흡연실 안쪽의 사람들은 연거푸 문을 열어댔고, 흡연자들조차 연기가 뿌연 흡연실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는 상황이었죠.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필자이지만 흡사 화생방 훈련장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 두 분은 흡연실 바깥에서 담배를 태우시며 "흡연자 위한답시고 세금 받아서 이런 것 만들어놓고 저 안에서 담배 피우면 먼저 죽겠고만…"이라고 말끝을 흐렸습니다.

정부의 금연정책을 따르지 않자니 벌금을 물게 되고 따르자니 아직은 상황이 녹록치 않은 모양입니다. 환기시설이 제대로 갖춰졌다면 흡연자들도 불평불만 없이 흡연실을 이용 했을 텐데 말입니다.

화생방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최근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병영체험을 하는 모습이 전파를 탔습니다. 군대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화생방 훈련입니다. 최근에는 군 안팎으로 화생방 훈련의 가혹성(?)을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방독면이 있는데 굳이 일부러 이를 벗어가며 고통을 느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지요.

화생방 훈련은 생화학무기 공격을 받았을 경우 조금이라도 더 버틸 수 있도록, 또 싸우다가 방독면이 깨질 경우, 방독면을 챙기지 못한 경우, 방독면을 재빨리 쓰지 못했을 경우 등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최근 군에서도 가스의 위험으로부터 방독면의 성능이나 올바른 착용법을 인식시키기 위한 훈련으로 구성하고, 직접노출을 금하도록 규정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더군요.

2011년 국방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대한민국 군인이 사용하는 방독면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왔던 것이죠. 국방부와 방위사업청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군용 방독면 검사 결과를 보면 군이 운용 중인 방독면 80개 중 부적격 판정을 받은 제품은 52개(65%)에 달했습니다. 예비품으로 운용 중인 방독면 60개 중에 26개(43%)는 불량품이었지요. 또 화학작용탐지 장비인 K-CAM2도 실험 결과 30개 중 불량이 21개(70%)나 나왔습니다.

국군장병들이 눈물, 콧물 쏟아가며 고생했던 화생방 훈련이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는 것과 다름없는 결과입니다. 전쟁 상황에서 신속 정확하게 방독면을 쓴다고 해도 10에 6.5명은 부실한 방독면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요.

강남터미널 흡연실도 다르지 않아보였습니다.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사실은 흡연자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금연정책에 군말 없이 따르고 있는 것이지요. 최소한 비흡연자에게 피해가 돌아가서는 안 되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내 목숨이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기왕지사 서로 좋자고 진행하는 금연정책이라면 흡연자들도 쾌적한 환경에서 담배를 태울 권리가 있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