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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키즈5060 ⑧] 실버사원들의 바람 "생명연장보다 근로연장이 우선"

늘그막에 깨달은 노동의 묘미…동료·체력·정신건강은 덤

이지숙 기자 기자  2013.06.14 17: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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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직장에선 은퇴했지만 아직 쉴 때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한참 일하다 집에만 있으려니 우울하더군요." "건강을 위해서라도 활동적인 일이 필요했어요." 은퇴자 특집을 준비하며 만난 재취업에 성공한 실버사원들의 공통적인 대답은 "아직은 일하고 싶다"였다. 하지만 요즘 '일하고 싶다'는 의지만으로 취업에 성공하는 것은 말 그대로 '하늘에 별 따기'.

여기에 '나이 많은 신입사원'을 받아줄 기업도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 같은 벽을 뚫고 재취업에 성공해 당당히 일자리를 얻은 '실버사원'들은 예전과 달리 이제 '일하는 즐거움'에 대해 알아간다고 입을 모았다. 예전처럼 갖춰진 사무실과 후배들은 없지만 일자리가 있어 감사하다는 것. 최근 고령자 취업이 화두로 떠오르며 시청 등에서 쉽게 일자리를 알선 받을 수 있게 된 것도 장점으로 꼽았다.

그렇다면 재취업을 하기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재취업에 성공한 실버사원들을 만나 재취업 준비단계부터 적응기까지의 얘기를 들어봤다.

◆맥도날드 친절크루로 '변신'한 공무원 김성덕씨

"은퇴 후 2년을 쉬었죠. 몇 달은 맘먹고 쉬었지만 나중에 일자리가 쉽게 구해지지 않자 밤에 잠도 안 오더군요. 막연하게 일이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게 틀렸던 거죠. 준비가 너무 부족했어요."

김성덕(61)씨는 지난해 10월 맥도날드에 취업해 현재 8개월째 시설과 원자재 관리 및 유지를 담당하는 '메인터넌스'로 일하고 있다. 근무시간은 아침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주일 단위로 스케줄을 신청하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생기면 조정도 가능하다.

   김성덕 맥도날드 크루는  
김성덕 맥도날드 크루는 "재취업을 생각한다면 은퇴 5년 전부터 준비해야 한다"면서 "자신이 가치를 높이는 작업을 해둬야 원하는 직장에 취업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이혜연 기자
주 5일을 일하고 받는 금액은 약 80만원. 은퇴 전 월급의 3분1도 되지 않는 금액이지만 김 씨는 "그래도 예전보다 더 대우받고 산다"며 웃어보였다.

"한 달에 한번 집사람 차에 기름 넣어주고 장보러 간다고 하면 비용도 내줘요. 돈이야 더 많이 벌면 좋겠지만 지금 제 상황에 만족합니다. 부인도 일을 다니니 건강해야 된다며 예전보다 저에게 더 많이 신경써줘요."

하지만 초반엔 식구들의 반대도 많았다. 괜히 해보지 않은 일을 하다 건강을 해칠까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사무직으로 있다 매장관리 업무를 한다고 하니 많이 반대했죠. 하지만 6개월이 지나니 집사람은 남편이 매일 아침 출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나 봐요. 고급인력이라고 할 순 없지만 몸을 움직이니 건강에도 좋고 용돈도 버니 일석이조라고 생각해요."

김 씨는 서울시 공무원으로 구청, 동사무소 등을 돌며 33년간 근무하다 2010년 12월 퇴직했다. 이 후 몇 개월 휴식한 뒤 좀 더 일하고 싶다는 생각에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쉽지 않았다. 여러 곳에 이력서를 넣고 기다리기를 반복하던 중 작년 9월에 시니어 엑스포를 방문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아파트 경비, 환경미화, 청소 등이었다.

"세계적인 기업인만큼 안정적일 것 같아 맥도날드를 선택했어요. 2년간 쉬면서 예전과 같은 근무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는 환상은 버렸죠. 그래도 날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고 찾게 돼 기뻐요. 아직 노인정·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긴 젊거든요."

또한 2년간 구직을 해보며 김 씨는 퇴직 전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지금 퇴직을 앞두신 분들께는 최소 5년 전부터 재취업을 위한 준비를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필요한 자격증도 많이 따고 차근차근 재취업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선 자신의 가치를 높여야 구인기업도 관심 있게 봐줄 테니까요. 정부도 일자리뿐만 아니라 은퇴자들 은퇴준비 때 학원비 등을 지원해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근무 8개월 차에 들어간 김 씨는 이제 근무에 완벽 적응한 모습이었다. 처음에 주저했던 젊은 친구들과의 대화도 편해졌고, 손님 응대도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처음엔 손님응대가 너무 어려웠어요. 하지만 요즘엔 잘 웃고, 우는 아이들도 달래줍니다. 공무원으로 오래 살다보니 저도 모르게 경직된 부분이 많더라고요.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제 자신이 변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죠. 하지만 이제 변해가는 걸 많이 느껴요."

◆18년 경력 판매고수, 다시 현장으로… GS리테일 김미경 사원

"고령자 취업난엔 분명 '높은 눈높이'도 문제가 된다고 생각해요. 우선 계산부터 하는 거죠. 일에 비해 월급이 적다는 식으로요. 하지만 쉬운 일에 많은 월급은 '로또'와 같은 걸 바라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곳은 일한 만큼 보상이 있으니 만족해요."

김미경(63)씨는 지난해 1월 GS리테일 채용 후 1년 넘게 GS슈퍼에서 일하고 있다. 매일 4시부터 11시까지 근무하고 한 달에 김 씨가 받는 돈은 약 100만원. 야간타임을 뛰는 만큼 보수가 조금 많은 편이다. 지난해까지는 계산 업무를 담당했지만 지난 1월 경기 분당매송점에서 정자점으로 이동하며 매장업무를 맡게 됐다.

