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을지로의 저주'일까? 대기업 희비 교차 '극명'

CJ·STX·한화·태광·신세계 악재에도 삼성·현대 '승승장구'

이보배 기자 기자  2013.06.10 09:22:03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대한민국 재계에 악재가 몰아닥쳤다. 유동성 위기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검찰의 사정 칼날에서 자유롭지 않은 기업도 부지기수다. 눈길을 끄는 것은 대기업에 불어 닥친 칼바람이 서울시 중구 일대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중구 일대에 밀집돼 있는 특성 탓이기도 하지만 여러 대기업의 악재 속에도 승승장구 하고 있는 대기업은 중구를 벗어나 있어 흥미롭다. 2013년 상반기, '을지로의 저주'에 발목 잡힌 대기업을 되돌아봤다. 
 
최근 가장 큰 악재에 시달리고 있는 대기업은 CJ그룹이다. 페이퍼컴퍼니 의혹을 시작으로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수천억원대 비자금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달 29일 이 회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이재현 회장의 탈세,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CJ그룹 사옥. ⓒ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탈세,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CJ그룹 사옥. ⓒ CJ그룹
◆페이퍼컴퍼니의 시작 CJ그룹

이 회장 자택 압수수색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따로 있다. 법원이 대기업 총수의 자택을 압수수색하도록 영장을 내준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 이 때문에 검찰이 이 회장의 자택을 압수수색 한 것을 두고 업계는 그의 범죄 혐의가 상당 부분 소명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비자금 사건으로 자택을 압수수색당한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과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은 모두 구속기소 됐다. 이 회장은 검찰이 압수물 분석을 마치는 대로 소환, 조사받은 뒤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가 하면 지금까지 이 회장의 탈세와 주가조작, 배임 혐의를 중심으로 수사를 진행해온 검찰은 이 회장 자택에서 확보한 압수물의 내용에 따라 수사 방향이 이 회장의 횡령 혐의 쪽으로 뻗어갈 가능성도 열어 놨다. 또 정·관계 금품 로비 등 의외의 방향으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회장은 검찰의 비자금 수사와 관련 전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책임지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이번 사건으로 그룹 전직원의 자부심에 상처를 준데 깊이 사죄한다"고 덧붙이고, "임직원들의 과오도 다 내 책임"이라면서 "이번 사태로 그룹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CJ그룹의 악재는 멈출 줄 모른다. 국세청이 최근 강남에 있는 전통 요정에 대한 탈세 조사에 착수한 결과, CJ그룹 임직원들이 '밀실'을 빌려 접대를 하고 카드깡을 한 정황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윤대진 부장검사)는 8일 CJ그룹의 탈세 및 비자금 조성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CJ글로벌홀딩스의 신모 부사장을 구속, 향후 수사 방향과 폭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신 부사장은 지난 6일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아가 긴급 체포됐으며, 7일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CJ그룹 수사와 관련해 전·현직 임직원이 구속돈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신 부사장의 구속으로 CJ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는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신 부사장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국내외 비자금을 관리한 '집사'이자 '금고지기'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핵심 인물이다.

◆재계 '사정' 공포 신호탄, 신세계그룹

정권 초 재계를 둘러싼 사정수사는 CJ그룹이 처음은 아니다. 특히 박근혜정부 들어서는 모든 사정기관이 경쟁적으로 나서 거의 모든 대기업들을 훑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는 '사정' 공포의 신호탄을 신세계그룹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지난 2월5일 신세계 그룹 오너인 정용진 부회장을 소환, 장시간 조사를 벌였다. 이는 정 부회장이 베이커리 계열사인 신세계 SVN을 부당 지원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경제개혁연대가 고발한 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총수 범죄에 비해 계열사 부당지원은 상대적으로 덜 무거운 혐의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검찰은 정 부회장을 상대로 12시간이나 조사를 벌였고, 지난달 24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세계그룹을 고발 요청했다.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전속고발권을 지닌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수사와 기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검찰의 요청을 검토해 조만간 신세계그룹을 고발할 것으로 전해졌으며, 예상대로라면 조만간 신세계그룹에 대한 사법처리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앞선 4월18일 정 부회장은 국회 국정감사·청문회 증인으로 소환되고도 출석하지 않은 혐의로 벌금 1500만원을 선고받았다. 대기업 벌금으로는 적은 금액에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1500만원은 정 부회장의 혐의에 대해 법원이 내릴 수 있는 최대 벌금 액수다.

실제 같은 혐의로 재판에 송부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1000만원의 벌금을 선고 받았다.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맞은 STX그룹. ⓒ STX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맞은 STX그룹. ⓒ STX
◆유동성 위기 흔들리는 STX그룹

여러 대기업이 사정 칼날에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STX그룹은 유동성 위기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샐러리맨 신화'로 불렸던 강덕수 STX그룹 회장의 닉네임은 '샐러리맨의 몰락'으로 바뀌고 있다.

