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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광장] 남북관계, 이젠 脫온정주의 패러다임으로

소정선 논설위원 기자  2013.06.11 16:3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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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대치국면이 계속되던 남북한 관계가 급반전되고 있다. 북한이 지난 6일 당국 실무접촉을 제의하고 우리 정부가 이를 수용, 지난 10일 판문점에서 양측 실무접촉이 이뤄지면서 남북한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게 됐다.

김정은 집권이후 수개월간 초긴장 상태였던 터라 남북의 이번 움직임은 대내외의 전폭적 환영과 지지를 얻고 있다. 물론 향후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오리란 보장은 없다. 그러나 경색국면의 타개란 점에서 중대 사건이다. 더구나 남북한에 새 정치세력이 들어선 가운데 첫 대화의 모색이어서 의미가 크다.

박근혜정부는 전임 MB와는 달리 인도주의적인 지원과 함께 적극적인 대화 자세를 초기부터 견지하고, 북쪽의 김정은도 겉보기와 달리 내실 추구형으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정권은 사실상 남북관계 '파업상태'였다. "북한이 비핵화 후 개방하면, 국민소득을 3000달러로 올려놓겠다"는 이명박 정권의 '비핵-개방 3000' 정책은 '통미봉남(通美封南)' 즉, 미국과는 대화(通)를 해도 남한정부와는 하지(封) 않겠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극단적 선택으로 참담하게 실패했다.

지난 5년간 찬바람만 불었다. 때문에 양측의 회담 성사 발표 직후 여야는 물론 미국 등 관계 당사국들도 적극적인 지지와 환영에 나섰다.

이번 전격적인 회담성사는 차별화된  박근혜정부의 유연한 대북정책에 기인한다. "북한의 핵은 절대 용납할 수 없고,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응하되, 영유아 등 북한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정치상황과 관련 없이 해나가는 것이다. 남북한 간 점진적인 교류와 협력을 통해 신뢰를 축적해 감으로써 지속가능한 평화를 만들어 나가고, 평화통일의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다".

미국 의회 연설에서 밝힌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프로세스'는 강성기류로 일관한 MB보다는 합리적이다. 단호한 대응과 대화의 문을 동시에 열어두겠다는 소위 '투트랙 전략'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여기에 집권 초반 개전불사를 외치며 내부 단속과 집권세력 공고화에 성공한 북한 집권층이 대외적으로 일단 유화국면을 조성해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전술도 한 몫 했다.

회담의제는 이산가족상봉, 개성공단 정상화,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 등 극히 일반적이고 상식적 사안이다. 양측은 실무회담에서 '남북당국회담'으로 회담 명칭을 변경,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남북관계, 새로운 차원의 대화'라면서 성사의지를 다졌다.

일단 현재 흐름이라면 올해 6월을 기점으로 당분간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무드가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방문 때와 6‧15선언의 감동을 다시 한번 느껴 보는 들뜬 기대도 조심스럽게 해본다.

그러나 섣부른 낙관은 금물이다. 남북관계에 관한한 일제해방이후 산전수전을 다 겪은 우리 국민들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회담도 양측의 정치적 필요로 조성되고 적당한 '밀당'을 거쳐 슬그머니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정권 초반 일회성 이벤트로 보는 시각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분단 이후  60여년간 과거를 뒤돌아보고 남북관계에 관한 사고 토대를 재검토해야 한다.

남북 얘기가 나오면 통일시기와 방법론이 우선 거론된다. 남북연합, 연방제에서 북한정권붕괴, 북진통일, 적화통일 등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다. 공통전제는 '남북은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반드시 통일돼야한다'는 명제이다. 민족과 사회공동체를 동일차원에 놓는 사고방식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사고가 양측의 발전과 통일에 도움이 될지 이제는 의문이 든다. 그렇다고 통일의 당위성을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당위성이 비합리적인 토대에 기초할 때 과정과 결과가 좋다는 보장은 없다.

당위적 통일론의 기반은 바로 '우리는 같은 민족'이라는 종족적, 혈연적 민족주의다. 동일한 혈통과 선조에 바탕을 둔 정체성이다. 피를 나눈 민족에서 민족감정이 싹트고 이것이 '우리가 남이가'로 이어져 당위적 통일론으로 귀결된다. 더구나 우리의 경우 인종과 종족, 민족의 차원이 겹친다.

인종은 선천적, 변치 않는 유전형적인 특징에 따라 정의되는 집합체이며 종족은 공동의 언어, 역사에 토대를 둔 문화적 현상이다. 반만년을 이어온 우리 한민족은 역사적으로 두 측면이 겹친다. 그래서 민족감정은 더욱 증폭된다. 이는 혈연적 온정주의를 낳는다.

'집권 독재 권력은 밉지만 북한주민이 굶고 있으니 무조건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 “아니 그러니까 무력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집권세력부터 제거해야 주민들이 해방 된다'는 급진적 주장이 모두 온정주의의 산물이라면 지나친 해석일까?

당위적 통일론을 등에 업고 정치적 이익을 도모했던 과거 대부분 정치세력이 혈연적 온정주의에 기생하는 집단이었다. 역사적사건이라던 7‧4 공동선언도 김일성과 박정희 등 남북 양쪽 정치집단의 지배공고화에 기했다. 통일을 이용해 특정 그룹의 이익과 일신의 영달, 권력을 꿈꾸는 무리들이 현재에도 없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이런 관점에서 맹목적인 민족감정은 오히려 통일의 방해요소라고 정치학자들은 진단한다. 우선 강한 종족적 동질의식은 남북한의 진정한 차이점을 감춰서 통일과 관련된 실제 문제들을 간과하게 한다. 나아가 통일이 실제로 북한에 대한 남한 체제의 패권적 지배를 의미하게 만들어 통일 과정을 분열적이고 갈등 유발적이게 한다는 것이다.

이미 남북은 분단 60여년을 지났다. 언어는 물론이고 체제 차이에 따른 사고방식의 차이 등 달라도 너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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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맹목적 종족동질성에 바탕을 둔 통일 논의는 1945년 이후 생긴 남북한의 차이를 감춰 통일에 필요한 실제적인 조치들을 취하는 것을 방해하고 분단 상황에서 생긴 복잡한 문제들을 간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당한 준비기간을 거친 독일도 통일 후 십 수년 간 속앓이를 했다. 우리의 상황은 더 어렵다.

남북 모두 '상상속의 한민족공동체'를 상정하는데 이는 정말 상상에 불과하다고 냉소를 보내는 분석가들도 있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희망사항일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진단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시사하는 바 적지 않다. 모처럼 남북한이 머리를 맞대는 시기에 재 뿌릴 생각은 없다. 그러나 자칫 온정주의와 정치적 이해에만 골몰한다면 과거 남북관계의 재판이 될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소정선 논설위원(前 코리아헤럴드·헤럴드경제 기자, 디저털 '말' 편집국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