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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2.0 ⑤] 썬키스트·FC바르셀로나…알고 보니 협동조합

영국서 처음 탄생한 경제모델… 협동조합기본법 제정 이후 국내서도 관심 증폭

조민경 기자 기자  2013.05.31 16: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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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5명 이상이면 쉽게 만드는 협동조합'. 요즘 거리나 버스, 지하철 등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 광고 문구다. 협동조합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주목받고 있는 새로운 경제모델로,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며 더욱 관심이 높아졌다. 이러한 협동조합은 영국에서 처음 만들어져 발전했고 이후 유럽과 전 세계로 전파됐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서 협동조합의 기틀을 마련하고 발전시켜온 해외 협동조합들을 짚어봤다.    

협동조합은 홍보 문구처럼 5인 이상 마음 맞는 사람들만 모이면 설립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아직까지 협동조합이 한 나라 경제의 지배적인 기업형태로 뿌리내린 곳은 찾기 힘들다. 그럼에도 '공동으로 소유되고 공동의 경제·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협동조합의 제 역할과 기능을 톡톡히 해내며 본보기가 되고 있는 협동조합들이 있다.  

◆6000여개 오렌지 재배농가 모여 만든 '썬키스트'

우선, 가장 대표적으로 꼽히는 협동조합은 썬키스트다. 썬키스트는 오렌지의 대명사격 브랜드로 많은 사람들이 대기업으로 오해할 정도로 탄탄한 입지를 다졌다.

   썬키스트는 6000여개 오렌지 농가로 구성된 협동조합이다. ⓒ 썬키스트 홈페이지  
썬키스트는 6000여개 오렌지 농가로 구성된 협동조합이다. ⓒ 썬키스트 홈페이지
1980년대 미국 대륙횡단철도 개통으로 서부지역에 국한됐던 오렌지 소비자 미국전역으로 확대됐다. 이로 인해 오렌지 산업이 크게 성장했지만 오렌지 재배농가에 놀아오는 수익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복잡해진 유통과정에서 중간 도매상들이 팔리지 않고 남은 오렌지에 대해서는 대금을 지불하지 않거나 중간에서 이익을 가로채는 등 횡포를 부렸기 때문이다.

이에 오렌지 재배농가들은 이들 중간 도매상들의 횡포에 맞서 '남부 캘리포니아 과일 거래소'라는 조합을 만들고 생산뿐만 아니라 판매·유통에도 직접 나서게 됐다. 이 조합이 지금의 썬키스트다. 썬키스트는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의 오렌지 생산농가 6000여개가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사업자 협동조합으로 자리매김했다.

◆협동조합·주식회사 장점 결합한 '제스프리·웰치스' 
   
협동조합 종류에는 썬키스트와 같은 사업자 협동조합 외에도 기업형 협동조합이 있다. 기업형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1인1표라는 민주적인 운영이 가능하다는 협동조합의 장점과 수익형 사업을 통한 이윤추구를 주목적으로 하며 자금조달이 유리한 주식회사(기업)의 장점이 결합된 형태다. 이러한 기업형 협동조합으로는 제스프리와 웰치스가 대표적이다.

   제스프리는 협동조합과 기업의 장점이 결합됐다. ⓒ 제스프리 홈페이지  
제스프리는 협동조합과 기업의 장점이 결합됐다. ⓒ 제스프리 홈페이지
제스프리는 키위 농가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한 기업형 협동조합이다.

뉴질랜드 키위 농가를 중심으로 한 키위산업은 1970년대와 1980년대 큰 호황을 누렸다. 이렇게 키위산업이 발전하자 이탈리아, 칠레 농민들도 키위 재배에 나서는 등 키위 수출농가·업체들이 난립하기 시작했다. 키위 공급과잉으로 가격은 폭락하고 품질은 저하되는 악순환이 반복됐고 뉴질랜드 키위 농가의 소득 역시 하락했다.

