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금융권이 수장(CEO) 리스크에서 벗어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임원진 인사와 조직 개편이라는 여진으로 시선을 모으고 있다. KB금융그룹이 임영록 회장의 출근 저지 소란으로 진통을 겪고 있고, 우리금융그룹은 이순우 회장 취임 직후 인선을 통해 조직을 슬림화하고 고위직들을 대거 줄였다. NH농협금융 역시 관료 출신 수장의 취임으로 '낙하산 논란'이 불붙었고, 이후 계열사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문제 등 조직 운영 관련 논란이 새삼 화두로 떠올랐다.
◆결론은 매트릭스와 옥상옥 지주제 폐단 제어?
이 같은 사정은 금융지주제의 안착 문제와 한국형 지주모델의 구축, 법적 책임에 걸맞는 경영권 행사 등의 이슈와 연결된다. 새로 사령탑에 오른 특정 인물의 '친정 체제' 등으로 풀이하기에는 우리금융 민영화 문제, 농협금융의 특수성 등 이슈가 지나치게 복잡해져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금융지주 시스템은 도입 당시부터 옥상옥 논란에 휩싸여 왔다. 이 문제는 비단 의사 결정의 비효율성 논의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주 회장이라는 직함을 만들고 이를 활용해 금융그룹 전반을 지배하면서도 실제로 경영 책임을 지는 문제는 법적으로 실질 권한보다 훨씬 적게 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는 점이다. 즉 계열사들의 노조 활동과 지주제에서의 경영 지휘 체계간 협상 채널의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번에 임 KB금융 사장이 노조 협상 파트너는 은행장이라고 지적한 점은 이런 상황을 정확히 축소해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실상 KB금융의 주요 부분을 국민은행에서 맡는다는 논리, 즉 선봉을 맡아 지주(그룹)의 문제를 해결하는 소통의 길목을 장악하는 대변인적 역할을 했던 현실이 어디까지나 관행일 뿐이라는 공격인 셈이다.
더욱이 우리금융 같은 경우 하나금융그룹에서 선도적으로 시행한 바 있는 매트릭스 체계를 도입하기로 해 과거 이팔성 전 회장 시절 잡음을 빚은 바 있다. 지주사의 권한 강화 논란과 대동소이한 문제점을 매트릭스 역시 안고 있다는 해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KB금융 뿐만 아니라 각 금융그룹들이 인사 문제에 있어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거나 (반강제적인) 수술이 추진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
◆이순우 회장의 중앙조직 슬림화, 시사점은?
우선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금융은 일단 매트릭스 문제를 백지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회장의 권한 강화 도구 논란을 빚으면서까지 이를 추진할 필요가 크지 않고 무엇보다 이 신임 회장이 민영화 추진 최적론을 꺼내들면서 임기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입장까지 보인 사정에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다.
이 회장의 이번 등장 이후 우리금융과 주요 계열사는 큰 인사 파장에 휩싸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우선 14일 저녁에 전해진 인사 소식만 해도 지배구조 개선 및 조직 슬림화 등이 구호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하는 '강도가 높은 경영혁신을 위한 인사 및 조직개편' 그 자체였다는 평가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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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우 우리금융 신임 회장의 취임식 풍경. 이 회장은 지주조직 슬림화를 시도, 전임자인 '이팔성 체제' 색채 지우기와 민영화 추진의 협력이라는 명분을 쥐었다. 한편 이번 개편에도 불구하고 정보의 마지막 길목만큼은 놓지 않고 오히려 강화할 여지를 둬 주목된다는 풀이도 제기된다. ⓒ 우리금융그룹 |
다만, 우리금융지주가 그동안 여러 부서에 산재해 있던 전략기획 기능과 경영지원 기능을 정비하려는 시도는 흥미롭다. 자회사에 대한 지원 능력 및 경영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것이 액면가지만, '시너지추진부'에서 경영혁신업무를 통합 운영, 계열사 간 시너지 강화와 강도 높은 경영 혁신을 동시에 추진해 나가기로 하는 등 이 이슈들을 잘 취합해 보면 지주에서 많은 것을 덜어내되, 중앙전산처리장치(CPU)만큼은 놓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CPU를 그대로 갖고 있는 한, 혹은 불필요한 다른 기능을 들어내고 이관하더라도 이 영역만큼은 강화한다면 회장실의 실권은 그렇게 당장 약해진다고 보기 힘들다.
