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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키즈5060 ⑤] 인생의 모든 것 '집과 자식' 그들의 역습

강창희 미래와금융 연구포럼 대표 "몇 억 모으기보다 기초생활비 확보 훨씬 중요"

정금철 기자 기자  2013.06.10 17: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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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때 이른 은퇴문제로 정년 후 긴 여생을 어떻게 보낼지 걱정하는 5060세대처럼 시기를 앞서 찾아온 폭염이 심신을 말리던 7일 오전, 한 은퇴관리전문가를 만났다. 베이비부머 세대 은퇴특집 기획 후 많은 사례를 접하고 실무자와 전문가 의견을 구했지만 이들 모두 현역에서 활동 중인 만큼 은퇴자는 물론 은퇴준비자들의 공허함을 모두 헤아릴 수 있는 전문가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퇴문제 연구를 위해 스스로 공든 자리에서 은퇴해 새로운 인생을 설계한 최고의 전문가, '100세 시대를 위한 인생설계'의 대표주자 강창희 미래와금융 연구포럼 대표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아직 강창희 대표라는 직함보다는 미래에셋금융그룹 부회장,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소장 타이틀이 익숙할 법했지만 현재 상황에 완전히 녹아든 그에게서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푸근함이 진하게 배어나왔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 강창희 대표의 명함을 건네받아 살피던 중 'L&F'라는 이니셜에 시선이 꽂혔다. 기자의 눈이 명함 한 귀퉁이에 멈춘 것을 눈치 챈 강 소장은 이내 말을 시작했다.

"'L'은 라이프 'F'는 파이낸셜의 앞머리를 딴 겁니다. 삶과 금융을 유기적으로 엮어 연구하고자하는 의지를 나타낸 거죠. 금융사에 몸담고 있을 때는 아무래도 조직의 포지셔닝을 따져야했는데 이젠 그런 일들과 상관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마음이 편합니다." 

◆장수행복 옭아매는 체면의 덫 그리고 교육부재

오래오래 살라는 말이 덕담이 될 수 없는 요즘, 장수가 리스크로 작용하는 21세기에 종심(從心)을 바라보는 강 대표처럼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례는 보기 드물 뿐더러 큰 복이다. 이런 이유에 맞춰 5060세대의 은퇴라는 국가적 차원의 난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있는지 궁금했다.  

   국내 은퇴자 교육을 10년쯤 앞당겨 시작했어야한다고 진한 아쉬움을 털어놓은 강창희 대표는 부부가 함께 교육에 참여할 경우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 이지숙 기자  
국내 은퇴자 교육을 10년쯤 앞당겨 시작했어야한다고 진한 아쉬움을 털어놓은 강창희 대표는 부부가 함께 교육에 참여할 경우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 이지숙 기자
"70년대 중반 일본 증권업계 파견연수 중 증권 보관시설에서 일흔을 넘긴 어르신 100여분이 증권을 분류하고 있더군요. 이들 대부분이 공무원, 기업체 간부 등 여러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으나 시간당 500엔의 보수를 받고 일을 했습니다. 당시 머물던 호텔의 저녁 데스크는 노인들이 맡았던 것도 제게 깨달음을 줬고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수도 있지만 이 두 사례에서 일본 노인들은 체면보다 일의 소중함을 우선순위로 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곧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의 정년문제가 부각될 것을 염두에 두게 됐다고 한다. 특히 체면과 겉치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나라 정서상 제대로 된 은퇴교육을 통해 정년 전후의 방랑기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게 됐다.  

"은퇴자 재취업과 관련한 정부의 정책은 기업에 일자리 할당, 배정 등을 요구하는 단편적인 수준에 그친 경우가 많고 요즘처럼 비즈니스 사이클이 단축된 상황에서의 정년연장 정책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소홀히 한 것이라 교육을 통한 은퇴자 스스로의 자립기반 구축이 더욱 중요합니다."

◆'노후' 대신 '후반인생'

직업 특성상 전국 곳곳을 돌며 일주일에도 수차례의 강의를 하다보면 노후라는 말에 반발하는 시선을 느낄 때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강 대표는 노후라는 말 대신 '후반 인생'이라고 에둘러 표현하기도 한다며 △건강리스크 △저금리·인플레리스크 △장수리스크 △자녀리스크 △부동산 편중 자산구조리스크를 은퇴자 5대 리스크로 꼽았다.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건강리스크와 저금리·인플레리스크. 계획을 세워놓지 않아 퇴직 후를 걱정해야하는 장수리스크. 자녀가 자랄수록 비례하는 지출 규모와 하릴없는 지원에 따른 자녀리스크. 재산비중이 지나치게 부동산에 쏠려 자산 운용에 제한을 가져오는 자산구조리스크. 이날 강 대표는 5대 리스크 중 자녀리스크와 부동산 편중 리스크를 설명하는데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현재 우리나라 평균수명이 연장되면서 노인이 노인을 부양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가 부모를 부양하는 사례는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모가 젊은 세대를 금전적으로 지원하는 경우도 다반사죠." 이는 자녀리스크의 단편적인 모습으로 자녀의 자립심을 키우는데 소홀히 했던 베이비부머 세대가 떠안은 그릇된 사랑의 역습인 셈이다.

