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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민간자율' 부족, 당국이 또 키우나?

피곤하다면서도 틈나는 대로 영향력 과시…피할 수 없는 관치논란

임혜현 기자 기자  2013.06.03 13:5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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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골치가 아프다"고 했다. 지난 1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정책금융의 향후 방향설정에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나온 표현이다. 정책금융TF(태스크포스)는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 기관들의 중복된 기능을 재편하고 민간영역과의 마찰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사이의 의견차가 상당해 뜻을 모으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이 나온 셈이다.

   막힌 자금줄을 풀기 위한 당국의 독려가 계속되고 있지만, 현재 당국이 금융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는 위기 해소 후 시정을 요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관치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당국 태도가 시장 자율성을 해치고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 임혜현 기자  
막힌 자금줄을 풀기 위한 당국의 독려가 계속되지만, 현재 당국이 금융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는 위기해소 후 시정을 요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임혜현 기자
아닌 게 아니라 정책금융 문제는 기관통합·기능재편 등 어느 것 하나 분명히 정해진 게 없어 당국을 초조하게 하고 있다. 결과물이 여름 중에는 나올지도 확신하기 상황이 된 것은 앞서 말한 기관 간의 동상이몽, 그리고 여기에 선박금융공사 문제까지 얽혔기 때문이다.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때문에 처리가 쉽지 않다.

정책금융 중 일부, 민간에서 받쳐준다면…

이런 상황에서 부산 문현지역이 서울 여의도와 함께 금융중심지로 지정, 부산은행은 지난달 말 금융중심지 관련 선박금융 특화영업을 위해 나섰다. 자행의 '중앙동지점'을 선박금융 특화영업점으로 지정한다고 밝힌 것이다. 부산은행 중앙동지점은 해운관련 기업체들이 밀집돼 있는 지역에 위치해 고객의 접근성이 용이하고, 신규 여신규모 100억원이상의 한국국적 선박을 대상으로 한 선박담보대출을 전담하게 된다.

또한 본부차원에서 전문지식을 갖춘 전담심사역을 배치해 선박금융 신규 및 관련 여신을 신속하게 진행하게 하는 등 지역 중소 및 중견선사에 맞춤형 선박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
 
  최근 선박금융 등 정책금융 조율이 답보 상황인 가운데, 부산은행이 선박 관련 금융 특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렇게 당국이 일정 역할을 하고 나머지 부분에 시중은행이 스스로 제 할 일을 찾아 나서도록 해야지, 전체적인 금융을 당국이 견인하려는 태도는 적절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 부산은행  
최근 선박금융 등 정책금융 조율이 답보 상황인 가운데 부산은행이 선박 관련 금융 특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부산은행
이렇게 부산은행이 나서는 것처럼, 선박금융 관련이나 파생금융 육성계획을 지원하는 일을 민간 시중은행들이 맡아준다면 선박금융공사 문제의 WTO 규정 저촉 등 제동이 걸리더라도 전체적인 밑그림에 입각해서 일부라도 균형을 맞출 여지가 생길 수 있다.

실제 당국은 시중은행, 더 나아가서는 민간 금융지주사들의 제 역할을 상당히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 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주요 금융지주회사회장 간담회에서 "이번 정부가 금융산업에 대한 청사진이 없다거나 금융을 홀대한다는 평가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아울러 "우리 경제에서 금융산업이 창출하는 부가가치 비중을 향후 10년간 10% 수준으로 확대할 것"이라며 금융산업 발전비전의 화두를 제시했다.

신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사적 연금과 부동산 금융시장의 체계적 관리와 육성 △생애자산관리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금융자문업 △장기·저위험·중수익을 추구할 수 있는 대체투자상품(AI) 활성화 등과 함께 △프라이빗 에쿼티(PE)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금융 △벤처 캐피탈 등의 기능이 활성화되고 건전하게 육성될 필요가 있다고도 요청했다.

하지만 이 같은 그의 발언을 금융의 자체적인 발전에 대한 '성원' 약속이나 선의의 '가이드라인' 제시쯤으로 해석하는 시각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앞서 소개한 1일 발언의 다른 대목을 보면 보다 자세히 드러난다.

MOF 출신의 EPB스러운 발언, 정책조화 대신 관존민비 사상만?

신 워원장은 KB금융의 새 회장으로 관료 출신인 임영록 KB금융 사장이 유력하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능력과 전문성이 있으면 금융그룹 회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호의적인 뜻을 내비쳤다. 임 사장은 행정고시 출신으로 현재 KB국민은행 노조에서는 "그는 내부인사로 보기 어렵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의외로 그가 내부파 승진 필요성이라는 대세에 편승, 2강 후보로 꼽히고 있다.

여기까지는 단순히 기자들의 말에 끌려들어간 정도 혹은 예의상 추임새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신 위원장은 "루빈 씨티그룹 회장도 장관 출신이고, 임 사장 같은 경우에는 외부인사라고 보기도 애매하다"고 부연, 적극적 의견 개진으로 관료 출신의 KB 장악을 바라는 심경을 시사했다.

