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백의종군(白衣從軍)은 조선시대에 중죄를 지은 무관에게 일체의 관직과 벼슬 없이 군대를 따라 참전케 하는 처벌을 말한다. 이순신은 임진왜란 발발 4년 전인 1588년에 두만강 북쪽 녹둔도에 침공했던 여진족들을 토벌하기 위한 전투에 백의종군으로 참전했고, 이후 임진왜란 기간 중에 두 번째의 백의종군을 했다.
최근 유동성 위기에 내몰린 STX그룹의 수장인 강덕수 회장도 그룹 회생을 위한 방안으로 백의종군의 뜻을 지난달 밝혔다. 당시 강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주식을 포함한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오직 회사의 새로운 도약과 발전을 위해 백의종군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긴 이메일을 보냈다.
STX조선해양이 자율협약을 신청한 이후 강 회장은 그룹 최고경영자로서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을 통감,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회사 살리기에만 전념하겠다는 각오를 밝힌 것이다. 강 회장은 이러한 각오의 일환으로 STX조선해양이 긴급자금을 지원받으면서 채권단에 대주주 주식 처분 및 의결권 행사 제한 위임장, 구상권 포기 각서 등도 제출 했다.
하지만 그룹 계열사 중 STX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4월26일)했으며 채권단의 일원인 우리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10.8%) 중 일부 처분 의사를 밝히는 등 구조조정 전반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여기에 최근 주요 계열사인 STX팬오션도 끝내 법정관리(6월7일)를 신청하면서 결국 그룹의 공중분해는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조성되자, '백의종군' 의지를 밝힌 강 회장은 "신속한 경영정상화와 효율적인 구조조정을 위해선 지주회사 체제 유지가 필요하다"며 그룹에 대한 지배력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채권단의 구조조정은 감수하겠지만, 지주사 해체를 통한 그룹의 공중분해만은 막아달라는 것이다.
우리은행은 이러한 강 회장의 호소에 STX 지분을 매각하지 않겠다며 하루 만에 매각의사를 번복하면서 기업입장에서는 큰 고비를 넘기게 됐다. 하지만 전일 급락 발생했던 STX 투자자들은 피해를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물론 강 회장은 모두 내려놓고 그룹을 정상화하겠다고 강조했기 때문에 '구조조정'으로 인한 도덕적 비난은 덜 받게 되는 입장. 하지만 이번 입장 표명은 구조조정 역시 본인을 중심으로 한 경영권 보장, 지배구조 유지를 고수하면서 이에 대한 진정성은 퇴색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STX그룹을 둘러싼 주변 환경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STX팬오션이 예비실사 결과 예상보다 부실규모가 크고 회생가능성도 미비한 것으로 판단되는 등 '허점투성'의 내부 경영 실태가 드러났으며, 조선·해운업을 향한 막연한 기대감에 채권단 역시 수조원의 지원을 쉽사리 결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강 회장의 지배력을 유지할 뿐인 지주회사를 왜 지원해야 하느냐"는 채권단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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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개인의 희생을 걸었던 이전과 달리 그룹 정상화나 수많은 실직자, 협력사의 줄도산이 걸려 있는 이번 상황에는 과감한 승부보다는 사재출연 및 지분매각 등 실질적인 노력을 보여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새로운 회사 도약과 발전을 위해 과감히 백의종군하는 모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