적어도 민영화 추진 중인 그룹의 사정을 모두 챙겨 최적화 조건을 관리한다는 명분도 이 회장 손에 있는 만큼, 현재 나와 있는 당국의 로드맵(주요 계열사 분할매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실력을 행사하고 정보를 쥐는 역할을 할 여지도 없지 않다. 과거 주요재벌들의 기획조정실(혹은 비서실)이 IMF 관리 체제 하에서 해체되면서 구조조정본부가 새로 탄생했지만 대부분 몇 년 못가 '무늬만 바뀐 옛 기조실'로 돌아가거나 더 강화된 호위기구로 변화된 전례가 있다는 것이다.
◆농협, 어차피 있으나 마나한 권한이라면…
농협금융의 인사 문제는 드라마틱하게 메스를 여러 곳 들이대는 대수술보다는 중앙회와의 일전을 앞둔 상황에서 기반 다지기의 도구로 쓸 수 있다는 두뇌게임의 성격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고 할 수 있다. 계열사 인사 문제가 더 큰 그림, 전체적인 그림에서 '포석'이라는 문제로 작용하는 상황이다.
더욱이 농협금융의 인사 문제는 정확히 표현하면 권한 이양이라기 보다는 노조와의 협력 문제로 나타날 가능성이 더 높아보인다.
농협금융이 임종룡 신임 회장을 맞아들인 가운데, 우선 가장 먼저 초점이 맞춰진 부분은 낙하산 인사론이라고 할 수 있다. 관료 출신이 부임한 데 상당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구성원들이 없지 않았고 외부의 비판도 만만찮았다.
하지만 임 회장은 노조의 의견을 '경청'하고 경영자율성 보장을 한다는 대전제에는 '공감'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전임 회장 임기 초와는 다소 다른 스탠스를 보이는 것으로 해석된다. 우선 과거의 예를 보면, 신동규 전 농협금융 회장은 취임 초 노조 때문에 며칠 만에 출근에 성공하는 상황을 겪었다.
임 회장과 신 전 회장 모두 노조의 강력한 요구에 직면하기는 했지만, 취임식 직후 기자들과 만나 "어제 (취임식에 앞서) 노조에서 1시간에 걸친 인사청문회를 한 것 아니냐. (노조가 자신의) 진정성을 좀 이해한 것 같다"는 발언까지 한 신 전 회장의 상황과 임 회장의 취임 직후 국면은 좀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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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금융이 새 수장을 맞이한 가운데 농협중앙회와 노조의 압력 속에서 어떤 줄타기를 할지 주목된다. 현재로서는 농협금융은 같은 관료 출신이지만 전임 회장에 비해 훨씬 더 복잡하고 신중한 수를 두는 신임 사령관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 농협은행 |
신 전 회장은 실제로 취임사에서부터 노조의 요구를 대폭 수용하는 것을 확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지만, 임 회장의 경우 취임사나 내정 직후 발언 등을 모두 종합하면, '관치 우려 불식', '현재의 문제점 해결을 위한 협력' 등으로 방점이 찍히는 양상이다. 임 회장은 관치 우려에 대해 실력(실적)으로 불식시키겠다며 사실상 예봉을 피해가는 모습을 보였고, 노조의 여러 요구에 대해서도 "부당한 외부의 경영간섭은 단호히 대처하여 계열사의 자율적인 경영을 보장하되, 상호 협력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나갈 것(취임사 발언)"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원칙적인 확인 차원의 발언이 두드러지게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막후에서 노조에 엄청난 이면 계약을 확약하지 않은 한, 현재의 발언만 놓고 본다면 외교적 수사(레토릭)에 오히려 가깝다는 풀이도 그래서 나온다.
