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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민중의 지팡이' 바로 서야하는 이유

이보배 기자 기자  2013.06.17 15: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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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국정원 사건' 축소·은폐 수사를 놓고 일선 경찰관들이 직접 사과하고 나섰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간에서 쏟아지는 경찰관들의 자발적 사과에 네티즌 역시 호응하고 있다.

경찰관들의 사과 릴레이는 한 경찰서 직원이 만든 것으로 알려진 '사과 포스터'에서 비롯됐다. 사과 그림이 붙은 포스터에는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지 못하여 수사의 공정성을 해쳤던 점 △조직 내 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하여 부당한 명령이 가능한 조직으로 만든 점 △한 사람의 경찰로서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침묵했던 점 등을 사과하는 내용이 담겼다.

황정인 서울 강남경찰서 수사과장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경찰 정복을 입고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경찰은! 거듭나야 합니다'라고 적은 손팻말을 든 사진을 올렸고, 또 다른 경찰관 역시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경찰은 굴종을 끊고 올바른 주체성을 찾아야 합니다'라는 문구를 들고 촬영한 사진을 게재했다.

일선 경찰관들의 자진 사과 움직임이 반가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작 사과를 해야 할 경찰관들은 침묵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지난 15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979 소년범과 약촌 오거리의 진실'편이 전파를 탔다. 2000년 발생한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40대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집중 조명했다. 살인사건의 진범을 놓고 전북 익산경찰서가 목격자였던 15세 소년을 강압, 허위 자백을 받아낸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것.

방송에 따르면 당시 사건의 목격자였던 15세 소년은 사건 발생 3일 만에 가해자로 둔갑했다. 3년 뒤 진범이 검거됐음에도 불구하고 진범의 엇갈린 진술에 경찰과 검찰은 서둘러 사건을 종결 시켰고, 목격자 소년은 1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방송 후 익산경찰서 홈페이지는 수많은 네티즌의 항의글로 도배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산경찰서 관계자들은 "시간이 오래 지나 기억나지 않는다", "담당 사건이 아니어서 잘 모르겠다"고 일관해 시청자들의 공분을 샀다.

주말 동안 논란이 확산되자 익산경찰서는 급하게 "수사시간의 협박 및 폭력이 있었다는 당시 피의자의 주장 및 방송사의 수사미진에 대한 이의에 대해 엄격하고 충실하게 수사를 재검토하겠다"는 공식입장을 내놨다. 

이어 "한 점 의혹이 없도록 그 사실관계를 밝히도록 하겠다"면서 "익산경찰서는 억울한 사법적 피해의 발생 가능성에 대해 최선을 다해 조치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덧붙였다.

재수사를 하고난 후에야 명확한 사실관계가 드러나는 것은 분명하지만 사과의 목소리 없는 공식 입장이 아쉽다. 앞서 '국정원 사건'과 관련 자성의 목소리를 낸 경찰관들은 어땠나. 자신이 직접 담당한 사건은 아니었지만 경찰 내부의 부실을 인정, 이름과 얼굴을 내걸고 사과 입장을 밝혀 그 용기에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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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공중파 방송을 통해 논란을 일으킨 사실 만으로도 사과의 이유는 분명하지 않을까. 15세 청소년이 인생의 가장 빛나는 10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사건의 진실 여부는 재수사 결과에 달렸지만 '민중의 지팡이'가 '공공의 적'이 되는 상황은 부디 오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