   김미경 GS리테일 사원이 포장한 상추를 저울에 달아 가격을 확인하고 있다. = 이지숙 기자  
김미경 GS리테일 사원이 포장한 상추를 저울에 달아 가격을 확인하고 있다. = 이지숙 기자
"매장에서 농산품 파트를 맡고 있어요. 주로 과일, 야채를 정리하고 재포장 하는 업무죠. 손님이 오면 저울도 달아드리고, 매장 안내도 하고요. 또 조금 오래된 제품은 폐기하고 다시 진열하는 등 제품을 회전시키는 것도 담당해 퇴근할 때까지 쉴 틈이 없어요."

김 씨는 은퇴 없이 지속적으로 계속 일을 해온 케이스다. 젊은 시절엔 서울의 한 백화점 식품코너에서 정직원으로 18년간 근무하다 2003년 그만둔 뒤 학습지, 화장품 등 영업사원으로 일했다.

"체력적으로 힘들어 좀 더 편한 업무를 찾았는데 영업은 실적을 신경 써야하니 더 힘들더군요. 수입도 일정하지 않아 고민하던 중에 용인신청 일자리센터에서 노인일자리 알선업무를 해준다는 얘기를 듣고 신청하게 됐어요."

등록이 된 뒤 한 달이 지나자 GS리테일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연락이 왔고 바로 면접을 보고 출근을 결정했다. 이전에 백화점 식품코너 근무경력이 있는 만큼 적응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업무보다 고객님께 인사하는 것이 더 어색했어요. 하지만 서비스업은 고객응대에 따라 매출이 결정되는 만큼 곧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영업에서 다시 슈퍼 매장업무를 담당하게 되며 주변에서는 응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체력적으로 힘든 일인 만큼 우려의 시선도 있었다.

"친구들은 너무 잘됐다고 축하도 해주고 부러워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자식들은 너무 힘든 일을 하는 거 아니냐며 걱정했죠. 3~4개월은 체력적으로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어요. 힘들긴 해도 안정적인 직장을 얻어 만족해요"

김 씨는 실버사원으로 채용된 만큼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일하고 싶다고 밝혔다.

"가끔 고객 분들이 아직까지 일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는 얘기를 해주세요. 그럴 땐 정말 보람을 느끼죠. 영업업무를 할 때 는 스트레스로 힘들었는데 지금은 몸을 움직이다 보니 체중도 많이 감량하고 많이 건강해진 느낌이에요. 큰 욕심 없이 이곳에서 건강하게 계속 일하는 게 목표에요"

◆소문난 의왕시 '택배 할아버지' CJ 대한통운 문무홍 사원

"은퇴 후 2년간 집에만 있다 보니 무료해져 우울증이 올 것 같았어요. 친구를 만나고 등산을 다니는 것도 2년간 하니 쉽지 않더군요. 나이는 있지만 무슨 일이라도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주민센터에 가서 노인일자리를 신청했죠."

CJ대한통운과 경기도 의왕시니어클럽이 업무협약을 맺고 진행하는 아파트택배 사업은 현재 의왕시 거주 만 60세 이상 노인 7명이 참여하고 있다. 오전 11시부터 약 4~5시간 동안 1인당 40~50개 택배를 전동차, 전동수레 등을 이용해 배달한다.

   문무홍 대한통운 사원이 동료와 함께 전동차에 택배상자를 싣고 있다. = 최민지 기자  
문무홍 대한통운 사원이 동료와 함께 전동차에 택배상자를 싣고 있다. = 최민지 기자
문무홍(70세)씨는 지난해 8월 CJ대한통운과 의왕시니어클럽이 아파트택배사업을 시작할 때 참여한 초창기 멤버로 11개월째 근무 중이다.

"전동차, 전동수레를 이용하다보니 배달하는데 있어 크게 힘든 점은 없어요. 명절 등 성수기가 아니면 다들 3시쯤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편이죠. 지난해 8월 사업 시작부터 함께한 초창기 멤버들이 한명도 이탈하지 않고 근무하고 있어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을 근무하고 한 달 평균 받는 수당은 40만~50만원 정도로 많지 않지만 소일거리로 의왕시 고령자들에게 인기가 좋은 편이다.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단지로 배달을 다니는데 평소 몰랐던 이웃들을 많이 알게 됐어요. 이제는 배달을 하지 않을 때도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지내죠. 매일 출근해 동료들을 만나고 배달하며 주민들을 만나니 생활에 활력이 생기는 것 같아요"

하지만 시행착오도 많았다. 건설엔지니어로 40년 가까이 일한 그에게 주소를 보고 배달을 하는 건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요즘도 가끔 배달실수로 택배 주인을 찾아주러 늦은 저녁 출동하기도 한다.

"처음엔 상자를 대충 실은 뒤에 출발해 아파트에 가서 물건을 찾느라 한참 헤맸어요. 이젠 요령이 생겨 분류할 때 동별로 미리 정리해 둡니다. 하지만 아직도 물건을 옆집에 배달하는 등 실수가 생겨요. 그럴 땐 시니어클럽으로 전화가 와 저녁에 다시 물건을 찾아 배달해 드려야 해요."

문 씨는 앞으로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택배 배송을 계속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노인 일자리가 3D업종에 몰려 있는 문제로 말이 많은데 '양질의 일자리'라는 게 결국 수입과 연결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꼭 금전적인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체력·정신적 건강관리를 위해 사회생활을 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눈높이를 낮추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구하는 게 중요해요. 저도 할 수 있는 한 오래 일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