이에 뉴질랜드 키위 농가들은 수출창구·브랜드를 단일화해 해외 수출농가·업체에 대항키로 하고 제스프리라는 협동조합 형태의 기업을 만들었다. 2600여개 키위 농가가 주주로 참여하고 있으며, 키위 농가들은 제스프리에 키위를 납품하고 판매수익을 받는다. 또한 이익에 따른 배당을 받기 때문에 농가들이 회사 수익을 높이기 위해 고품질의 제품 생산에 힘쓸 수밖에 없는 구조로, 품질향상·수익확대 등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

또 다른 기업형 협동조합 모델인 웰치스는 사실 자체로는 협동조합이 아닌 주식회사다. 그러나 웰치스 주식은 모두 1만2000여 미국 포도 농가들이 조직한 협동조합인 전미포도협동조합연합회가 소유하고 있으며, 이들이 웰치스 브랜드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다. 포도 농가들이 뜻을 모아 협동조합을 유지하는 동시에 대규모 자금조달과 신속한 시장대응이 유리한 주식회사 장점까지 모두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협동조합의 기적 이끈 '몬드라곤'

생산자(노동자) 협동조합도 협동조합의 한 형태다. 노동자들이 노동(일)을 하는 동시에 회사의 의사결정에 직접 참가하는, 즉 노동자가 주인인 회사를 말한다.

스페인의 몬드라곤은 세계 최대의 협동조합이자 생산자 협동조합이다. 몬드라곤 협동조합이 뿌리 내린 스페인 바스크지역은 스페인과 프랑스 국경 사이에 위치해있어 공습과 갈등이 끊이질 않았다. 1940년대 초 폐허나 다름없는 이곳에 부임한 한 신부는 가난을 극복하고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지역민들에게 협동조합 설립을 제안했다.

지역민들이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어 가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기술학교를 설립했고, 이후 이 학교 졸업생과 노동자들이 중심이 돼 몬드라곤의 첫 협동조합인 석유난로 공장 '울고'를 세웠다. 이후 다른 생산자 협동조합이 속속 만들어졌고 현재 몬드라곤은 260여개 사업체를 거느린 협동조합복합체로 성장했다.  

때문에 이를 두고 '몬드라곤의 기적'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생산자 협동조합의 경우 노동자가 고용인이자 고용주로 회사 경영에 관한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하게 되는데, 조합원들이 이 과정에서 고용주 역할 등의 한계에 부딪혀 생산자 협동조합이 존폐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몬드라곤은 다수 협동조합으로 구성된 협동조합복합체인 만큼 한 협동조합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해당 조합 소속 조합원을 해고하지 않고 그룹 내 다른 조합으로 옮기는 방식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하고 있다. 또한 산하에 협동조합에 대한 투자를 목적으로 한 은행인 카하 라보랄(노동인민금고, KL)을 만들어 협동조합이 직면할 수 있는 금융부분의 어려움에 대비해 탄탄한 지원책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축구팬·국민이 주인인 'FC바르셀로나·미그로'

소비자 협동조합도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협동조합이다. 스페인 프로축구단 FC바르셀로나와 스위스 미그로가 대표적인 예다.

FC바르셀로나는 대자본을 가진 기업가가 구단을 창설하면 팬들이 생겨나는 일반적인 스포츠팀과는 달리 팬(소비자)들이 스스로 출자해 만든 구단으로, 팬들이 조합원(회원)으로 직접 구단을 운영해나가는 소비자 협동조합이다.

   17만여명의 축구팬들이 주인이자 운영자인 소비자 협동조합 FC바르셀로나. ⓒ FC바르셀로나 홈페이지  
17만여명의 축구팬들이 주인이자 운영자인 소비자 협동조합 FC바르셀로나. ⓒ FC바르셀로나 홈페이지
FC바르셀로나는 17만여명의 팬들이 출자해 운영하고 있으며, 조합원 중 가입경력이 1년 이상이고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6년에 한번씩 치러지는 클럽 회장 선거에서 회장을 선출할 권리를 가질 수 있다. 또한 회원들은 구단의 최고의사결정기관인 총회 구성원으로 2년간 활동할 수 있으며 회원들을 대표해 계획, 예산 등을 결의하게 된다.

미그로는 주식회사로 설립됐다가 협동조합으로 탈바꿈한 사례다.

커피와 설탕 등 식료품을 실은 트럭으로 시장에 가기 어려운 지역을 찾아다니며 사람들에게 판매한 것이 미그로의 시작이다. 중간 유통마진을 줄여 일반 유통채널보다 40% 가량 물건을 싸게 판매하며 성공을 거뒀고, 이를 바탕으로 매장을 열고 사업을 확장했다. 

미그로는 이후 주식을 모두 협동조합 출자금으로 전환해 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 지금은 스위스 국민 720만명 중 약 28%인 200만명이 미그로 조합원으로 가입돼 있을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하며, 스위스 최대 유통마트로 부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