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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진단] '비정규직 고충 가중' 대기업 정규직 전환의 이면

임금격차 포함 괴리감 더 벌어져… 4대 보험 사각지대·미흡한 처우개선도 여전

이혜연 기자 기자  2013.06.04 08: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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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정규직 됐지만, 이전과 크게 달라진 점은 없어요. 물론 정규직 전환에 만족하는 근로자도 많아요. 달라진 점이 있다면 소속감과 동료라는 동질감이 생겼다는 것이죠. 다만 전보다 할 일이 너무 많아졌어요. 시간제가 정규직으로 바뀌면서 퇴사한 경우도 많아 그만큼 업무량이 늘었죠."

한화와 신세계, 롯데, SK그룹에 이어 GS그룹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대열에 다섯 번째 멤버로 동참했다.

대기업집단의 비정규직 처우개선 공약이 잇따라 가시화하면서 복지의 훈풍을 바라는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크지만, 이면의 그림자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피라미드 같은 대기업 고용형태로 근로자 근무현황 파악이 어려운 것은 물론 기존 외주업체 근로자의 불만이 여전한 탓이다.

   대기업 내 판매·서비스 업종에 근무 중인 비정규직 근로자는 정규직 전환 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정규직으로 전환됐으나 임금, 근무시간 등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이마트 계산대. ⓒ 프라임경제  
대기업 내 판매·서비스 업종에 근무 중인 비정규직 근로자는 정규직 전환 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정규직으로 전환됐으나 임금, 근무시간 등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이마트 계산대. ⓒ 프라임경제

올해 정규직으로 전환된 근로자 수는 약 2만명. 새 정부 출범 이후 금융권, 유통업계, 대기업, 공공기관 등 정규직 전환이 이어지면서 그에 따른 파장효과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렇듯 대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이자 비정규직 근로자의 처우개선을 위해 대규모 정규직 전환을 시행하고 있지만, 또 다른 이면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대부분 정규직 전환 대상자는 상기·지속적 업무 종사자를 전환 대상자로 선정한 반면 파견·단순업무 계약직은 전환 대상자에 속한 경우가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 이른바 '감정노동자'로 일컫는 서비스 종사자나 상담사들이 전환 대상자에 선정됐지만 업무시간, 일·가정 양립관계, 임금 문제 등에 대한 불만도 속출하고 있다.

◆정규직 전환 혜택 '상담사·여성' 국한

올해 한화를 시작으로 신세계, SK, GS 등 대기업의 정규직 전환 소식이 전해졌다. 일부에서는 기업의 새 정부 정책 따라잡기라는 비난의 질책도 있지만, 기업들은 대규모 정규직 전환을 통해 비정규직 비율 축소와 안전 고용에 앞장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대기업 정규직 전환의 최대수혜자는 여성근로자로 전체 전환 대상자 중 약 70% 이상에 달한다. 이는 전환 대상 직종이 대부분 상담사나 판매·서비스 직종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기업별로 한화는 지난 3월부터 여성근로자 1300여명을 포함, 1900여명을 정규직 전환했다. 현재 이 가운데 대부분은 한화 계열사에 속한 서비스 종사자나 상담사로 근무 중이다.

SK도 정규직 전환 대상자 중 4300명이 콜센터 상담사로, 80% 이상이 20대 여성이며 최근 하반기 정규직 전환 의사를 밝힌 GS도 해당 근로자 90% 이상(2225명)이 여성에 한정됐다. 이들은 각 업체에서 상품진열, 계산, 상담사 파트에 근무하고 있다.

대기업 관계자는 "여성에 집중된 상담사나 서비스 종사자 대부분이 감정노동자로 불리며 이들의 업무개선 문제가 최근 사회 이슈로 떠올랐다"며 "기업은 이 같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감정노동에 노출된 이들을 배려하고 여성근로자의 안전고용에도 힘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임금격차·처우 등 우려사항도 고려해야

"비정규직에도 여러 종류가 있듯이 기업과 정규직 전환 대상자도 특성에 맞춰 선정자를 선별합니다. 단순업무종사자는 정규직 전환 대상자 축에도 못 끼죠. 단순업무를 희망하는 근로자도 많지만 전환 대상자가 많아질수록 남은 비정규직은 임금 등의 차이로 소속감 저하와 동질감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상당하죠."

올해 각 기업의 정규직 전환 계획과 맞물려 비정규직 근로자는 작년보다 1.3% 감소했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는 더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정규직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253만원, 비정규직 근로자는 141만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등 비정규직 4대 보험 가입률도 정규직 절반 수준에 그쳤다.

이에 통계청 관계자는 "최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사례가 많은데 전환 대상자에도 비정규직 내 상위 근로조건을 갖춘 비기간제 근로자가 정규직으로 옮겨가는 경우가 많다"며 "이로 인해 생기는 비정규직 평균임금과 정규직과의 임금격차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대기업 정규직 전환 대상에 속한 한 근로자는 "정규직으로 전환됐지만 일은 더 많아지고, 업무시간에 제한을 받는다"며 "기존 외주업체 소속된 근로자들도 정규직 전환 대상자에 속했지만 그만두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정규직 전환을 발표한 대기업 비정규직인 또 다른 근로자는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고자 비직영 근로자를 정규직 전환하고 있지만, 전환 대상자에도 단순업무종사자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운을 뗐다.

이어 "물론 단순업무를 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지만, 정규직이 늘면 비정규직에 남겨진 근로자들은 소속감 저하와 함께 정규직과의 교류도 멀어질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일이냐 가정이냐" 상담사 정규직 전환 '양날의 칼'

"콜센터는 상담업무를 대부분 2~3교대로 운영합니다. 그래서 상담사는 20대 젊은 층도 많지만, 30~40대 주부도 많아요. 이들은 일과 가정의 양립문제로 단 시간 근무를 희망하지만 정규직 전환이 이어지면서 직영 소속 근로자가 될 경우 근무시간 등에 따른 차질이 생길 수 있어 걱정이 많아요."

올해 대기업의 정규직 전환 대상자는 대부분 '상담사'다. 그러나 상담사는 언어폭력, 성희롱 등 문제를 일으키는 악성고객을 상대하기 때문에 이직률이 높다. 이런 이유로 최근 '감정노동'에 대한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되는 등 감정노동자의 애환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상담사는 대표적 감정노동자다.

콜센터에서 근무 중인 한 30대 주부는 "상담사 업무는 일대일 고객상담시스템으로 진행되기에 특히나 신입 상담사의 이직률이 높다"면서도 "하지만 업무시간이 탄력적으로 운영돼 주부나 경력단절여성도 가정을 돌보며 능률적으로 근무할 수 있다"고 업무 장점을 밝혔다.

다만 "최근 상담사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사례가 많아졌는데, 30대 이상 상담사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업무시간도 늘고, 주어진 업무의 부담감이 높아져 일과 가정의 양립관계가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도 건넸다. 

이와 관련 콜센터 업계 관계자는 "최근 대기업의 정규직 전환계획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상담사 직종이 전환 대상자에 오르고 있지만 상담사 직종이 감당할 업무사항이 많고, 이들의 작업환경 또한 비정규직과 정규직과의 차이가 크지 않다"고 단언했다.

이 관계자는 이와 함께 "대기업에서 대부분 자회사에 소속된 상담사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더라도 업무시간과 이직률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