이는 현재 자리에서 물러날 예정인 어윤대 KB금융 회장이 "정부 지분이 한 주도 없는 민간회사(인데 왜 내 거취를 당국에 상의하는가)"라는 입장을 표명하며 각을 세웠던 점에 비춰 보면, 당국이 이 같은 민간의 자율성 요청을 최소한도 고려하지 않고 있는 태도를 갖고 있고 이번 발언은 그 내심의 한 자락이 노출된 데 지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다. 

결국 근래 당국이 보이는 각종 비전 제시는, 가이드라인의 제시를 하고 실질은 민간에 맡기는 뉴거버넌스 행정학 논리에 따라 금융정책이 움직이는 게 아닌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목표제시를 통한 달성 요구와 감독 압박의 옛 경제기획원(EPB) 논리로도 해석 가능한 것.

EPB는 다른 한 축을 이루며 자존심 대결을 벌였던 옛 재무부(MOF)와 대조적으로 창의적이고 거시적인 태도를 가졌다고 볼 수 있지만 결정적으로 시장을 중요시하지 않는다는 약점이 있다. MOF는 디테일에 강하고 미시적이지만 큰 철학이 없다는 비판도 받아왔기 때문이다.

즉 현재의 당국이 금융을 바라볼 때 EPB처럼 생각을 한다면, 이는 오히려 관치금융이라는 비판을 받는 MOF 출신보다 더 나쁠 수도 있다. EPB는 자율적으로 민간을 내버려 두는 것 같지만 당국이 모든 걸 기획하고 주도하기 때문에 경제가 성장한다는 전형적인 '개발계획의 주인공 논리'가 있다. 

당초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경제수석 두 자리를 EPB 출신에 내주면서 재무부 등을 거친 신 위원장을 금융위에 안배한 것은, 금융 및 국제업무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을 배치, 두 세력(으로 대변되는 경제 시각)의 절충을 통한 국정 안정을 기한 것으로 평가됐다.

그런데 이번 상황에서 보면 재무부 은행과 이상의 디테일한 간섭을 EPB 스케일로 키운 것밖에는 안 된다는 점에서 우려가 깊을 수밖에 없다. 

IP·동산담보대출 봇물…압력 대신 제도지원 요청도

이런 상황에 근래 중소기업의 자금 조달을 지원하기 위해 각종 상품들이 출시되는 사정이 마냥 좋은 게 아니라 이면의 우려와 불만을 제거해 나가면서 베이비 스텝으로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일부 시중은행들이 IP 관련 대출에 나서고 있지만, 당국이 간접적 압박만 줄 게 아니라 리스크 관리와 전문 판단 능력 부족 등을 당국이 뒷받침해 줘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사진은 IP 대출 상품 중 하나로 기사 중 특정내용과는 직접적 관계 없음. ⓒ 기업은행  
최근 일부 시중은행들이 IP 관련 대출에 나서고 있지만, 당국이 간접적 압박만 줄 게 아니라 리스크 관리와 전문 판단 능력 부족 등을 당국이 뒷받침해 줘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사진은 IP 대출 상품 중 하나로 기사 중 특정내용과는 직접적 관계 없음. ⓒ 기업은행

우선 중소기업의 돈줄을 풀어주기 위해 동산담보대출의 혜택 대상의 폭을 늘리고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최근 취급 요건이 전달 완화된 바 있고, 5월말~6월초를 기점으로 지적 기술(IP)을 담보로 한 대출 역시 시중은행들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소기업에겐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제도적 보완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는데, 이들 영역이 이전에 개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영역이다 보니 대출을 뒷받침할 담보의 가치 책정, 가치의 변동에 따른 철수 가이드라인 등 사후관리 제도는 거의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현재까지 대출이 나간 부분도 향후 문제 발생소지가 매우 높은 상황임을 감안하면 민간금융지주 회장 선임에 계속적으로 당국이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신호로까지 읽힐 수 있는 과감한 발언마저 나오는 현재 분위기를 제거하든, 혹은 당국의 책임과 뒷받침을 키우든 하는 게 순리로 해석된다.

예를 들어 지난달 24일 간담회에서 신 위원장이 새로 육성해야 할 대목으로 꼽은 PE를 따져볼 수 있다. 증권시장과 같은 공개시장이 아닌, 기업 경영진과의 협상을 통해 지분을 인수한 후 3~5년에 걸쳐 경영을 정상화시킨 뒤 지분을 되팔아 차익을 챙기는 자금 활동을 PE라고 하는데, 지금과 같은 당국이 시장을 주도적으로 관리하는 분위기 속에서 PE 같은 영역이 잘 될 공간은 넓지 않다고 봐야 한다.

결국 현재까지 노정된 당국의 여러 태도는 이번 KB의 차기 회장선출 결말 이후 어떤 형태로든 시장,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의 오해를 풀어야 하는 제스처가 필요한 것으로 진단된다. 이런 과제가 선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민간이 정책금융의 부족한 점을 메워주거나 대열을 정비하는 데까지 대신 시간을 벌어주길 바라는 것은 백일몽에 지나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