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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광장] 조세피난처 자금 세계 3위의 불편한 진실

소정선 논설위원 기자  2013.05.30 11:2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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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경제는 유통이다”

지난 80년대 권력을 등에 업고 수백억대의 사채 사기행각으로 세간의 화제를 모았던 장모여인의 말이다.

당시 인구에 회자되면서 쓴 웃음을 짓게 했던 이 말은 그러나 당사자의 의도와 죄질에 상관없이 경제 본질을 지적한 예리한 분석이다. 돈이 돌지 않으면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비단 경제뿐이랴.

사람의 몸에도 피가 잘 돌지 않으면 동맥경화에다 뇌졸중등 치명적 병들이 생긴다. 순환과 유통은 사물이 살아가는 자연의 이치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가계부채 급증, 소비지출 급감은 우리경제의 침체를 가속화하는 징표이다. 자칫 병증을 심화시켜 심각한 디프레션을 유발할 가능성도 보인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13년 1분기 가계동향’에 따르면 올 1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은 254만3000원으로 4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 가계가 씀씀이를 줄인 것이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 가계소비지출은 이미 지난해 3분기부터 감소세였다.

가계 소비지출이 크게 줄어든 것은 모든 계층이 지갑을 닫았기 때문이다. 1분기 소득 상위 20%의 월평균 소비지출은 지난해보다 2.8% 감소했다. 통계청이 2003년 전국단위의 가계동향 조사를 작성한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저소득층도 소비를 크게 줄였다. 소득 하위 20%의 가계지출은 전년 동기대비 1.9% 줄었다.
 
가계와 기업의 순환으로 자본주의경제가 발전한다고 모든 경제원론서에 나와 있다. 가계가 기업에 근로를 제공하고 기업이 임금(돈)을 지급하면 가계는 이 돈으로 기업이 생산한 상품을 구매해 경제의 선순환이 그려진다. 지속적인 선순환으로 전체규모가 커지면 그것이 바로 경제성장이다.

그러나 경제의 한축이 제몫을 해내지 못하면 순환의 불균형으로 경제성장이 지체된다. 소비자가 돈을 쓰지 않으면, 상품이 남아돌아 기업이 어려워진다. 이 현상이 계속되면 경기침체에 이어 심각한 디프레션, 공황이 초래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 가계가 돈을 쓰지 않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마땅히 쓸 물건이 없어서인가, 아니면 지난 60년대처럼 허리띠를 졸라 저축을 늘여 산업자금화하려는 애국심 때문인가?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수입은 적은데 빚은 많아 쓸 돈이 없기 때문이다. 기록적인 저금리에도 쓸 돈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국민의 진짜 가계 빚은 1100조원에 육박했다. 2000년대 초반 600조원 수준이던 실질 가계부채가 10여 년 만에 갑절이 되었다. 노무현, 이명박 정부 모두 싸잡아 욕먹을 수 있는 숫자이다.

지난해 개인 실소득에 대한 가계부채 비율은 136%로 2003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보였다. 벌이에 비해 빚은 계속 늘고 있는 것이다. 빚 갚기에도 바쁘니 쓸데를 줄일 수밖에 딴 도리가 없다. 그렇다면 향후 전망은?

한국은행은 “선진국 경기 회복 지연, 엔저 지속 및 내수경기 부진에 따른 가계의 채무상환능력 악화로 향후 부실채권 증가가 우려된다”고 비관적 견해를 밝혔다.

박근혜 정권은 집권 초반 부터 예산의 추가 편성에 나서는 등 경기부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야권이 거센 비난을 사고 있는 ‘시간제 일자리’도 일자리를 늘여 가계수입을 증가시키겠다는 발상이다. 물론 윗돌을 뽑아 아랫돌에 괸다는 미봉책이란 비난도 있지만 정부의 의지는 가상하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지극히 상식적이며 선후진국을 불문하고 정부가 하는 경기부양책이다. 과연 기존 대책으로 우리경제가 살아날 수 있을까?

그래서 등장한 묘책이 ‘경제민주화’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는 ‘경제민주화’란 단어는 자유, 평등이 연상되는 정치용어. 풀이 그대로 경제를 민주화하자면 사회주의를 하자는 말인가? 아니면 복지에 집중하자는 발상인가?

효율성과 자유경쟁을 신봉하는 신자유주의 사고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정부출범직후부터 정체성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다. 국회의원들도 입법에 즈음하여 해석이 제각각이다.
 
어려울수록 돌아가란 말이 있다. 우리는 이제 다시 경제교과서로 돌아가야 한다. 기업과 가계사이에 정상교환, 등가교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선순환이 어렵다. 지난 80년대 말 일본은 당시 기록적 무역흑자와 금리자유화를 배경으로 늘어난 이익을 주체하지 못한 기업들이 땅투기와 증권투자에 몰두하면서 세기적인 버블경제를 겪게 된다.

일본 릿쿄대의 노구치 유키오 교수는 돈이 기업에만 머물러, 각 경제주체에 스며들어 분산되지 못한 결과로 분석했다. 돈이 제대로 돌지 못해 발병했다는 진단이다. 일본은 버블경제붕괴 후 현재까지 회복불능 상태이다.
 
수년전 외국계 기업의 한 재무담당자는 “현금이 남아돌아 활용방안을 고민 중이며 국내 유명기업들도 비슷한 처지”라고 토로한바 있다. 최근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잘되는 기업들은 돈이 남아 주체하지 못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지난 2010년 영국의 조세정의네트워크에 따르면, 한국은 1970년대부터 2010년까지 외국의 조세피난처로 이전된 국내 자산이 7790억 달러(한화 약 888조 원)으로 세계 3위 규모라고 밝혀 충격을 줬다.

또한 조세피난처에 설립한 국내기업의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가 5000여개에 이른 것이 이를 입증한다면 사실상 우리나라 대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해도 모자람이 없다.

일본처럼 경제잉여가 기업이나 일부에만 집중되면 가계는 소비능력을 잃게 되고, 이는 판매부진이란 부메랑으로 기업에 돌아온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경제에 대한 시각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효율성과 경쟁이 개별경제의 능력을 재는 바로미터이지만 맹목적인 무한 효율성경쟁은 자칫 1등만 살고 나머지는 모두 루저가 되는 게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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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국민들을 분노케 하는 비자금, 역외탈세, 갑을문제 등도 따지고 보면 경제잉여의 부분집중화 현상 때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상생, 사용자와 근로자 상생을 외치는 것도 경제원론적인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전임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초 4대강 공사를 앞세워 투자와 효율성에 열을 올릴 때 경단련 간부를 접견한 일본 총리는 기업들에게 임금인상을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거품경제의 아픔을 뼈저리게 느낀 후에 나온 반성의 목소리이다. 돈을 각 경제주체에 스며들게 해 달라는 호소로 들린다.

이웃 일본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아직 시간여유가 있다고 머뭇거리다 일본에 버금가는 장기불황의 늪에 빠질 수도 있다. 정치권과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경제원론으로 돌아가 돈을 돌게 해야 한다.
 

소정선 논설위원(前 코리아헤럴드·헤럴드경제 기자, 디저털 '말' 편집국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