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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농협금융 관전, '殺氣홍문연'보다 '항백'찾아야

임혜현 기자 기자  2013.06.17 12:5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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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중국 역사상 유명하고 또 의미가 깊은 술자리를 꼽으라면 무엇이 있을까?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 방중 당시의 '마오타이 주연'이었을까? 그때까지만 해도 지방의 술이었던 마오타이가 국제 무대에서 외빈 건배주로 이름을 높이게 됐던 점은 부수적인 이야깃거리고 실상 '핑퐁 외교'가 본격화돼 냉전의 변곡점이 됐다. 이런 세계 역사를 주무른 술자리만은 못하나, 드라마틱하기로는 초나라와 한나라의 지혜 겨루기였던 '홍문연(鴻門宴)'에 표를 던지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2000년이 넘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 왔고, 최근에는 영화까지 만들어졌다(국내에서는 그 이름이 바뀌어 '楚漢志-천하대전'으로 개봉). 홍문연은 항우가 유방을 죽이기 위해 마련한 술자리였다. 유방으로선 초대에 응하지 않으면 항우에게 공격을 할 명분을 줄 상황이고 가도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그런데, 홍문연을 기록한 '사기'나 '초한지'를 보면 항우의 숙부 중 하나였던 항백이 이 세기의 술자리에서 '키맨'격이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항백은 항우가 유방을 술자리에서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사전에 흘려 유방 진영의 마음의 준비와 대비를 가능케 했고, 초나라 지략가 범증이 항장을 시켜 시도한 공격(검무를 추는 척하다가 유방을 찌르라는) 계획도 수포로 돌아가게 했다. 항백은 자신이 직접 항장의 검무를 상대함으로써 범증의 의도를 무산시키고 유방의 목숨을 지킨다.
 
항우의 가까운 피붙이 항백이 왜 이렇게까지 했는지는 흥미롭다. 유방의 큰 그릇을 아껴 살려줬다고도 하고, 과거 유방의 참모인 장량에게 목숨을 빚진 것을 이렇게 해서 갚았다는 해석도 있다. 여러 측면이 합쳐져 일어난 일이었을 테니, 개개인의 사사로운 관계가 천하패권의 방향을 바꾸는 순간이었다는 식으로 보는 후자보다는 전자의 식견 이야기로 정리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오늘날 농협을 둘러싸고 여러 이야깃거리가 나돈다. 최원병 농협 중앙회장의 전횡이 심각하다는 비판부터, 농협금융의 독립성 보장을 통한 도약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이 와중에 또다시 관료 출신이 온 점에 대해 농협중앙회에 대한 견제를 정권이 원하는 게 아니냐는 호사가들의 이야기도 들린다. 농협중앙회 대 농협금융간 관계가 예전같지는 않을 것이라는 짐작을 공통으로 깔고 있거나 그래야 한다는 기대를 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문제를 너무 홍문연을 바라보듯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은 이야기를 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된다. 물론 중앙회나 금융의 회장들, 또 그외 농협의 여러 주요 보직에 앉은 고위급  인사들 모두 사람이다 보니 일정하게 감정적인 희노애락이 없을 수 없고 인간적 단점도 없을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사람이 모여 만든 또 하나의 사회인 만큼, 내부 정치라는 개념이 없을 수 없고 그 와중에 일종의 힘겨루기 역시 경우에 따라선 존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현재의 문제를 푸는 것이 신·경분리의 해묵은 과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점, 오랜 법적 지위의 특수성과 전국의 농민과 축산인 조합원을 모두 챙겨야 한다는 무거운 과제에 눌려 시스템을 그때그때 스마트하게 바꾸지 못해 관행에 기대고 중앙회로 권한을 집중하다 보니 문제가 된 점 등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복잡하고 얽힌 농협 조직을 바라보고 사람들을 다루는 기사에서 일정한 '해석론'은 필요하더라도,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구중궁궐' 바라보듯 농협을 애초 백안시하면서 접근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일정 부분은 부득이하게 우려와 비판을 가하더라도, 농협의 중앙회와 금융 파트간 관계를 홍문연처럼만 봐서도 안 될 것이다.

또 사족 같지만, 농협 구성원들 스스로가 그렇게 실제로 홍문연 관계로 이번 문제가 흘러가게 해서도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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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지의 국내 금융그룹들과 이제 막 체질개선에 나서는 농협금융이 경쟁을 펼칠 국면, 그리고 그 준비의 와중은 상당히 재미있다. 물론 홍문연식의 관전 포인트도 사람들의 시선을 당긴다는 것은 자명하다. 다만, 농협의 조직 전체를 사랑하고 지금 이 와중에 앞으로 새 시대 농협의 각 파트들을 끌고 갈 그릇들이 누구인지를 큰 시각에서 볼 항백 같은 이들이 누군지도 중요하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목소리를 낼 것인지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일 것이다. 지금의 소용돌이 속에서 농협의 항백은 누가 되는가에 따라 농협 전체의 미래 또한 좌우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