안타깝게도 개선책을 딱히 찾기 힘든 자녀리스크와 달리 부동산 편중 리스크의 경우 해결의 열쇠가 있었다. 강 대표는 "미국과 일본에 비해 부동산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우리나라 은퇴세대의 자산구조는 자산관리 원칙이나 부동산시장 전망으로 볼 때 은퇴자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제했다.

이어 "부동산 가격이 지속 상승하던 시기도 지나고 부동산을 빌려주거나 팔거나 하는 등 얻을 수 있는 메리트도 감소해 소득수준과 연령이 높아질수록 부동산은 줄이고 금융자산 규모는 키우는 일반적 자산관리의 원칙을 지금부터라도 적용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평생현역' 조건은 주특기 가진 여유로운 베테랑  

첫째는 '후배들에게 경쟁자로 비치지 말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 것' 둘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체면을 버릴 것'. 국내 최고 은퇴관리전문가가 인생의 멘토에게 답을 구한 당당한 평생현역의 전제조건이다.

   강창희 미래와금융 연구포럼 대표 서울대학교 농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시샤대학 상학연구과에서 석사학위를 따낸 후 서강대학교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했다. 1973년 증권선물거래소에 입사 이래 △대우증권 상무·도쿄사무소장 △현대투신운용 대표 △굿모닝투신운용 대표 △미래에셋 부회장 겸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장을 지낸 국내 금융투자업계의 진정한 산증인이다. = 이지숙 기자  
강창희 미래와금융 연구포럼 대표 서울대학교 농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시샤대학 상학연구과에서 석사학위를 따낸 후 서강대학교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했다. 1973년 증권선물거래소 입사 이래 △대우증권 상무·도쿄사무소장 △현대투신운용 대표 △굿모닝투신운용 대표 △미래에셋 부회장 겸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장을 지낸 국내 금융투자업계의 진정한 산증인이다. = 이지숙 기자
강 대표의 멘토는 일본 준대형증권사의 기업금융전문가이자 계열사 창업투자사 대표를 지낸 모모세 히로시 사장이다. 우리 은퇴시장의 선행적 거울역할을 하는 일본 평생현역의 선두 한 명으로 70대 후반인 지금도 몇몇 기업에서 경영고문 등의 역할을 맡고 있다. 강 대표는 자신의 입을 통해 모모세 사장의 얘기를 찬찬히 들려줬다.

"재취업 후 젊은 경영진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인맥과 경험으로 풀어줬더니 오히려 더 경계했다고 하더군요. 자신의 무능이 드러나 혹여나 자리를 빼앗기지 않을까 우려한 거죠. 또 모모세 사장은 자신이 도움이 필요한 걸림돌로 비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모든 일을 스스로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강 대표는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자신만의 주특기가 있다면 체면 따윈 신경 쓰지 말고 일하는 보람에 초점을 맞춰 젊은이들과 동화하라는 것.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기업에 입사, 이런저런 핵심부서를 거쳐 이력서가 화려하더라도 정작 내세울 주특기가 없다면 문제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재취업 때 체면을 버리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게 자신의 주특기를 파악하고 어필하는 것입니다. 숙련된 전문분야의 지식만이 전부가 아니라 예쁜 목소리, 비상한 기억력, 상냥함과 포근함 등도 충분히 주특기가 될 수 있죠. 또 교육을 통한 능력배양도 무시할 수 없고요."   

◆늙으면 더 아쉬운 돈… 기초생활비만 챙겨도

"4년간 서울에서 특파원 생활을 하다가 귀국한 일본의 한 언론인에게 한국 사람들은 입구관리에는 열성을 다하지만 출구관리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처음엔 불쾌했지만 한편으로는 얼굴이 화끈거렸었죠." 

입구관리는 돈을 버는 것, 출구관리는 모은 돈을 쓰임새에 맞춰 제때 활용하는 것으로, 벌이가 줄어드는 정년 후의 자금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었다. 강 대표는 일본 언론인의 얘기처럼 조금만 아끼면 현역 때와 별 차이 없이 살 수 있지만 무리한 재테크와 형편을 망각한 구색 맞추기로 어려움을 자초하는 은퇴자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말도 보탰다.

강 대표는 이와 같은 연장선상에서 강의나 세미나 중 빠지지 않는 질문은 구체적 노후자금과 관련한 부분이라고 부연했다. 어느 정도의 돈이 있어야 여생을 편하게 보낼 수 있냐는 질문에 강 대표는 몇 억이라는 돈을 모으는 것보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매달 기초 생활비를 확보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핏대가 서라 역설한단다.

"50대 이상부터는 재테크가 중요한 게 아니라 빚을 최소화하는 등 가계자산의 구조조정이 필요합니다. 부동산과 금융자산이 반반 정도면 좋죠. 여건이 되면 기본연금에 더해 적립식 펀드 투자도 괜찮고요."

후반기 인생설계를 위한 간결한 지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또한 재취업 준비도 해야죠. 월 50만원의 근로소득은 현재 금리를 따질 경우 2억원의 정기예금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말씀드리면 와 닿는 느낌이 더욱 다르죠."

인터뷰 말미 그는 작별인사와 함께 젊은 세대를 위한 충고도 곁들였다. "현재 5060세대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2030세대는 재테크에 관심을 가질 게 아니라 돈을 빌려서라도 인적자본투자에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 시기에는 자산규모를 키울게 아니라 몸값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