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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2.0 탐방 ⑥] 부산中小서점들, 조합으로 퀵배송·봉사

협동조합법 등장에 "이거다!"… 지역사랑·冊사랑 뭉친 열혈조직

임혜현 기자 기자  2013.05.31 17: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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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언제부턴가, 동네에서 찾아보기 어려워진 가게들이 몇 있다. 레코드점이나 서점 같은 작지만 동네의 문화 젖줄을 맡던 곳들이다. 이런 가게들은 점차 대형화되는 매장들이 등장하면서 상품의 가짓수나 배송편의성 등에서 밀리게 됐다. 하지만 지금도 곳곳에서 동네를 지키며 문화파수꾼의 역할을 자임하는 가게들도 있다. 부산에서는 특히 중소서점들이 현실을 타파하고 다시금 동네 문화 부흥을 위해 협동조합을 결성하고 나섰다.

한국 제2 도시이자 수출을 책임지는 항구 도시 부산. 하지만 이 같은 거대도시 부산의 서적유통문화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경기침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010년경 서면동보서적 등 제법 큰 서점마저 연이어 폐업할 정도로 향토 서점의 생존은 절박한 문제로 떠올랐다. 이런 와중에 교보나 영풍 같은 대형체인서점이 진출과 확장에 박차를 가할 경우 지역 서점가는 고사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을 고민하던 어느 날, 부산 다대서점의 김정량 대표는 협동조합법이 마련된다는 기사를 읽는다. 무릎을 친 김 대표는 관련 법안을 구해 내용 검토에 들어갔다. 부산 지역의회에서 의정활동을 해 본 경험(사하구의회 의원 역임)이 있는 김 대표는 내용을 그야말로 조례안 뜯어보듯 꼼꼼히 파고들었는데 그럴수록 "이 협동조합법이란 게 서점협동조합을 위해 생긴 것이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지역에 베풀고, 퀵 유통망 같이 꾸려 편의성 높여보자

이미 부산시내 서점들의 친목단체인 부산시서점조합에서 일을 맡아 보기도 했던 경험이 있는 김 대표는 지역 서점가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지금처럼 가면 살아남을 곳이 없는데 이 법 도입 시기라는 좋은 기회에 새롭게 돌파구를 찾기로 결심했다. 마음 맞는 이들과 함께 부산서점협동조합 결성을 추진, 중소형 서점을 꾸리는 이들에게 함께 경영 효율성을 꾀해 지역의 문화사업을 지속하기로 했다. 철저한 준비로 일사천리 결성을 매듭지었고, 이제 회원서점은 40곳을 돌파했다.

“동네에 호프집이 하나 없어진다고 생각해 보자. 이건 그냥 놀 수 있는 곳 하나가 없어져 아쉬운 일일 뿐이다. 하지만 동네 서점이 없어진다면? 이건 지역의 문화가 없어지는 거다”라고 김 대표는 지적한다.

“27년간 다대서점을 운영해 왔다. 그러다 보니 (인근 중학교 출신) 학생들이 졸업하고서도 가끔 찾아온다. 지금 **대에 다닌다, **그룹에 들어갔다 그렇게 인사를 하러 와서 책을 사러 다니고 돈이 없을 땐 서서 읽고 가던 시절을 추억하며 고맙다고 하고 간다. 사실은 내가 더 고마운데….”

김 대표가 서점을 운영하면서 직원들에게 신신당부를 한 대목이 있다. 안사고 그냥 읽고 가는 사람들에게 눈치 주지 말라는 것. 그리고 의자 몇 개 가져다 놓으라는 부분이다. 이런 시도는 서울의 대형서점에서나 장기적 관점에서 고객을 모으기 위해 시도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지역의 문화를 책임진다는 사명감으로 꾸려야지, 서점을 돈을 벌 업종 중 하나로 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에 이런 시도를 해 왔다고 한다.

특히 이런 고객 우대는 그가 부산서점협동조합을 이끌면서 차차 향후 가입을 할 서점들에게 강요(?)하겠다는 방침이다. "의자도 갖다 놓고, 동네 주민들이 쓸 수 있는 회의실용 방도 하나쯤 서점에 만들게끔, 문화사랑방이 되도록 노력을 하는 곳이 우리 조합에 가입할 수 있게 차차 바꿔 나갈 것이다"라는 게 그의 포부다.