강 회장은 공격적 M&A 경영으로 재계 순위를 단숨에 바꿔놨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기 침체 속에서 더뎌졌다. 세계 교역 물동량이 줄면서 해운업이 망가지기 시작했고, 이어 선박 발주량이 줄면서 극심한 수주 가뭄에 시달렸다.

결국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STX그룹의 지주사와 계열사들은 채권단 자율협약을 신청했다. 정부와 채권단은 STX그룹을 살리는 조건으로 강 회장에게 사재 출연 등 모든 것을 다 내놓으라고 압박했다. 이와 관련 강 회장은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백의종군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와 채권단의 요구도 수용할 의사가 있음을 내비친 셈이다.

강 회장의 굳은 의지에도 불구하고 STX그룹의 불안한 하루하루는 계속되고 있다. 요동치는 주가는 물론이고, 작은 뉴스에도 가슴 졸여야 하는 가운데 최근에는 STX가 결국 그룹 해체 절차에 들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하락한 기업 주가에 이어 우리은행이 강 회장의 STX 지분(10.8%)을 처분하는 방안을 추진, 강 회장의 지주회사 지배력마저 상실할 위기에 처한 이유에서다.

우리은행의 강 회장 STX 지분 처분은 계열사 주식이 휴지조각이 되기 전 대출금을 회수하려는 복안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강 회장의 그룹지배 고리에 균열이 생기는 것은 물론 강 회장의 STX 지배력은 사실상 소멸된다.

이와 관련 강 회장은 "STX의 현 지배고주인 지주회사 체제는 향후 신속한 경영정상화는 물론 효율적인 구조조정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지주회사 체제 유지를 통한 경영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고 호소했다.

   재벌 잔혹사의 서막으로 알려진 태광그룹은 최근 상속전쟁이 본격화 됐다. ⓒ 프라임경제  
재벌 잔혹사의 서막으로 알려진 태광그룹은 최근 상속전쟁이 본격화 됐다. ⓒ 프라임경제
◆'재벌 총수 잔혹사'의 시작…태광그룹

지금까지 대한민국 사법부는 재벌 총수들의 경제범죄에 대해 범죄사실의 경중에 관계없이 '솜방망이 선고'를 내려왔다.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은 헌법보다 위에 있는 재벌 형법이라는 말이 나돌았을 정도다.

하지만 최근 재벌 총수에 대한 선고를 살펴보면 이 같은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재벌 총수 잔혹사'의 서막은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열었다.

이 전 회장은 모친인 이선애 전 태광산업 상무와의 무자료 거래, 회계 부정 처리, 임금 허위 지급 등의 수법으로 회삿돈 400여억원을 횡령하고, 그룹에 975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2011년 1월 구속기소됐다.

이와 관련 법원은 지난해 2월 일부 횡령과 배임을 제외한 대부분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 이 전 회장에게 징역 4년6월에 벌금 20억원, 이 전 상무에게는 징역 4년에 벌금 20억원을 각각 선고했다. 두 사람은 2심에서도 1심과 같은 형을 선고 받았고, 최근 건강을 이유로 두 사람은 각각 불구속 수사 및 한시적인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태광그룹의 악재는 끝나지 않았다. '상속분쟁'이 덜미를 잡은 것. 지난해 12월11일 이 전 회장의 둘째 누나인 이재훈씨가 동생을 상대로 주식인도 청구소송을 진행했고, 같은 달 28일에는 이 전 회장의 이복형 이유진씨 또한 상속소송에 합류하면서 형제·남매 간 전쟁의 2막이 시작됐다. 태광그룹 2세 간 대규모 상속 소송은 지난 4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좋지 않은 소식은 계열사에서도 흘러나왔다. 태광그룹 계열사인 흥국화재해상보험(이하 흥국화재)은 골프장 회원권을 고가에 매입하는 방식으로 대주주인 이 전 회장을 부당지원했다가 거액의 과징금을 물게 되자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 4월28일 패소했다.

   바람 잘 날 없는 한화그룹은 최근 김승연 회장 차남의 대마초  흡연 혐의가 포착,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 한화  
바람 잘 날 없는 한화그룹은 최근 김승연 회장 차남의 대마초 흡연 혐의가 포착,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 한화
◆달라진 사법부의 '재벌관' 희생양, 한화그룹

사법부의 실형 선고로 아픈 곳은 또 있다. 지난 4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 벌금 50억원을 선고받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관용은 없었다. 당뇨와 우울증 등으로 건강이 악화된 탓에 이동식 침대에 산소호흡기를 꽂고 법정에 나온 그였지만 재판관의 판결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깨뜨렸다는 차원에서 국민들은 최근 사법부의 재벌총수 관련, 이 같은 판결을 반기고 있지만 해당 그룹 측은 사법부의 판단이 다소 서운하다는 입장이다. 징역 4년, 벌금 51억원의 1심보다는 형이 소폭 줄어들었지만 한화 측의 실망은 컸다.

