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회사원 A양은 아파트 관리비 처리시 혜택을 받기 위해 기업은행에서 아파트카드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근래 남자친구가 생긴 A양은 어딜 가도 직접 돈 낼 일이 줄어들어 사용총액이 대수롭지 않은데. 그러던 어느날, 기업은행에서 걸려온 묘한 전화를 받게 된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IBK아파트카드'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아파트카드는 이러저러한 장점이 있고요…혹시 다른 카드를 원하시면 ***카드로 교체발급을 추천드립니다, 굳이 원하지 않으시면 안 바꾸셔도 되고요…그럼 아파트카드 많은 이용 바랍니다" 보통 카드나 은행쪽 전화는 새 상품을 만들라든지, 이전보다 혜택이 줄어든 상품을 묘하게 포장해 끈질긴 판촉을 하는데, 이 전화는 그렇지가 않았다. 기업은행발 전화는 대체 정체가 무엇일까?
카드를 바라보는 은행권의 시선이 복잡하다. 특히 일명 은행계 카드사인 외환은행, 기업은행 등은 마케팅(판촉) 확장을 크게 늘리기 어려운 시장 상황 속에서 일정한 파이를 차지하기 위한 두뇌게임을 전업계 카드보다 더 치열하게 진행할 필요에 직면해 있다.
◆신규가입 더 이상 안 받는 '애물단지' 아파트카드, 왜 굳이 많이 쓰라고 하나요?
위의 사례에서 언급된 아파트카드는 한때 여러 카드사에서 관심을 갖고 시장 진출을 꾀하던 아이템이다. 기업은행에서 내놓은 상품이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으면서 후발주자들의 추격에도 재미를 본 영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제공하는 혜택에 비해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우려를 샀고 현재는 신규가입을 더 이상 받지 않고 기가입자만 유지시키는 쪽으로 대부분의 회사들이 정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A양의 경우, 상담원이 굳이 이 카드 대신 다른 카드를 쓰라고 집요하게 권유하지도 않았다는 점이 특기할 만 하다. 그냥 많은 이용을 부탁드린다는 것인데, 이는 일반적인 고객 독려 범주로 볼 수 있다. 기업은행의 입장에서 오히려 휴면카드 상태에 들어가게 뒀다가 이를 없애도록 하는 수순을 밟는 게 낫지 않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복합된 것으로 보인다. 첫째, 금융감독원은 지난 3월 카드 개인회원 약관을 고치기로 했다. 고객이 휴면카드의 해지를 요청하지 않아도 별다른 의사 표시가 없으면 1개월간 사용을 정지하고 3개월 후에 자동 해지하도록 한다는 것.
그런데 전업계든 은행계든 여신업체 입장에서는 고객 이탈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휴면카드 해지 고지 규정을 이용해 신규 회원 가입 마케팅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휴면카드 해지를 전화로 알리면서, 연회비 면제나 부가혜택, 사은품 제공 등을 미끼로 내세워 신규로 카드 가입을 하게 유도하는 것이다.
물론 관련기관도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실태 조사와 더불어 카드사들이 규정을 준수하는지를 집중적으로 점검할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휴면카드로 빠질 상황이 코 앞에 다가올 때까지 고객을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 미리 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
두번째 업계의 걸림돌은 금융위원회가 지난 5월 카드사들이 마케팅에 과도한 비용을 쓰지 않도록 간접 규제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업계에 전달한 부분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리미리 고객들에게 사용을 독려하는 정도의(타카드로의 교체발급이나 보험 등 판매에 이용하는 대신) 판촉만 해둘 고객층도 부각되게 되고 그 중요성도 더 높아진다는 풀이가 나오는 것.