무엇보다 임 회장으로서는 계열사의 자율성을 보장하거나 사업구조 개편 이후의 문제점 해결 같은 노조의 요청을 그대로 수용하기에는 애매한 입지 상황이 걸린다.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의 전횡 논란까지 있는 현재의 지배 시스템에서 임 회장이 강성 모드로 밀어붙이거나 약속할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차라리 있으나 마나한 혹은 원래 자기 것이 아닌 카드라면, 이이제이 차원에서 이를 노조에 던져줄 수 있느냐는 이슈인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럴 필요도 없고 현재의 농협금융 사령관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최 중앙회장이 임 회장 취임식에 즈음한 10일 주요 계열사(손자회사) 세부 경영에까지 간섭하는 듯한 고압적 태도를 보이는 등 기존의 힘을 내려놓을 뜻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징후가 탐지됐다는 점에서 보는 것처럼(카드 실적 추진 문제와 관련, 임원에 대한 반말투 의사진행) 복잡한 상황에서 먼저 패를 꺼내보이거나 다른 수를 두기 위해 무리한 합종연횡을 하는 게 꼭 필요하진 않다. 이런 상황은 임 회장에게 일종의 '꽃놀이패'를 만들어 주게 된다.
어차피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중앙회 대 농협금융의 충돌은 언젠가 닥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정권 차원에서 간접적 압박을 넣거나 이런 가능성을 예상한 중앙회쪽에서 움츠리는 경우도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이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임 회장이 신 전 회장처럼 노조에 지나치게 낮은 자세를 보이는 점도 문제가 된다(자승자박). 현재처럼 경청의 태도를 유지하되, 필요 이상으로 추가 기우는 행동을 미리 할 필요가 없다.
중앙회와의 조율을 먼저 해야 한다는 '명분'은 이미 충분하고, 최 회장이 이를 중간에 오히려 강화해 주는 악수를 두는 등 국면은 유리하게 흐르고 있다.
인사라는 중요한 문제를 스스로 내려놓거나 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오히려 임 회장의 경우 취임사에서 수익성 문제 등을 거론하면서 외부의 간섭(중앙회 등을 겨냥) 못지 않게 농협금융 내부의 자율적인 다이어트 문제까지도 제시하는 등 적당한 긴장을 유발해 일정한 거리두기를 시작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지금과 같은 정도 이상의 긴장에서 더 나가거나 이를 느슨하게 하는 것 모두 임 회장으로서는 스스로 힘든 길을 가는 상황이 된다. 농협의 인사 문제는 오직 노조와 원만히 지낸다고 하모니를 연주할 수 없다. 중앙회와도 완전히 척을 질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지난 3월 열린 지주회장 취임 1주년 기념간담회에서 신 전 회장은 금융지주회장의 고유 인사권과 관련해서도 농협중앙회장과 공식·비공식적으로 협의를 해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당시 발언 중 예로 언급된 것이 눈길을 끄는데, 농협금융지주 직원은 1만6000명이고 농협중앙회 직원이 5000명 수준인데 지주의 임원급 자리가 중앙회에 비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지주의 인사적체를 풀기 위해서는 중앙회와의 인사교류가 불가피하다는 것.
이는 전임 회장이 지적한 단편적인 예에 불과하지만, 지난 50년 동안 직원들의 경제와 금융 부분의 교환근무 시스템 역시 중앙회와의 긴밀한 협조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 임 회장의 현재 과제임을 부인하기 어려운 좋은 표본인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현재 임 회장이 보이는 적절하고 냉철한 거리두기는 그와 농협금융이 맞이할 미래의 아침을 위한 가장 적절한 형태의 은폐 상황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여러 상황에서 농협·우리금융 주변 상황과 두 회장들의 입지 선정은 현재 주어진, 또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점들을 최대한 활용한 은폐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