지난해 8월 김 회장이 법정 구속되면서 한화그룹의 경영 시계는 멈췄다. 오너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형상유지는 해왔지만 신규 투자 등의 공격 경영은 '정지' 상태가 돼버린 것.

최근 한화는 오너 부재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대표이사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대규모 임원 승진을 단행했다. 김 회장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황' 직면하자 경영 공백을 막기 위한 자구책에 나선 것.

김 회장은 현재 2심 판결 상고장을 제출, 이번 사건의 최종 판단은 대법원으로 넘어가게 됐다.

한편, 10일 인천지검 등에 따르면 인천지검 강력부(정진기 부장검사)는 한화그룹 김 회장의 차남이 대마초를 피운 혐의를 포착,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범현대가 3세의 대마초 흡연 수사 중이던 검찰이 이를 포착, 자칫 '재벌가 2·3세 대마초 흡연 사건'으로 비화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김씨는 현재 신병 치료를 이유로 미국에 머물고 있으며, 검찰은 김씨의 변호인을 통해 소환 일정을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2007년 유흥업소 종업원과 시비를 벌여 부친인 김 회장의 '보복 폭행'을 불러왔던 인물로 2011년에는 접촉사고를 낸 뒤 도주한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명실상부 국내 1위 기업인 삼성그룹은 크고작은 악성 루머, 이슈에도 끄떡없다. 사진은 서초동 삼성타운. ⓒ  프라임경제  
명실상부 국내 1위 기업인 삼성그룹은 크고작은 악성 루머, 이슈에도 끄떡없다. 사진은 서초동 삼성타운. ⓒ 프라임경제
◆대기업 칼바람? 승승장구, 삼성·현대차그룹

태광·한화그룹 총수가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것과 달리 과거 사법부는 횡령과 배임 등 경제범죄를 저지른 재벌 총수들에 대해 비교적 관대했다.

600억원대 비자금 조성과 횡령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은 2008년 6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의 판결을 선고 받았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혐의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발행 혐의(조세포탈 및 배임 등)로 기소돼 2009년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았다.

이들 총수의 집행유예 선과 이유는 명확했다. 피고인의 나이가 고령이라는 점, 해당 기업의 경제 기여도, 피해가 회복됐다는 점 등이다.

이는 당시 재판부의 판결문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정몽구 회장의 항소심 재판부는 "정몽구를 사회에서 격리해 경영활동을 금지시키는 것보다는 우리 경제와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걸맞은 수준의 기업의 투명성과 합리성을 제고하고, 건전한 기업 활동을 통해 현대자동차그룹과 우리 사회, 국가경제의 발전에 진정으로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더 부여하는 것이 형벌제도의 이상에 부합한다고 판단 된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선고 73일 뒤 사면됐고, 이 회장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등을 이유로 특별사면 됐다. '경제기여도'가 양형결정에 유리한 요소로 감안됐던 셈이다. 실제 대한민국 재벌 1, 2위의 삼성그룹이나 현대차그룹의 경영에 차질이 생길 경우, 대한민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

   지난달 말 범현대가 3세의 대마초 흡연 사건을 쉬쉬 하면서 잘 넘기는 모양새였지만 최근 한화그룹 김승현 회장의 차남이 같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다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현대  
지난달 말 범현대가 3세의 대마초 흡연 사건을 쉬쉬 하면서 잘 넘기는 모양새였지만 최근 한화그룹 김승현 회장의 차남이 같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다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현대
대한민국 1, 2위 그룹에 대한 특별대우는 정치권에서도 감지된다. 지난해 새누리당은 삼성과 현대차에 대놓고 '면죄부'를 주는 방안을 내놓아 논란이 일기도 한 것. 당시 새누리당은 대기업 계열사 간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현행 대기업 지배 구조에 대해서는 소급 적용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삼성·현대차그룹과 같은 대기업의 기존 순환출자 구조는 인정하되, 신규 출자를 금지해 대기업의 문어발식 계열사 확장에 제동을 걸겠다는 취지다.

그런가 하면 승승장구하는 대기업은 계열사의 크고 작은 사건도 큰 이슈가 되지 못하는 모양새다. 실제 삼성과 현대는 최근 각각 삼성전자 불산 유출, 현대제철 아르곤 누출 사건이 있었지만 잠깐 이슈 됐을 뿐 장기화 되지 않았다. 그때마다 연예계에서 크고 굵직한 사건들이 터지면서 물타기 의혹이 제기됐을 뿐이다.  

실제 현대가는 지난달 말 3세의 대마초 흡연 혐의가 알려지면서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쉬쉬하는 분위기속에 우야무야 넘어갔다. 하지만 최근 한화그룹 김 회장의 차남 대마초 흡연 관련 수사 소식이 전해지면서 다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심은 한화그룹에 쏠리는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