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지 기자 기자 2013.05.29 17:33:24
[프라임경제] 중앙대학교 학과 구조조정이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2010년 대대적인 학과 재조정 이후 올 4월 들어 또 다시 비인기 4개 전공 폐지 의사를 밝힌 것. 중앙대 측은 대학 발전을 위한 고육지책이란 입장이지만, 학계 일각에선 "학문을 육성할 대학이 시장논리로 학과를 기업식 구조조정 한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지난 4월 중앙대는 비교민속학, 아동복지학, 청소년학, 가족복지학 등 4개 전공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전공 선택 비율이 낮은 비인기 학과라는 이유에서다. 올해 신입생까지 학습권을 보장하고 내년부터 모집단위에서 제외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학생 측은 구조조정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하고 기자회견, 6000여명 서명운동, 문화제 등 다양한 방법으로 반대 의사를 전하고 있다.
◆"두산대학교 돼버린 기업형 대학"
중앙대 학과 구조조정에 해당 학과 학생들은 크게 반발하며 대응하고 있다. ⓒ 중앙대 구조조정공동대책위원회
이번 전공 폐지가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2010년 구조조정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당시 학교 측은 교수와 학생 반발에도 취업률, 효율성을 기준으로 기존 18개 단과대학, 77개 학문단위를 11개 단과대학, 49개 학문단위로 통폐합했다.
이 과정에서 △교수 차등 연봉제 전환 △5개 계열별 부총장 제도 △전교생 회계학 수강 의무 등 방침을 두고 대학 안팎에선 "지극히 기업논리에 따른 것으로 '중앙대'가 아니라 '두산대'가 돼버렸다"는 빈축까지 나돌았다. 특히 5개 계열별 부총장 제도는 해당 학문단위 교무와 학사관리, 인사, 예산 등을 총괄하는 막대한 전권을 가지는 것이어서 기업형 대학운영의 대표적 사례로 꼽혔다.
현 중앙대 이사장인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2004년 서울대 초청 강연에서 "대학이 전인 교육의 장, 학문의 전당이라는 헛소리는 이미 옛이야기이다. 이제는 '직업 교육소'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라고 밝혔듯, 중앙대는 기업 맞춤형 대학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평가다.
대책위는 지난 2일 기자회견에서 "인문대 아시아문화학부 내 비교민속전공 등 4개 학과가 일방적인 폐과를 통보 받았다. 이번 구조조정은 단순히 4개 학과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2011년 가정교육과가 폐과됐던 사실을 언급하며 구조조정 상시진행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내비쳤다.
◆학문‧진리 탐구 상아탑에서 '기업형 취업자' 양성소로
해당 학과 내 구성원들은 전공 폐지 결정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 중앙대 구조조정공동대책위원회
하지만 학교 측은 전공 폐지 철회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사립대학의 한정된 재원으로 비인기 전공을 유지하기엔 경영 부담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김태성 중앙대학교 홍보팀장은 "모든 학문을 균형 발전시킬 수 없다. 대학 간 경쟁이 심화된 상황에서 미래 생존을 위해서 마이너전공을 없애고 사회 트렌드에 맞는 신설학과를 설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이어 "일부는 대학이 취업사관학교냐고 비난하지만 등록금 받고 취업도 못시키는 대학이 될 수는 없다"며 "현재 대학은 고등학교의 연장선이자 학생들의 사회배출로서 가교 역할을 맡기에 학문은 대학원 단위에서 논의하는 것이 현 대학의 어쩔 수 없는 생존 패러다임"이라고 말했다.
반면 중앙대의 이러한 행보에 대해 학계는 '학문의 전당' 본질을 잊고 효율성과 시장논리만을 쫓는 기업식 운영이라며 일침을 가하고 있다.
김기현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대학 운영이 시장논리로 가는 것엔 부정적이다. 사회 트렌드에 대학이 따라간다는 발상 자체가 한심하다"라며 "단순히 취업만을 생각하며 폐과를 결정하는 것은 편협한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이어 "대학은 시장을 선도하고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며 "현재 높은 자살률과 낮은 행복지수 등 복지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데, 해소하기 위한 노력은커녕 시대적 가치관에 역행하는 행동이다"고 비난했다.
◆"우수학과 선정돼 자부심 컸는데… 기업논리 일방적 피해"
최근 중앙대는 비인기 4개 전공에 폐지 결정을 내렸다. ⓒ 네이버 카페 캡쳐
해당 전공 학생들 역시 "기업논리에 따른 일방적 피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이번 학문단위 재조정으로 폐지 전공 중 하나가 된 비교민속학 전공은 인문대학 내 유일한 우수학과로 선정 불과 한 달 만에 폐지 공고를 받아야 했다.
비교민속을 전공하는 10학번 정태영씨(3학년)는 "3년 전 민속학과에서 학부로 낮추더니 이제 폐과를 요구하고 있다"며 "3월에 우수학과로 선정돼 자부심이 컸는데, 한 달 만에 전공자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철거하듯 나오니 어이없고 분하다"고 덧붙였다.
내년부터 비교민속을 전공할 아시아문화학부 13학번 김소현씨(1학년)는 "85명의 정원을 일본어문, 중국어문과 나눠야 하는 상황에서 올해 20여명의 신입생을 확보했다. 서울 내 비교민속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곳으로 유네스코, 문화재청 등을 꿈꾸며 입학했는데 학교는 단순히 전공선택률이라는 수치만으로 폐과를 일방적으로 결정했다"고 지적했다.
해당 학과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학문이라는 학교 측 주장에 학과명 변경·수업과정 변화·다른 학문과 융합 등 새로운 의견을 제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중앙대 대책위는 문화제와 공연을 통해 전 학생들에게 학과 구조조정의 부당함을 알리고 있다. ⓒ 중앙대 구조조정공동대책위원회 |
아시아문화학부장 박환영 교수는 "우리 문화를 세계에 적극 알리는 시대 상황에서 한류나 유네스코 관련 문화유산을 총체적으로 다룰 수 있는 학문이 사라지는 것"이라며 "없애는 것만이 구조조정이 아니다. 되살리는 것도 구조조정"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교육부는 판단을 유보하며 사태를 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박승철 서기관은 "학내 구성원들 의견 수렴이나 관련 절차 준수를 알아보고, 문제가 있을 시 대학에 행정지도를 권유하겠다"고 말했다.