이는 문화부에서 선정하는 '모델 서점'으로 그의 다대서점이 지정돼(2009년) 실제로 지역의 문화살롱 역할을 하는 재미를 만끽한 경험에도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이다. 다대서점은 이때 지역민들을 상대로 문화 강연 등을 유치하는 장소로 톡톡히 기능하면서 지역에서 유명세를 더하고 보람도 키울 수 있었다.

그는 대형서점에 비해 책의 가짓수에서 밀린다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공동으로 배송하는 안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지금 이 가게에 책이 없더라도 검색 결과 우리 협동조합에 속하는 서점에 물량이 있으면, 오토바이나 차량을 통해 오늘 언제까지 책을 가져다 주겠다고 고객에게 약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작거나 경영이 어려운 서점들로서는 언감생심이겠지만, 이는 조합 차원에서 공동으로 부담해 비용 문제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책을 잘 알고 지역시정에 환한 중소서점주인 역할 무궁무진

그가 꿈꾸는 공동의 배송망은 단순히 큰 체인서점들과 책을 더 많이, 빨리 팔기 위해 갖추는 사업모델만은 아니다.

김 대표는 2001년 '다대포가이드'라는 공간을 온라인상에서 만들어 꾸미며 지역주민들에게 전설, 문화적으로 의미있는 곳 소개 등 정보 제공을 해 폭발적 성원을 얻은 경험이 있다.

  부산서점협동조합을 이끌고 있는 김정량 다대서점 대표가 동네서점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 임혜현 기자  
부산서점협동조합을 이끌고 있는 김정량 다대서점 대표가 동네서점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 임혜현 기자

김 대표가 지역의 중소서점들에게 바라는 역할도 이런 다대포가이드 같은 모델이다. 지역의 사정에 대해서 제일 정확하고, 또 지역의 문화적인 면을 꿰고 있으며 책을 잘 아는 이들이기 때문에 필요한 책, 도움이 되는 책을 바로 정확히 골라낼 수 있도록 역량을 훈련하면 지역의 명물로 중소서점들이 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그는 믿고 있다. 그런 지역의 터줏대감 같은 서점 주인들이 권하고, 또 찾아주는 책에 배송의 편의성을 보강해 준다면 지역민들에게도 오히려 문화적 충격 기회가 될 것이라는 큰 배경이 감춰져 있다.

김 대표는 그런 점에서 앞으로 부산서점협동조합이 조합원(서점)들에게 프로그램을 마련, 제공하겠다고 언급했다. 

서점의 문화적 역할 논문도 준비하는 조합의 멋쟁이 사령탑

김 대표는 이처럼 부산의 서점협동조합을 만든 이후 울산, 대전, 구미 등에도 같은 모델의 씨앗을 뿌렸다.

김 대표는 이렇게 전국의 서점 주인과 의기투합하는 와중에 "서점집 아이들은 공부를 다 잘 한다. 자랑 같지만 그렇게 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다"라고 운을 뗀 다음, 서점의 문화적 역할에 대해 입증을 해 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공개했다. 동네의 서점이 지역에 미치는 문화적 파급력을 다룬 논문을 써 보고 싶다고 한다.

최근 열풍이라고 할 정도로 과열되고 있는 협동조합 결성 붐에 대해서 김 대표는 "돈을 벌려고 협동조합을 명목으로 활용하려는 사람이 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김 대표는 "어떤 일에 대해 비전이 있고 목표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 협동조합을 할 때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고 협동조합을 꿈꾸는 이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아울러 "앞으로 우리(부산서점협동조합)가 더 잘 하려면 지금의 연합체처럼 돼 있는 조합 조직을 사회적기업으로 추진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려면 수익의 일정액은 사회공헌을 해야 한다"면서 지역을 위해 환원하고 같이 커 나가는, 작지만 사랑받는 서점들을 꿈꾸는 가게 관계자들이 모인 곳이 부산서점협동조합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