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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남북회담 무산? 향수 젖은 北, 과거 전례 그만 잊어야

이보배 기자 기자  2013.06.12 1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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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12일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남북 당국회담이 결국 무산됐다. 양측 수석대표의 '격(格)'에 대한 이견이 원인이었다.

우리 측은 수석대표로 김남식 통일부 차관을, 북측은 강지영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국장을 각각 선정했다. 하지만 북한은 우리의 수석대표가 장관급이 아니라는 것을 문제 삼았고, 결국 회담 보류를 선언했다.

정부 간 회담에서 당사자들이 대표의 격을 맞추는 것은 상식이고 예의다. 하지만 과거 남북 장관급회담은 그렇지 못했음에도 우리의 양보로 잘 진행된 바 있다. 김대중·노무현정부 시절 모두 21차례의 장관급회담을 가졌지만 남측은 통일부 장관이 수석대표로 나선 반면 북측은 우리로 치면 2~3급의 내각 책임참사를 내세웠다. 당시 우리 정부는 '북한의 특수한 사정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이를 수용했다.

북한이 박근혜정부에 이를 강요하는 상황이 된다면 문제가 다르다. 원칙과 신뢰를 중요시하는 박근혜 대통령은 대북관계에도 '신뢰를 쌓아야 하며, 잘못된 행동에는 보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분명히 적용시키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남북 장관급회담 관행이 비정상이라고 판단, 이번 회담을 계기로 바로잡기를 원한 것.

회담은 내용 못지않게 절차와 형식도 중요하다. 더군다나 나라와 나라 간의 당국회담이 아니던가. 남북 간에도 국제 스탠더드 적용이 필요한 시점이다. 북한은 과거의 전례와 향수를 그만 잊고 절차와 형식, 신뢰의 기초에 입각한 진정성을 보여야 할 것이다. 박근혜정부가 예전의 틀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이상 북한도 변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물론 남북 당국회담 무산은 안타까운 일이다. 개성공단 정상화, 이산가족 상봉, 한반도 비핵화 노력 등 남과 북 사이에는 해결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 양측 모두가 조금씩 양보해야 함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회담 결렬 이후 "남북 누구든 상대에게 굴종이나 굴욕을 강요하는 것은 남북 관계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힌 청와대의 목소리는 소신으로 받아들여져 반갑다. 지금 당장 회담 테이블에 앉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화의 기본 틀을 바로잡는 것이야말로 남북 관계의 실질적 효율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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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있다면 자존심 싸움도 가끔은 필요하다. 다만, '泰而不驕(태이불교: 여유있되 교만하지 않다)' 이 한 가지는 북한에 꼭 당부하고 싶다. 자존심도 과하면 교만하게 보이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