◆외환카드, 외환은행 통장으로 결제계좌 정하면 가입 차회년도 연회비 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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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촉 관련 규제가 심해지는 상황에 저수익예금 관련 고민도 겹쳐 은행권이 카드시장을 바라보며 분주히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지나친 논란을 빚지 않으면서도 실리를 챙기는 아이디어 짜내기가 진행 중이다. ⓒ 프라임경제 |
은행계 카드인 외환카드는 외환은행 지점에 카드 관련 고객들이 내방하는 경우, 결제계좌 변경을 권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카드 분실신고 해지를 위해 가까운 외환은행 지점을 찾았다. B씨의 요청을 처리한 행원은 외환은행으로 결제계좌가 정해져 있지 않은 기록을 알고는 외환은행쪽으로 결제계좌 변경을 하면 가입 차회년도의 연회비가 면제되는 혜택이 있다고 권유했다.
이렇게 연회비를 손해보면서까지 결제계좌를 자행으로 끌어들이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은행권이 순이자마진(NIM) 고심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은행계에서 '저원가성 예금'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점이 바로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저원가성 예금은 비싼 이자를 주지 않고도 확보할 수 있는 자금을 말한다. 예를 들어, 정기예금은 일정한 기간 목돈을 은행에서 사용할 수 있으니 도움이 될 것 같지만 이자를 많이 주니 일반시민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수익을 짜내기 힘들다. 오히려, 잔액이 변변찮은 보통(일반)예금이라도 많이 유치해 놓으면 낮은 이자만 줘도 되니 '규모의 경제' 실현으로 오히려 큰 힘을 낼 수 있다.
즉 저원가성예금은 은행으로서는 조달비용이 낮고 안정적인 수신을 유치할 수 있어서 중요하게 받아들여진다.
외환은행 및 외환카드의 경우는 특히 다른 문제가 하나 더 겹친다. 바로 2X카드 등 고객들의 눈길을 끌어당겨 많은 가입을 이뤄낸 상품의 연계성(시너지효과)을 만들 필요가 높은 것. 이는 좋은 아이디어가 관심을 모은 것이기도 하지만, 외환은행이 하나금융그룹에 피인수되는 과정에서 빚어진 노조 시위 등에서 시민들이 보여준 동정표가 마침 그 이후에 나온 상품들에 전이된 것임을 부인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그런 와중에 중소기업 대출 금리 임의조작 논란 등으로 이미지 손상을 입었고, 저금리와 저수익이 기본이 되는 뉴노멀 상황이 왔으니 신규영업을 새로 또 치고 나가는 건 쉽지 않다. 그러므로 일단 상품에 가입하고 또 이를 유지하는 고객들의 '로열티'를 최대한 높이는 전술을 구사하지 않을 수 없다.
부연하자면, 저원가성 예금 비중이 높은 것은 장점이나 금리 하락 시 NIM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하니, 이 같은 지나치지 않은 선에서의 카드-예금 연동 마케팅이 언제 '은근슬쩍 조용히' 사라지는지를 본다면 외환은행에서 조만간 금리가 더 내려갈 때로 판단하는 것으로 넘겨짚을 수도 있겠다.
◆하나금융, 캐시백 받으려면…하나은행 통장을?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하나SK카드가 지난 2월 일부 상품의 캐시백 입금 계좌를 신용카드 결제계좌에서 체크카드 연결계좌로 변경하는 안을 추진하고 나선 점도 이런 금융권 동향의 일종으로 볼 수도 있다.
캐시백은 서비스 이용 실적에 따라 일정금액의 현금을 고객에게 돌려주는 것. 하나SK카드는 신용카드와 체크카드를 중복으로 소지한 고객의 경우, 신용카드 결제용 계좌로 체크카드의 캐시백을 입금해 왔다.
즉 신용카드 결제계좌가 하나은행이 아닌 타은행인 경우에도 타은행 계좌로 캐시백을 받을 수 있었다. 이를 단절하고 하나은행쪽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구상을 천명한 것인데, '몰아주기 논란'에도 이 같은 연계 영업을 하려고 할 정도로 금융권이 시너지효과 창출과 충성도 높이기에 골몰하고 있는 점, 각종 아이디어 등장으로 이어지는 대목은 흥미를 자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